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좋아한다. 개들도 나를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아주 어릴 적 두어 번 강아지를 길러본 적이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여건상한 번도 개를 집에 들여본 적이 없다.그럼에도 길을 걷다 지나치는 어여쁜 개들을 볼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쓰다듬기도 한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전세금을 받고 남은 돈이 2억 정도 있었다. 처음엔 안정적인 월세를 받으려 했으나 아내의 반대로 전세를 주었고 그 남은 돈의 절반 정도는 주식에 넣었다. 주식은 본전만 하면 다행일 정도로 아는 게 없었고 모험심 강한 아내는 창업을 해 볼 것을 종종 권한다.
소자본으로 창업이가능한 아이템들을 가끔 찾아보기도 했다. 편의점, 빨래방, 커피숍... 그러나 지금 나는 육아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자유로운 시간이 있기는 하나 온종일 장사에 몰두할 여건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적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무인사업을 생각해보았다.
아이템을 정하는 것에는 이러한 고민이 늘 뒤따라왔다.
잘 되는 것을 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것도 일로 하면 재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전혀 관심 없는 분야는 추진동력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렇담 어떤 일을 내가 좋아하는지 고민하다 한 가지 생각난 것이 반려견이었다.
미국에서는 도그워커라는 직업이 고소득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바쁜 직장인들을 대신하여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있는 도그워커들이 반려견 산책과 훈련, 행동교정을 맡아 준다. 우리나라도 몇몇 스타트업이 사업을 론칭해 시작하고는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이었고 펫시터는 전문직이라기보다는 알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도 반려견을 좋아하는 나는 관련된 일을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격증 취득도 알아보고 펫시터 플랫폼에 가입해보기도 했다. 아직 초기 단계라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었고 춘천에는 서비스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실망만 안고 포기하려던 차에 반려견 셀프 목욕 사업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목욕시키기 힘든 반려견들을 샵으로 데려와 안전하고 편리한 욕조에서 씻고 말리는 것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이용수요가 많을 것 같기도 했다. 춘천에 차고 넘치는 셀프 세차장들로 미루어 보아 자동차보다 훨씬 애지중지하는 반려견 목욕에 고객들이 쉽게 지갑을 여는 것은 당연했다.
프랜차이즈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창업비용은 5천만 원 내외였고 매장 위치를 잘 잡는다면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큰돈이 드는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사업의 단점들도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먼저 수요가 실제로 있을 것인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주기적으로 목욕을 시키고 있다. 가정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목욕을 시키고 있던 사람이 셀프 목욕 매장이 생겼다고 반려견을 동반하고 이동하는 수고를 들여가며 찾아와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인사업이라고는 하지만 목욕 후 뒷정리하는 것이나 사용법에 대한 문의, 파손의 문제 등등 주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일 듯했다. 시시때때로 불려 나갈 일들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상주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창업비용뿐만 아니라 월세 관리비 유지비 등을 생각하면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그나마 안정되지 못하고 중간에 폐업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고 다른 매장 얘기를 들어보니 별로 수익적인 면에서 재미없다는 소리만 귀에 쏙쏙 박혔다.
고객들 클레임은 또 어떤가.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는 반려견들이 매장에서 목욕 중 다치기라도 한다면? 벌써부터 앞이 깜깜하다. 무인사업이다 보니 안전에 대한 책임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사업을 시작할 때 이런저런 최악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결코 시작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장사와 안 맞는 사람이다. 난관을 뚫고 나갈 의지도 약하고 작은 부분에 집착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놓칠 일도 많이 생긴다. 가족 중에 장사를 해 본 사람이 많으면 종종 도움도 받겠지만 우리 가족은 대부분 공무원 집안이다.
돈은 벌고 싶지만 내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주말과 휴일에는 가족과 편하게 쉬고 싶다. 비단 반려견 셀프 목욕 사업뿐이랴. 지금껏 조금이라도 알아봤던 창업 아이템들은 한결같이 기대-걱정-포기의 사고 과정을 거치며 끝이 나고 말았다.
개를좋아하지만 개로 돈벌이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 돈벌이를 하다가 더 이상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돈이 좀 썩으면 어떠랴. 무인사업이든 뭐든 창업은 이제 포기하고 옆집의 로키와 뭉치, 앵두랑같이 즐겁게뛰어노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