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도 그럴싸한 영화 제목 하나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갑자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나에게도 "67년생 한*"와 같은 타이틀을 만들어 주어 나를 사랑해 주고 싶었다.
1남 4녀의 세 번째인 중간에 낀 남자아이, 아들이 혼자라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을 거란 생각을 하겠지만 2명의 누나들과 아래 동생들로부터 많은 구박과 견제를 받으며 자랐다.
그러면서도 부모나 집안의 대소사는 그 남자아이였던 나의 의무와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그런 연유로 나의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으로 들어온 아내는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그런 감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내와 나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그것은 고스란히 나에게 더 큰 대미지를 주는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
틈만 나면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흉을 보던 아내는 급기야 그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몇 배로 돌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의 귀책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정신적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당인리화력발전소 앞의 기차역(지금은 폐역이 되고 발전소도 공원이 됐지만)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리면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동내아이들이 모두 뛰쳐나와 기차가 들어오기 전에 철로 위에 못을 깔고 칼을 만들어 이순신 장군 흉내를 내며 칼싸움을 하고 놀았던 모습부터 떠오른다.
아마 세 바퀴 달린 용달차였을 것이다. 소독차의 하얀 연기 속으로 숨어버린 내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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