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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Jul 01. 2021

점이랑 점이랑

#문화도시춘천#일당백리턴즈#쓸모있는딴짓

 춘천이 내세우는 도시의 별명 가운데 문화도시가 있다. 여러 도시에서 살아본 나로서, 춘천의 문화가 지닌 독특한 장점을 꼽자면 가까운 이웃처럼 소박한 예술의 민낯을 들겠다. 춘천에서는 편안한 복장에 샌들을 질질 끌며 나가 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들을 수 있다. 커피 한 잔 사러 들어갔다가 지역 화가의 그림까지 구경할 수 있는 카페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맥주 한 병을 들고 털레털레 주말의 공원을 거닐다 보면 버스킹 중인 아티스트 두엇은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고 말이다.

 춘천의 <일당백>은 이처럼 소소하고 친근한 춘천의 문화를 시민의 영역까지 확장해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시민은 개인 혹은 팀을 이루어 꼭 해보고 싶었던 딴짓을 스케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소정의 활동비와 전문가의 조언을 지원받는다. 공고를 보자마자 방학 동안 해볼 프로젝트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보고 싶던 딴짓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발달장애 아동 여럿을 가르치고 있는 나는 친구들의 작업물을 어떤 방식으로든 더 넓은 세상과 공유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이미 같은 주제를 두고 몇 차례 실험을 거친 상태였다. <엽서 프로젝트>와 개별 구매자 연결을 통한 아트 주문 제작 역시 그 일환이었다. 

엽서 프로젝트

 <엽서 프로젝트>는 가장 오래 가르친 친구 Y와 함께 콜라주 중심으로 일러스트 시리즈를 구성해 지인을 중심으로 판매했다. 도감처럼 고정된 주제를 가지고 반복해 그리는 것을 즐기는 자폐성 장애 아동인 Y가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그리기 방식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소규모로 이루어졌던 데 비해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성경 구절과 기러기 이미지로 구성된 개인 작품

 미술 작품을 필요로 하는 개인 구매자와 아동을 연결하는 활동은 지금도 꾸준히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달장애 아동의 작업은 보통 독특한 색감과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각 요소라는 개성을 갖는다.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딴짓'을 이와 같은 개인 작업의 다수에의 확장과 그에 따른 결과물 전시로 잡았던 초기 아이디어는 그런 특이점을 일반 대중과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첫 번째 워크숍에서 받은 멘토로부터의 조언은 나의 초안을 바꾸어 놓았다. '기존에 하던 일의 연장이 아닌, 당사자가 진짜 즐거운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 비교적 단순한 성향인 나는 취미를 위시한 개인 여가와 기본적인 업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편이다. 이는 일상의 효율을 극대화해주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순간 스트레스와 긴장에 휩싸이게 만듦을 인해 전반적인 생활의 질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멘토가 그 부분을 알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지적이었다. 시안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 - 즉 미술 교육을 한 꺼풀 벗겨내기로 한 것은 그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어떤 작업이 좋을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첫째, 기록하기. 

 나는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남기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해 글쓰기나 그리기로 진로를 정하고 싶어 했다. 막상 미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개인의 삶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교육을 택했지만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즐겁지만 보고 느끼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간직하던 때의 즐거움은 꽤나 큰 몫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 부분을 만회해 보고자 시작한 것이 브런치라는 매체이기도 하다.

 둘째, 대언하기.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역시 중요한데, 일당백이란 사회로부터 얻은 기회니 그만큼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상을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재작년 적어둔 이 글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형제가 함께 했던 어느 수업에서의 인상을 기록한 것이다. 소통 방식이 서툰 장애 아동은 의사 전달의 수단을 잘못 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당시 내 친구의 경우는 하고 싶지 않은 작업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몇 차례는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신경이 집중되었지만, 곧 그 녀석의 작은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 아동의 문제적 행동은 당장 보호자 혹은 교육자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정으로 소외되는 것은 같은 자리에 놓인 비장애 형제다. 그들은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알맞은 처치를 제 때 받기 어렵다.

 이처럼 장애 아동을 우선함을 인해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비단 그 형제나 자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부모나 교사 역시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란 역할론 속에서 그들이 장애 아동을 양육하거나 가르치며 느끼는 좌절이나 부정적 감정의 해소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자폐 아동 J가 내가 그려둔 낙서에 색을 입혀준 드로잉

 일률적으로 타자화되는 것은 장애 아동과의 삶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과 심상을 두고도 마찬가지다. 다른 모든 가족 관계, 또 사제 지간처럼 어린이가 주는 보편적인 기쁨이 존재한다. 그것은 비록 대단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아도 분명히 실재하며 눈물만큼이나 웃음 역시 자주 안겨준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대개 그러한 세세한 행복의 결까지는 읽어내려 들지 않는다. 기계적인 연민에 멈추거나 심지어 소소한 즐거움을 "불쌍해!" 한 마디로 절하해 버리기도 한다.

 <점이랑 점이랑>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갖는다.

 장애 아동과 함께 하는 가족이나 교사가 아이를 통해 경험하고 느낀 솔직 담백한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장애 아동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쉽고 또 가깝게 익힐 수 있게 하고자 한다. 장애 아동을 위한 미술 교육은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많은 선을 연결하는 지점이 되는지가 우리 삶의 결과를 대변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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