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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고학년 발달장애 아동 '분홍이'의 활동보조인 '연보라'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세부적인 사항에 조금씩 변화를 두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역할이 생기는 일은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시선은 각기 다르게 형성됩니다. 누군가 자신의 입장에만 몰두해 시야의 균형을 잃게 되면 사실을 보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은 그럴 때 주로 일어납니다.
지적 / 사회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의 보호자는 피보호자의 시야각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사고 추리가 원활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아닌 이의 몫까지 다루려다 보면 쉽게 피로하고 지치게 됩니다. 결국 보호자가 장기적으로 피보호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교사 등의 조력자와 대립 관계에 놓이는 아이러니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상대하는 일반인 역시 시선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발달장애인은 소통과 자기 방어 능력 등, 일반적인 사회적 기술이 부족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 특수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합니다. 불안감 때문에 상동 행동을 하는 아동을 체벌이나 열외로 대처하는 교사의 예를 들 수 있겠지요. 최악의 경우에는 발달장애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기관이나 심지어 가까운 친지에 의한 복지 제도의 부정 수급에 관련된 소식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기적이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주로 나이를 꼭지 삼아 나오는 말 입니다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공동체 윤리와 새로운 대세가 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이'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 보세요. '공무원', '학부모', '치료사'… 자주 오르내리는 대화 소재지요?
재미있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이중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어느 측면에서 구세대의 공동체적인 가치관을 기대합니다. 반면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주의적인 편의를 취하고 싶어 하지요. 노동자 가운데 근로 계약 상 주어진 분량과 시간 이상으로 일하면서 회사에 헌신하기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당사자가 늦은 저녁 시간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전화 상담을 하기를 당연스레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교사에게도 개인 생활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관적이지 못한 모순적 태도가 오롯이 무지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분명 그 기저에는 '스승은 제자에게 헌신할 의무가 있다'는 옛 사제관의 영향이 있겠지요.
흐름에 따른 추세는 합리성을 강조한 개인주의로 보입니다. "받은 만큼만 해."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사회에서 상기한 바와 같은 모순에 놓이는 일을 예사로 경험합니다. 그에 닦이다 보면 조금씩 변해 갑니다. 크고 작은 모순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유들유들 '요즘 ○○'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활동보조인 : 신체적 / 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신체활동, 가사활동 및 이동보조 등의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증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 지원 인력
활동보조 서비스의 사용은 장애 아동을 기르는 부모에게 있어 중요한 이슈입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는 초등학교 입학 이전까지는 직접 기관과 센터, 병원 등을 오가며 아동의 발달을 조금이라도 향상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동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형제 / 자매가 있거나 경제 활동에의 복귀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보통 그 분기점이 되는 것이 활동보조인의 고용입니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활동보조인과의 동행은 성인이 된 후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활동보조인'을 만나는 것은 모든 보호자의 희망 사항입니다. 현실이 기대에 못 미침을 인해 실망하는 말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물론 활동보조인이 문제가 될만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한 시간보다 많은 수당을 요구하기도 하고, 아동을 관리 감독할 최소한의 의무를 소홀히 해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보호자의 하소연이 활동보조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계약된 바 이상의 수고와 노력이라고 판단할 영역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습니다. "엄마처럼 상호작용해주지 않아요.", "정말 딱 센터 왔다 갔다만 해주시고, 위험한 행동 하지 않게 제지만 해주세요.", "우리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자주 한다고 더 못 보시겠대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등…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손에 아동을 맡겨야 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시대의 다른 모든 직군에서와 같이 '좋은 활동보조인'이란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 소개해 드릴 분들처럼 멋진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분들이 보여주시는 실천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변칙(Anomaly)이라는 사실입니다.
