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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Oct 02. 2023

구멍 (1/4)

1. 나에게도 이런 일이

운전하는 것이 나의 직업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까지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 내가 담당한 구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보통 일 년에 50,000km에서 60,000km 정도 운전을 했다. 게다가 일을 하는 것 말고도 가족끼리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에도 운전을 했기 때문에 매년 70,000km 넘게 운전을 했다. 


이렇게 7년을 보내보니 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목격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눈이 오는 날이면 고속도로 도랑(Ditch)에 빠져있는 차들이 언제나 2~3대는 있었다. 바로 앞에서 달리는 자동차나 트럭의 타이어가 터지는 것도 몇 번 목격하였다. 또한 앞에서 잘 가던 트럭이 갑자기 쓰러져서 고속도로를 막아버리는 일도 경험해 보았다. 다행이었던 점은 내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작은 문제가 생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한 번은 겨울 끝자락에 지붕에 쌓인 눈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밤 새 눈이 내리면 아침에 드라이브웨이(Driveway)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느라 바쁘면 차 위에 쌓인 눈은 대충 치우게 된다. 문제는 차 위에 쌓인 눈을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낮에는 햇빛을 받아 이 눈이 조금씩 녹다가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점점 얼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오고 나서 며칠 후 운전을 하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니 지붕에 쌓여있던 얼음이 앞 유리창으로 미끄러져 내려와서 작동하고 있던 와이퍼를 눌러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와이퍼를 돌리는 모터가 고장 났는지 갑자기 와이퍼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뭐 비도 많이 안 오니까 정비소까지만 가면 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와이퍼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날 처음 깨닫게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더라도 와이퍼가 작동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날 정비소까지 가는 길 15분 동안 덜덜 떨면서 운전을 했다. 그 사건 이후 차 지붕 위에 쌓인 눈도 반드시 치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다른 문제들은 모두 타이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 놈의 캐나다에는 땅에 나사못(스크루)이 왜 이리도 많이 떨어져 있는지 지금까지 세 번이나 타이어에 나사가 박혔다. 그중에 두 번은 타이어 옆면에 너무 가깝게 박혀서 결국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타이어에 나사가 박혔다고 당장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귀찮고 돈과 시간이 든다는 정도의 문제 이긴 하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달리다가 타이어가 터지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하루는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검사를 나가고 있었는데 운전 중에 딴생각을 하다가 고속도로 위에 떨어진 물체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툭'하는 소리가 들려서 레어뷰미러를 보니 저 뒤로 큰 플라스틱 물체가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내가 땅에 떨어져 있던 플라스틱 같은 것을 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차 싶었지만 바로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라서 계속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10km 정도를 달리다 보니 갑자기 차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뒤쪽에서 '방방방방'하는 소리도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역시 조금 전에 부딪힌 것이 문제였을까? 마침 고속도로 출구가 가까워서 그리로 차를 뺐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니 오른쪽 뒷바퀴에서 엄청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니 타이어에 어른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고 거기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이 차량을 관리하는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사고가 난 차량은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제공한 차량임) 자동차 제조사의 워런티가 남아있다고 거기다가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거기다가 전화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지금 전화하는 곳이 안전한 곳이냐 그리고 스페어타이어가 있느냐였다.


아! 맞다!! 스페어타이어가 있겠구나!!!


너무 경황이 없어서 스페어타이어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여기에 서서 견인을 기다리면 한 두 시간은 그냥 걸릴 테니 그냥 스페어타이어를 달고 정비소까지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어 교체를 하는 것이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하는 일이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화제의 영상! https://youtu.be/qY9RjNWY-vw?si=H-V92hr1bO_M_kJi



사실 내가 회사 차에 스페어타이어가 실려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 집의 차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고장이 잦기로 유명한 미국 회사의 차인데, 이 망할 놈의 차에는 비용과 공간을 줄이려고 그랬는지 스페어타이어가 달려있지 않다. 그나마 일부 모델에는 공기를 불어넣는 형식의 스페어타이어(Inflatable Spare Tire)가 들어있다는데 내 차에는 그것조차 없었다(재고가 남은 것을 할인받아 샀기 때문에 나에게는 옵션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음). 그렇기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나의 머릿속에서는 '회사차내 차≠스페어타이어'라고 결론을 지었나 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내 차에도 당연히 스페어타이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 먼 길 갈 때 결국 문제가 생기는 것은 타이어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차가 잘 나와서 그런지 남들 하는 것만큼만 관리를 해도 길에서 엔진이나 브레이크 등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드문 것 같다. 그래서 Inflatable Spare Tire라도 사려고 찾아보았더니 캐나다에서는 가격도 비쌀뿐더러 구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 미국 내려갈 일 있으면 그때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급하지 않으면 보통 생각만 하고 끝이 난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 국경과 가까운 편이어서 30~40분 정도를 달리면 국경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뉴욕 주의 맨 위쪽이라 국경을 건넌다고 '오~ 미국'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2시간 정도 더 달리면 그럭저럭 큰 중소규모의 도시에 다다를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힘을 내서 5시간 정도 더 달리면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들 까지도 갈 수 있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렇게 까지 멀리 간 적은 없었지만 지난여름 (2023년 8월) 오랜만에 워싱턴 DC까지 내려갈 일이 생겼다. 이렇게 먼 길을 운전할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도구(Inflator) 그리고 렌치와 소켓을 뒤에 싣고 가고는 하였다. 하지만 막상 들고 가도 단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었거니와 팬데믹을 거치며 감을 잃었는지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아무것도 싣지 않고 그냥 내려갔다. 


