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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Oct 18. 2021

글이 소비되는 방식

글도 돌고 돌아 재활용되는 세상

내가 처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의 일로 돌아보니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인 것 같아 왠지 슬프지만. 어쨌든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적을 '엠파스'에 처음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남이 관심을 가질 이야기보다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위주로 글을 쓰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당시 쓴 글들이 종종 '블로그 투데이'에 선정되어 엠파스 메인 화면에 노출되기도 했는데 엠파스 자체가 네이버나 다음에 비해 워낙 유입량이 적다 보니 그러나 저러나 인기가 없기는 또 매한가지였다.  


2006년 12월 캡처한 엠파스 블로그 메인 화면. 경쟁사들에 비해 인기가 별로 없던 엠파스 블로그는  결국 2009년 문을 닫고 이글루스로 통합되어 버렸다.


하지만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하게 되면서 블로그에 쓸 글도, 글을 쓸 시간도 별로 없어졌다. 결국 2010년 가을부터는 업데이트되는 글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는 블로그가 되었다가 그나마 캐나다로 이민을 온 2014년 가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캐나다에 와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확실히 한국에 있을 때보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늦어도 3~4시에는 일이 끝나니 시간이 참 많이 남았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시간을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캐나다 정착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블로그에 계속 글을 쓸까 했지만 어차피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글을 써야 한다면 돈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애드센스를 달 수 있는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티스토리라는 블로그가 애드센스를 달기에 가장 좋아 보였지만 당시에는 초대장이 없으면 블로그 개설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뭐 이런 게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결국 구글에서 만든 블로그스팟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고 2017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캐나다 정착기를 쓰기 시작했다.


2021년에도 이런 거지 같은 서비스의 블로그가 있다니!


그런데 블로그스팟을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것은 정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블로그가 아니다. 스킨을 꾸미기도 어렵고, 레이아웃을 변경하기도 어렵고, 글씨체도 변경하기 어렵고 아무튼 정말 최악의 블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애드센스 승인은 잘 나왔는데 문제는 애드센스를 달아도 유입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한 달에 고작 2~3불 수익 발생하는 것이 다였다. 1년 2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캐나다 정착기를 완성하였지만 방문자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었다. 결국 다시 한번 블로그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이 마침 초대장 없이도 누구나 티스토리를 만들  있게 바뀌었기 때문에 티스토리에 그동안 썼던 글들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왔다.  글들을 옮겨오는 것도 생각보다 중노동이었다. 블로그스팟에 글을  때는 어차피 보는 사람도 별로 었기 때문에 대충대충 써서 이상한 문장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가다듬으면서 글을 옮기느라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티스토리는 블로그스팟보다는 확실히 유입량이 많았다. 보통 하루에 300~400 정도가 들어와서 애드센스 수익도  달에 10 이상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마라도  것일까. 어느  우연히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고 없이 오직 글만 있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같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몰래 개설 신청을 하고 말았다. 만들어 놓고 나니 브런치에도 무엇인가 글을 써야 해서 처음에는 정보와 내가 하는 일에 관련된 글들은 티스토리에 올리고 개인적인 글들은 브런치에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경계도 뒤죽박죽 되어 그저 내가 운영하는  하나의 인기 없는 블로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부리려고 그랬는지 결국 올해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을 해두어야겠다.






이쯤 되면 관심종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색하지 않겠지만 정작 셋 모두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에 꼭 그렇지는 않다. 게다가 한동안은 유튜브에 집중하느라 그나마 있던 티스토리 방문객도 절반으로 줄고 말았다. 이쯤 되면 뭐하러 브런치는 시작했을까 생각하던 어느 날, 평소에는 30~40명 정도인 브런치의 방문객 수가 갑자기 천 명을 넘는 것이었다. 숙성된 블로거의 경험상 이런 일은 어딘가에 노출되었을 때만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바로 포탈 메인 화면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얼마 전 썼던 비닐봉지 우유라는 글이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유입경로를 살펴보다가 내 글과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론사나 기자라고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일까 싶은 곳에서 올라온 기사였는데 혹시나 해서 클릭을 해보았다.