분홍이는 무척 예쁘게 생긴 자폐 아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지적 장애를 동반하고 있어 돌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변이나 식사 등의 기본적인 자조 활동이 전혀 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분홍이와의 수업을 어렵게 했던 것은 보호자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상황이었습니다. 분홍이의 여러 보호자들은 서로 갈등이 심했고 따라서 양육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분홍이에게 소중한 친구가 생겼습니다. 활동보조인 연보라 선생님입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염려였습니다. 과거 저희 작업실에 분홍이말고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 차례 헌 옷이나 저렴한 새 옷을 준비해 내준 적이 있었어요. 간단한 감사로 끝날 일이었지만, 얼마 후 다른 성별의 옷을 더 달라거나 당장 돈이 없는데 생필품을 대신 구매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게 되었어요. 단호히 거절하기는 했지만 심리적으로 괴로웠던 경험이었지요. 서운해하는 상대방에 대한 실망보다는 좋은 의도가 그에 마땅한 결과로 마무리되지 않았음에 대한 혼란감 때문이었습니다.
분홍이의 보호자들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교습비를 덜 받고 있었음에도 약속된 수업 시간이나 결제 일자를 잘 지키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보호자 가운데 일부는 문제 상황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요즘 젊은이'이자 '요즘 강사'인 저는 한 걸음 물러서서 분홍이와의 수업을 운영해 나갔습니다. 제게 맡겨진 활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은 성실하게 수행했지만 그 이상 분홍이의 생활을 개선시킬 방향을 모색하려 들지는 않았어요. 실천이 과잉의 기대로 옮겨 붙는 과정을 몇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신발 한 켤레는 연보라 선생님에게는 마중물에 불과했습니다. 늘 바쁜 보호자를 대신해 백방으로 뛰며 분홍이가 지원받을 수 있는 바우처를 찾았습니다. 분홍이의 까다로운 조건에 난색을 표하는 시설이 많아 발품을 꽤 파셨다는 이야기 역시 들려왔습니다. 아무 데도 못 가는 날은 교외로 드라이브라도 시켜 주셨다고 해요.
왜 슬픈 예감은 잘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분홍이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수록 보호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게 되리란 추측 말입니다. 보호자들은 분홍이가 밥을 많이 먹어도, 아예 먹지 않아도 연보라 선생님을 탓했습니다. 말을 못 하는 것도, 기저귀를 떼지 못하는 것도, 나이에 비해 키가 작은 것도 모조리 연보라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불만은 외침 대신 낮은 웅성거림으로 넓게, 또 끈질기게 맴돌았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싹싹 닦아보려고 해도 곰팡이처럼 다시 솟아나더라고요.
연보라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게 되시면서 분홍이를 돌보지 못하게 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회복에 시일이 걸리게 되어 언제 다시 업무에 복귀하실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지요. 보통 활동보조인이 그만두게 되면 곧 새로운 인력을 연결해 줍니다. 하지만 분홍이의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 후임자를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 무렵 보호자 가운데 한 분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어요?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날 집에 돌아와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연보라 선생님을 시작으로, 저는 활동보조 선생님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되돌려 받을 길 없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 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목욕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날마다 자신의 집에서 씻기고 저녁까지 챙겨 먹여 데려다주시던 선생님이 계십니다. 맡아보는 성인 장애인이 온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워 수업이 가능한 곳을 수소문한 끝에 홍천에서 저희 작업실까지 매주 태워다 주시는 분도 계세요. 날마다 기관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맡은 아동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열릴 때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부모님께 하나씩 설명하고 설득해 신청해 주시는 선생님 역시 계십니다.
아마 일반적인 가정의 아동을 맡아보았다면 칭찬이 자자했을 분들일 것입니다. 저만 해도 멋진 학부모님을 만나 잘하고 있다는 격려, 더 나아가 위로를 받은 경험이 많은 걸요. 그러나 지금 언급드린 모든 선생님들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되돌려 받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하고 계신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직업윤리나 연민, 종교적 신념, 하다 못해 돈… 어느 것 하나 정답이라 콕 집어낼 수 없습니다. 그저 '요즘 세상'의 변칙이라고 할 수밖에요.
참, 연보라 선생님은 여전히 분홍이를 맡아 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