역시나 별 문제는 없었다. 내려가는 길도 무난했고 도착해서도 무난했다. 그렇게 3일을 보내고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다음 날 워싱턴 DC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코스트코에 들러서 필요한 것을 사고 나왔는데 딸아이가 치즈케이크팩토리의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곳은 (토론토에도 있긴 하지만) 미국에나 가야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마침 코 앞에 있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역시 미국에는 사람도 많아서 음식점 앞이 매우 복잡했다. 그래서 우선 와이프와 딸아이가 내려서 주문을 하러 갔다. 그 사이 나는 차를 돌려서 테이크아웃 자리에 주차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연석에 옆바퀴가 쓸리고 말았다. 보통의 매끄러운 연석과 달리 모양을 내려고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연석이었는데, 타이어가 쓸리자마자 타이어에서 '쉬-익'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새는 것이 아니라 짧은 사이에 한 번에 다 빠지는 소리였다. 


아.. 망했다... 


내려서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타이어 옆이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이것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아.. 딱 봐도 망했다.



그래도 타이어가 한 번 터졌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상황 판단은 잘 되었다. 머릿속으로,


1. 이 차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없으니 무조건 견인차를 불러야 한다

2. 자동차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견인 서비스(Roadside Assistance)를 부르자

3. 견인이 되고 나면 타이어를 교체하자


라고 생각했다. 


땅덩어리가 넓고 운전할 일이 많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새 차를 사면 보통 자동차 제조사에서 5년 동안 견인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평생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서비스였지만 마침 차를 산 지 4년 9개월 정도 되었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의 견인 서비스로 전화를 했다.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이곳 치고는 생각보다 빨리 전화가 연결되었다. 내 차의 식별 번호(VIN)와 사고가 난 위치를 말해주니 확인을 해보고 곧 전화를 준다고 했다. 십여분 정도 기다리니 전화가 왔다. 하필이면 토요일 저녁이라 당장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은 (당연히) 없다고 했다. 그래도 우선 견인차를 보내서 가장 가까운 딜러샵으로 견인을 해준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딜러샵이 열면 타이어를 고치라는 것이었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딜러샵은 일요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아.. 내일 올라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주말이라 견인차가 도착하기까지 한 두 시간은 걸린다는 점은 덤이었다. 일단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여러 가지 후회가 몰려왔다. 첫 번째는 '좀 조심할 걸 왜 주차를 이렇게 바짝 해서 타이어를 긁었을까'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다른 견인 서비스에 가입할 그랬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제조사에서도 견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때는 가장 가까운 딜러샵으로만 견인을 해준다. 그리고 견인차가 도착하는 시간도 너무 느리다. 다른 서비스, 예를 들어 CAA에 가입했다면 견인차가 오는 시간도 훨씬 빠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견인을 해주는데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렇게 끊임없이 후회를 하고 있다 보니 갑자기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도난방지용 키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바퀴가 떠졌을 때가 아니라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야 말로, 


정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난 방지용 Wheel Nut을 풀기 위해서는 오른쪽에 보이는 키가 필요하다



이 키가 없으면 '공식적으로는' 휠을 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도난 방지용 휠 넛'이 아닌가? 견인차를 기다리며 검색해 보니 키가 없을 경우 물리적으로 빼는 방법이 있는 듯했지만 웬만한 (정상적인) 타이어 가게에서는 책임 문제로 키가 없다면 타이어 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보통 딜러샵에서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차량에 달린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딜러샵으로 가야 했다. 


처음 계획은 견인차가 오면 돈을 더 주던 어쨌든 일요일에도 여는 타이어 가게로 견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꼼짝없이 딜러샵으로 가서 월요일까지 기다리게 생겼다. 당장 내일 다른 호텔로 떠나야 하는데 취소도 안되니 정말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는 렌트를 해서 가족들과 올라간 후 나 혼자 월요일 새벽에 다시 내려와서 차를 고치고 가는 것이 가장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온갖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견인차를 기다리는데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견인차가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몇 분마다 견인 서비스에서 보내 준 링크를 열어서 견인차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치가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꽤나 가깝게 오는 것 같아서 일단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견인차가 내 위치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아예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다. 


캐나다 견인 서비스에서 현지 견인 업체 번호라고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해봐도 잘못된 번호라며 받지를 않으니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결국 다시 처음 전화를 걸었던 캐나다 견인 서비스로 전화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견인차가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여기서 두 시간도 넘게 기다렸고, 전화를 해봐도 받지를 않는데 내가 전화를 안 받았다니!!


미안하다며 다른 견인 업체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이미 저녁 8시가 넘어 날은 껌껌해지고 있는데 다시 몇 시간이고 기다리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견인 업체 번호가 문자로 날아왔을 때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다행히 전화를 받은 아저씨가 문제의 '치즈케이크팩토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삼심 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하니 일단 어찌 되었던 마음이 놓였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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