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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ul 29. 2021

Theodore Tugboat

예인선 띠오도르

지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캐나다 CBC 방송에서는 Theodore Tugboat(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예인선 띠오도르')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대부분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들이 그러하듯 이 애니메이션도 띠오도르와 그의 친구들이 항구에서 이런저런 문제들을 겪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잘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무선으로 조종되는 모형을 이용하여 촬영되었는데 '증기기관차 토마스'의 모형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실 것이다. 물론 토마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 옆에 앉아서 볼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이 띠오도르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은커녕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토마스와 띠오도르. 그러고 보면 둘은 매우 유사한 형태의 TV 시리즈이다.



그래도 90년대 말에는 이 띠오도르가 캐나다를 넘어 미국의 PBS(미국의 공영방송)에서도 방송이 되었다. 당시 프로그램의 인기가 워낙 좋아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주인공인 띠오도르를 실제 예인선 크기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2000년 4월 노바스코샤의 한 조선소(Snyder's Shipyard)에서 진수된 이 배는 Theodore Too(띠오도르 투)로 명명되었다. 진수된 이후 남쪽으로는 탬파베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시카고까지 총 50회에 달하는 시티투어를 했고 US 해안경비대(Coast Guard)의 마스코트로 활약을 하기도 하였다.



2019년 핼리팩스 항구에 정박 중인 띠오도르(출처: commons.wikimedia.org)



띠오도르의 TV 시리즈는 2001년 막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띠오도르 투는 핼리팩스에 머물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한동안 배를 타 보는 관광 상품과 컵, 책과 같은 관련 기념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래서 2006년 띠오도르 애니메이션 제작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이 배가 돈을 엄청 벌어들이는 것으로 묘사된다(참고로 제작사는 2001년 파산해서 이 수익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다는 쓸쓸한 내용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띠오도르 투'의 인기도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한두 번이야 신기해서 배도 타보고 기념품도 사겠지만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 TV 시리즈 자체를 모를 테니 이 배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줄었을 것이다. 그렇게 띠오도르 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혔지만 배의 실체까지 잊힐 수는 없었다. 결국 2020년 이 배를 소유한 회사는 띠오도르 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사실 내가 처음 '띠오도르 투'라는 것에 대해 듣게 된 것이 바로 무렵이었다. 당시 전국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뉴스에서 한때 유명한 TV 쇼(영어로 TV 프로그램은 모두 '쇼'라고 함)의 캐릭터였던 이 배가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이었다. 판매 호가는 한국 돈으로 약 4.5억 원으로 이 배가 정박해 있는 핼리팩스 다운타운의 콘도(아파트) 가격보다 싸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흠. 별의별 것이 다 뉴스에 나오는구먼'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이 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 이 배가 다시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각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 몇 개월이 지난 2021년 4월, 온타리오에 있는 한 회사가 환경 보호 활동 홍보 등의 목적으로 이 배를 구입하였고, 띠오도르 투는 20년 동안 정들었던 핼리팩스를 떠나 새로운 주인이 있는 해밀턴(토론토 남서쪽에 위치한 산업도시)을 향해 항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캐나다라고는 하지만 핼리팩스와 해밀턴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선거리로 약 1,8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띠오도르 투가 핼리팩스에서 해밀턴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과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를 거쳐야 하는데 구글맵으로 경로를 그려 보니 대략 3,500km에 달한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항해하는 중간중간 항해 경로에 위치한 퀘벡, 몬트리올, 킹스턴 등의 도시들에 들른다고 했다.


오호라! 내가 살고 있는 킹스턴에도 들리는구나!!


띠오도르 투가 항해한 지도. 핼리팩스에서 해밀턴까지 대략 3,500km를 항해했다.




2021년 6월 10일 (다시는 못 돌아갈) 핼리팩스를 출발한 띠오도르 투는 한 달 이상을 항해하여 7월 12일 내가 살고 있는 킹스턴에 도착하였다. 비록 띠오도르 터그보트 애니메이션을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심지어 애들에게 틀어주니 막내가 무섭다고 울기 시작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배가 도착한 다음 날인 7월 13일 띠오도르 투를 만나기 위해 가족들을 이끌고 녀석이 정박해 있는 해양 박물관(Marine Museum of the Great Lakes)으로 향했다.


이 날 하루 종일 꽤나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 배를 보기 위해 모였을 것이다



이 놈의 코로나 때문에 배가 정박해 있는 곳에 가려면 줄을 서야 했다. 줄을 안 서고 배가 정박해 있는 맞은편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마침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어서 녀석에게 가까이 가보기로 하였다.



물에 비친 띠오도르 투. 참고로 이곳은 1892년 배를 짓는 독(Dry Dock)으로 시작해서 1975년부터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생각보다 줄은 짧았지만 한 번에 들여보내는 인원이 워낙 적어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입구를 통과한 다고 한 번에 녀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구역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결국 우리도 띠오도르 투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띠오도르 투. 눈이 맑은 녀석이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거대했다. 사람들은 이 배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예전에 자기가 보았던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거대했다. 은근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따르면 예전에는 애니메이션처럼 눈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앞으로 이 배는 환경 보호 활동을 위해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마침 본격적으로 그러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킹스턴에서부터라고 한다. 녀석이 여기에 정박해 있는 동안 물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온도계를 달아서 앞으로 향해를 하면서 온타리오 호수의 온도를 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정보는 온타리오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실시간으로 물의 온도를 재는 것이 무슨 큰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중요한가 보다.



동네 뉴스에 소개된 띠오도르 투.




보통 배의 수명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년 정도 되었으면 충분히 늙은 배가 아닌가 싶다. 띠오도르


아마 띠오도르 투가 이번에 매각되어 핼리팩스를 떠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보통 배의 수명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조된 지 20년이나 되었으니 적당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곧 폐선이 될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항해 동안에는 적어도 항해 경로에 있는 도시들 사이에서 이 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앞으로 해밀턴에 머물게 되면 더 이상 이번만큼의 인기와 관심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순전히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와는 별로 상관도 없고 별다른 추억이 있는 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도 인연이니 녀석이 해밀턴의 명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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