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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Jun 13. 2021

번역 감수자의 역할이란?

많은 번역가가 번역가인 동시에 감수자로 일하며, 이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도,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감수 업무는 제게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한창 감수를 많이 했을 땐, 번역 스타일이나 오류 유형만 봐도 누가 번역했는지 알 정도였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서부터 제목만 말하면 누구나 아는 작품까지 수많은 번역물이 제 손을 거쳐 갔지만, 감수자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일조하는 게 감수자의 역할이니까요.


작품에 얼마나 개입할 것인지는 감수자마다 다릅니다. 적극적으로 번역 스타일까지 바꾸려는 감수자가 있는 반면, 명확한 오류만 수정하는 감수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까운 편입니다. 딱 보기에 어색한 문장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번역 스타일은 잘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건 번역가의 고유 문체이자 재량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영화관 개봉작은 감수자의 역할이 제한적입니다. 감수자가 오류를 수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직접 수정하지 말고 따로 알려 달라고 합니다. 영화 개봉작이 OTT 서비스나 온라인으로 풀릴 때는 또 수정이 가능합니다. 번역에 문제가 있었거나 수정 사항이 있는 경우엔 대부분 이 과정에서 자막이 다듬어집니다. 극장 자막과 온라인 자막이 달라지는 건, 이 과정에서 감수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죠. 자막 오류를 집어내는 건 어렵지 않아도 좋은 문장을 엮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둘 사이에 간극이 엄청나다고 할까요.


사람들은 완벽한 AI 같은 번역을 원하지만, 아직 번역은 인간적인 영역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위 휴먼 에러도 있고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지금까지 감수한 작품 중에서 오류가 전무했던 작품은 없었습니다. 철자 오류부터 시작해서 의미가 전혀 다른 오역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오류가 튀어나옵니다. 찬사를 받는 멋들어진 번역에도, 누군가의 인생작에도 늘 실수는 존재합니다. 다만 얼마나 조용히 숨어 있느냐, 눈에 띄느냐 차이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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