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센스"를 요구하는 동북아의 "하이컨텍스트" 컬처
알잘딱깔센. 반백살인 나도 아는 단어가 된 걸 보면 더 이상 핫한 신조어는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 아니 재미있는 것은, 사실 이 신조어를 처음 들어 봤더라도 웬만한 한국 사람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라면 무엇의 줄임말인지 알 것이라는 것.
여러분의 추측이 맞았습니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의 줄임말이다. 뭐 나땡땡 피디 예능 유튜브에도 나오고 광고에도 나왔으니 이제 국민 단어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파생 인물로 알자르 타카르센이란 분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알잘딱깔센이라고 다 쓰는 것도 이미 노화된 세대에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고 내일 회사 가서 엠지들에게 써먹어야지 하시는 팀장급 이상 분들, 업무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 우리들의 백과사전 나무위키 참조)
이야기를 살짝 옆으로 새도 무방하시다면, 알자르 타카르센 씨를 보니 떠오르는 전설의 인물이 있다. 바로 니땡땡 디지털 마케팅팀 신입사원 신명한 씨. (그의 인스타그램) 우연인지 필연인지, 래퍼 송민호의 열혈팬인 그가 니땡땡 마케팅에 입사해서 마케팅 천재로서 송민호와 콜라보 제품을 만들어 성공하기도 했다. 신명한,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 프로젝트는 2020년 코로나가 터지자 어이쿠 큰일 났다 어떡하지 하며 신묘한 크리에이티비티를 발휘했던 당시 저와 저희 팀, 저희 광고 대행사의 작품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의 글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 이 캠페인은 상도 많이 타고 관련 아티클도 많은데 다시 한번, 본문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알잘딱깔센으로 돌아가 봅시다. 신조어 빨리빨리 업데이트해서 엠지 세대와의 소통 격차를 줄입시다 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거 좀 알아서 잘하지"
"척하면 딱! 몰라?"
"착하고 성실하고 다 좋은데 센스가 없어"
"일일이 다 말로 해야 알아?"
"이야 여기 일처리 솜씨가 아주 깔끔하고 좋은데"
집, 학교, 직장, 모임. 어디서든, 어느 세대에서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 "센스". 다른 말로 "눈치" 또는 "알아서 티 안 내고 (중요함) 잘하는 것".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센스의 미덕'이 중요한 우리 사회, 다들 편안한지.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열정적이고 자기 얘기 (상대방 얘기 듣기보단)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직설화법보다는 "알아서 잘 파악하는" "행간의 의미를 읽는" "분위기 파악하는" 문화를 선호하는지. 아! 내 기분을 표현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해야겠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잘'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뭐 이런 바람들의 집합인 건가?
아무튼, 특히 위계가 있는 조직의 경우 (대부분 회사겠지? 공무원들은 더 할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라는 "yes"가 단어 뜻 그대로 "동의한다"를 의미하는 때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yes 가 무조건 no 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yes 가 동의한다도 되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동의는 안 할 거다도 되고, 완전 동의하지 않는다도 되고, 관심 없다도 되는 마법의 한국어.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조직 내 메신저 또는 회사 사람들과의 단톡방에서 쓰는 "네"의 용례와 변형 사례 아닐까. (관련 조선일보 기사. 나는 주로 "넵!"파다. 친한 사람에게만 "넹"을 쓰는 것은 나만의 작은 원칙이랄까. 좀 더 친해지면 "넴"도 가능. 개인적으로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네는 "네"다. )
미국,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곳에 본사를 둔 회사를 다니다 보니, 본사에서 (주로 높은 자리로) 한국으로 파견된 사람들과 자주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이런 '알잘딱깔센' (조금 더 있어빌리티 있게 얘기하자면 고맥락, high context 문화 )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유럽, 그중에서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쪽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미국은 워낙 다인종으로 시작한 멜팅 팟 나라이고 다양성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인식되다 보니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은 고맥락 사회라 예스가 다 예스가 아니고, 노가 다 노가 아님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한국에 부임하는 편이라 서유럽사람들 보다는 좀 더 나은 편이다. (내가 같이 일했던 사람들 위주로 판단하는 것이라 틀렸을 수 있음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들은 역시 독일인들. 회의 때 애원했던 지사장도 있었다. "제발 부탁인데, 나는 정말 진짜 진심 참트루 괜찮으니까, 내가 질문할 때 너희들이 동의하면 예스, 동의하지 않으면 노라고 해 줄래? 매 번 너희들이 내가 동의하니?라고 물으면 예스라고 하는데 표정도 무표정이라 정말 동의하는지 아는지 내 센스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워... 내 의견에 늘 동의할 순 없는 거잖아? 그때 그때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로 솔직히 말해 줄 수 있지?"
이런 절절한 호소에도 무표정으로 "예스"를 자판기처럼 내뱉은 나 포함 5명의 임원들.. 하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이 '나는 여러 명 앞에서 당신 = 사장의 의견에 비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내 의견만 튀어 보일 수 있으니 오늘 당신의 질문에는 예스라고 답하겠어. 하지만 내가 초큼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은 사장인 당신이 알잘딱깔센 하면 좋겠어'라는 의미의 "예스"를 말했는지를.
저맥락이 좋네 고맥락이 좋네 이런 이분법이 아니라, 정보와 트렌드를 동시에 공유하는 2024년의 지구촌에서, 이렇게까지 다른 문화들이 만나 일을 하고 프로젝트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언어 (독일어 한국어 이런 것 말고 문화적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며 서로 몰랐던 부분을 시도해 가는 것도 어떨까.
알잘딱깔센. 굳이 영어로 번역 안 해도 뭔 말인지 알죠?
이상 오늘의 짧은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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