인XXX 김XX 기자 = 우유는 우유곽이나 플라스틱통 등에 담겨 있는게 일반적이나 비닐에 담긴 우유도 있다. 바로 '삼각커피우유'라 불리는 삼각형의 비닐봉지에 담긴 커피 우유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이 우유는 30~40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그런데 캐나다에서는 대용량의 우유도 '비닐 봉지'에 담아 판매한다고 한다. 비닐로 포장하면 쉽게 찢어지거나 터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판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 공영 방송 'CBC'에 따르면 비닐봉지 우유의 유래는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이전, 캐나다는 영국처럼 길이는 야드(yd), 질량은 파운드(lb)를 단위로 하는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주도로 1970년부터 미터(m)를 길이, 리터(ℓ)를 부피, 킬로그램(kg)을 질량의 기본 단위로 하는 '미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음식 포장 용기 등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는 제조사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로 다가왔다. 당시 주로 유리병을 사용해 우유를 담아왔는데 변화를 따르기 위해서는 생산라인을 새로 설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 역시 당시에는 비닐봉지보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비닐봉지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캐나다에서는 4ℓ짜리 대용량 우유를 비닐 봉지에 담아 판매하게 됐다. 그러나 현재는 캐나다 모든 지역에서 비닐봉지 우유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서부에서는 비닐봉지 우유를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서부에서는 1980년대부터 플라스틱 용기를 이용한 우유 포장이 인기를 끌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온타리오 등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비닐봉지 우유를 판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유 용기에 대한 규제 때문이다. 온타리오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우유를 팔 경우 보증금을 받거나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보니 가격은 올라갈 수 밖에 없을 터. 실제로 온타리오에서도 1ℓ, 2ℓ짜리 플라스틱 통에 담긴 우유도 판매하고 있으나 비싼 가격 때문에 우유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대용량인 4ℓ 비닐봉지 우유를 구입한다고 한다. 이에 온타리오에서는 우유 홀더라 불리는 플라스틱 용기도 함께 판매되고 있다.

해당 사실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조명되며 많은 이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내가 썼던 글과  '기사'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글이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닐봉지 도입 과정 - 서부 캐나다 사례 - 온타리오 사례' 이어지는 글의 구조가 동일하다. 나도  글을   여기저기서 정보를 찾아서 쓰니까  '기자' 여기저기 클릭을 해서 기사를 썼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복불복은 아니고 본인이 글도 요약하고 다른 사진도 찾아서 썼으니까.


사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번 토론토에 갔을  발생하였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도시들에 있는 한국 슈퍼를 가보면 출구에 반드시 현지에서 만든 한국 신문들이 놓여있다.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아니고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현지 기사를 번역하거나 한국 기사들을 짜깁기  수준의 신문들이다. 그래도 공짜이기 때문에  집어  필요는 어서 이번에도 런저런 신문들을 집어왔다.


사진에 나와있는 것 말고도 더 많은 종류가 있다.



집에 돌아와서 신문 중의 하나를 넘겨보다가 뭔가 낯익은 제목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4L짜리 비닐봉지 우유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정말 설마 했다. 하지만 읽자마자 인터넷에 돌고 있는 그 기사를 옮겨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신문들에게서 저작권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사이 나의 글은 '우유를 마시는 불편한 방법'에서 '4L짜리 대용량 우유를 '비닐 봉지' 담아서 파는 캐나다 마트' 거쳐 '4L짜리 비닐봉지 우유의 불편한 진실' 바뀌었다. 나름대로 글을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고 정확한 자료만 사용하려고 하지만 그저 인터넷에 올라온 하나의 글이 돌고 돌아 종이에 까지 실리는 것을 보니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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