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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Aug 10. 2021

점이랑 점이랑 1 : 노랑이를 만나실 여러분께

#문화도시춘천#일당백리턴즈#쓸모있는딴짓

 초등 저학년 발달장애 아동 '노랑이'의 어머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만화는 노랑이의 드로잉을 이용해 콜라주로 작업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노랑이예요. 저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대신 말해주는 이가 있어 유창하게 말을 합니다만, 실은 아직 제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제 생각이나 느낌을 서툴고 거칠게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양손을 꽉 쥐고 비틀기도 하고요, 진짜 속상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해요.

 제 친구들도 저랑 비슷한 상황이에요. 자기주장이 더 강한 녀석들도 있어요. 미술 선생님 말로는 어떤 애들은 작업실 재료 상자를 집어던지거나 물감 칠하려고 떠둔 물을 쏟아 버리기도 한대요. 자기 머리를 쥐어뜯거나 팔을 할퀴기도 하고, 남에게 그렇게 하기도 한다는 거예요. 덜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마치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거나 자기 할 말과 행동만 반복해서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도 몰라요!

 아마 평생 특수 교육이나 치료 분야를 연구하신 교수님들도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노랑이가 끝내주게 화창한 여름 오후에 왜 울부짖고 있을까, 또 그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답을 내려 주시긴 어려울 거예요.

 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 주된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갖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요구하기 어려워요. 선호추구 운동이나 공부처럼 하기 싫은 게 있을 때도 그래요. 회피 엄마에게 조금만 줄여 달라고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아요. 엄마와 미술 선생님이 재미있게 수다를 떨 때 저도 좀 끼워 달라고 하고 싶어서 그럴 때도 있어요. 관심추구 대화 내용을 따라가기는 힘들지만 저도 눈 맞춤할 줄 알거든요. 관심받을 줄도 알고요. 또 제 친구들 중에는 심심할 때마다 소리 지르는 녀석도 있어요. 귀가 웅웅 울리는 감각 자체가 재미있는가 봐요. 감각추구

 보통 저나 제 친구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이 네 가지 이유 중 하나 때문이거나, 그중 둘 이상을 섞은 까닭에서예요. 물론 진짜로 몸이 아프거나 해서 소리 지르고 울 때도 있어요. 제 스스로 어디가 아픈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것을 어른에게 알리기란 더 어렵거든요. 그러니 주의 깊게 봐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제 편지를 읽고 계신 여러분의 생각은 아마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 같아요.

 덜 혼나서 그래!

 생각하실 강경파 분들이 계실 거예요. 비록 제 징징거림이나 눈물이 때로 엄마나 선생님을 속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건 저에게 있어선 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에요. 자신을 표현한다는 이유만으로 강하게 꾸중을 듣는다면 저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거예요. 물론 저도 대화나 제스처 같은 일반적인 소통 방식을 배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답니다. 특히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제가 가게에서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쓸 때, 엄마가 어떻게 해주시는지 보여 드릴게요.

 행동    공개된 장소에서 떼쓰기 : 눈물을 찔끔거리고 우는 소리를 내며 가끔 크게 비명을 질러요.
 이유    선호추구 : 젤리가 먹고 싶어요! 200개쯤? / 관심추구 : 떼쓰면 사람들이 쳐다봐줘요.

 엄마는 우선 저를 가게 밖 조용한 장소로 데려가 주세요. 잘못된 행동을 그 자리에서 바로 훈육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러 사람과 물건이 있어 자극이 되는 요소가 많은 환경에서는 엄마 말에 집중하기 어렵거든요. 제가 엄마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면 엄마는 짧은 단어로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아직 알아들을 수 있는 말에 한계가 있다 보니 길게 꾸중하셔도 이해하지 못하고, 왜 혼나는지에 대해서 짚어낼 수 없다는 걸 아시거든요.

덜 사랑해줘서 그래!

 하는 온건파 분들의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제가 떼를 부릴 때, 저를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부모님 대신 저를 달래 주실 때가 있어요.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부모님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가 될만한 일입니다. 아마 부모님이 저를 그렇게 하도록 둔다면, 아마 피치 못할 이유가 있어서일 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기 거부하거나, 너무 심하게 울어서 바로 훈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겠지요. 그때 부모님 대신 저를 달래 주신다면, 저는 앞으로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더 자주 나쁜 행동을 하게 될 거예요. 낯설지만 상냥한 분께서 제가 좋아하는 사탕도 주시고, 다정하게 관심도 주시는데 안 할 이유가 또 뭔가요!

 이것은 저를 위한 '공개된 장소에서 떼쓰기'에 대한 대응책이에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물론이고, 저 자신에게도 모든 상황에서 다 들어맞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요. 하지만 문제적 행동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기능의 고리를 끊는다는 큰 틀은 어느 친구, 어느 상황에서라도 꽤나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저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케이스가 있을지 몰라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말로 훈육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고, 한 번 감정이 폭발하면 몇 시간씩 우는 고집 센 녀석들도 있어요. 또 친구 때리기나 자해처럼 위험하기 때문에 바로 개입할 필요가 있는 행동도 있겠지요. 어떤 쪽이든, 차근차근 행동의 구조를 점검하고 대안을 세우는 것은 시도해볼 만한 해결책이랍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에요.

 다양한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저나 다른 친구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일 때 저희들은 조금씩 분별력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일상 속에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치거나, 끊임없이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거나, 산만한 덩치로 아기처럼 구는 등 유별나게 행동하는 저희들을 만나신다면 꾸중이나 호통, 혹은 달램이나 간식 대신 마음속으로 가벼운 응원을 보내 주세요. 저희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등 피해를 드리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죄송해요. 그렇게 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서 저도 부모님도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어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춘천문화재단 <일당백 리턴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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