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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un 22. 2021

mRNA 백신 접종기, 그것도 교차로

나도 이제 항체보이(AntibodyBoy)

캐나다의 코로나 백신 접종은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편에 속하는 2020년 12월 14일에 시작되었다. 처음 몇 주간은 화이저-바이오엔테크 백신만 접종이 이루어지다 12월 말에 모더나 백신도 승인되어 두 백신의 접종이 이루어졌다. 물론 자신이 맞을 백신을 선택할 수는 없었는데 보관이 힘든 화이저는 냉장 보관 설비가 있는 대도시 주변으로 보내졌고, 보관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모더나 백신은 의료 시설이 부족한 북쪽 지방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캐나다 국내에서 백신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 상 초반에는 백신 수급이 매우 불안정했다. 한 가지 예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백신 수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심지어 작년에는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N95 마스크 수출을 막는 일까지 발생했다!) 저 멀리 벨기에에서 수입을 해야 했다. 캐나다는 돈은 많은지 사전에 이런저런 회사와 백신 구매 계약을 해놓아서 전 국민이 3~4번씩 접종하고도 남을 만큼의 백신을 확보했음에도 수입되는 물량이 워낙 부족해서 매일같이 연방 정부가 비난을 받았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백신 접종 계획


실제로 올해 3월까지는 주변에서 백신을 맞았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에서는 백신 접종을 3단계로 나누어서 진행 중인데 1단계는 70~80대 이상 고령자 및 의료 기관 종사자들만 백신을 맞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맞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봄이 다가오면서 2월 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승인되는 등 조금 백신 수급이 나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봄을 맞이하면서 캐나다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정말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못해도 못할 수가 싶을 정도로 확진자 수와 중환자실 입원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넘어섰다. 특히 온타리오의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4월부터는 하루 확진자 수가 4,000명을 넘어섰는데 온타리오 인구가 약 1,500만 명인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엄청난 숫자이다(한국에서 확진자가 하루에 13,000명씩 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2021년 4월까지의 온타리오 확진자 상황. 온타리오의 3차 웨이브는 심각했다. 참고로 2021년 6월 온타리오 하루 확진자 수는 300~400명 수준이다. 



이때부터 온타리오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 계획을 약간 수정하여 광역 토론토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접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4월부터는 그 외 지역에서도 올해 만 40세 이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계속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맞을 수 있는 백신이 있다면 사양 말고 맞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젊디 젊은 만 38세이기 때문에 아스트라제네카를 맞고 싶어도 맞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필수 업무 종사자(Essential Worker)'에 속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는 순위가 빨랐다.






한편 온타리오의 백신 예약 시스템은 정말 비효율적이다. 다른 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온타리오에서는 백신을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이 있고, 지역별로 나누어진 보건 지역(Health Unit)이 운영하는 시스템도 있고, 약국들에서 자체적으로 온영하는 시스템도 다 따로 있다. 그래서 자기가 접종 예약 가능자인데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했고, 알고 있더라도 도대체 어디에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나에게는 득이 되었다. 우리 와이프는 동네 누구보다도 온타리오 백신 수급 정보에 밝은데(사실 그저 뉴스만 계속 챙겨 듣고 가끔 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 정도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주변 모든 사람들이 와이프에게 백신 상황을 물어보게 되었다), 어느 날 와이프가 주 정부 백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아무리 봐도 '필수 업무 종사자'가 예약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와이프도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고 읽어 봤지만 문제가 없어서 나 보고 어서 들어가서 예약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접속해 보니 별문제 없이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정부 계획 대로라면 나는 6월이나 되어야 백신을 맞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빠른 5월 12일에 1차 접종을 할 수 있었다. 참고로 하루 이틀 뒤에 예약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 보니 어느새 6월 초까지는 전혀 자리가 없는 것을 보아 잠시 예약이 열린 것이 아닌가 싶다.


1차 백신 접종소. 촬영 금지라서 이것밖에 찍을 수 없었다.



2021년 5월 12일이 되었고 나는 1차 접종을 하기 위해 평소에는 아이스링크로 사용되는 접종장으로 향했다. 겨우 한 달 전이었지만 당시에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정말 내가 지금 맞아도 되나 싶었다. 혹시나 나는 아직 대상이 아니라고 할까 봐 회사에서 준 '필수 업무 종사자 확인서'를 들고 백신을 맞으러 갔다. 


회사에서 성심성의껏 써 준 레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쓸 일이 있었을까 싶다.


접종장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 있어서 약간 놀랐다. 예약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무슨 이유로 백신을 맞으러 왔냐고 묻길래 '필수 업무 종사자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혹시나 싶어 확인서가 필요하냐고 먼저 물어봤지만 다들 알아서 잘 예약했겠지 싶어서 그런지 확인서는 확인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약국에서 접종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스스로 예약하지 않는 이상 보건소를 통해서 백신 접종을 하면 맞으러 가서야 무슨 백신을 맞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보건소를 통해서 맞은 사람들을 보면 다들 화이저를 맞았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화이저를 맞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가서 보니 역시나 화이저를 접종하고 있었다. 


주사를 맞으니 팔만 조금 아프고 다른 증상은 전혀 없었다. 열이 나지도 않았고, 근육통도 없었다. 그저 팔만 조금 아프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주변에서도 화이저를 맞고 약간 아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접종을 하고 나서 15분 동안 그 자리에서 대기를 해야 했는데 그 사이 2차 접종 예약을 하게 해 주었다. 백신 수급 문제로 캐나다에서는 1차 접종과 2차 접종 사이가 14주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도 2차 접종은 9월 초에나 가능했다. 여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맞겠구나 싶었다.


 




1차 접종을 하고 3주 정도 지났는데 그 누구보다 백신 수급 상황에 밝은 와이프가 또다시 움직였다. 이 정도 되니 나는 와이프를 '코로나 (백신) 전도사'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6월 초 와이프가 갑자기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은 누구나 예약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재빨리 나의 2차 접종을 예약해 주었다. 그 결과 나의 2차 접종일은 놀랍게도 9월 초에서 6월 12일로 앞당겨졌다. 1차 접종을 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맞게 되다니! 역시 코로나 전도사는 다르다!!


우선 예약을 하고 상황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우리 동네 보건소에 모더나 백신이 대량으로 들어와서 드라이브 쓰루로 접종을 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화이저와 모더나의 교차 접종에 대한 연구 결과나 정보가 부족했지만, 뭐 그놈의 그 놈인 것 같아서 그냥 맞기로 했다. 게다가 마침 접종을 며칠 앞두고 뉴욕타임즈의 팟캐스트에서 mRNA 백신 이야기를 했는데 듣고 보니 이거야 말로 화이저나 모더나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맞으러 갈 수 있었다.


그래서 6월 12일 토요일. 이번에는 북쪽으로 20분 정도를 달려서 한적한 곳에 마련된 드라이브 쓰루 접종장으로 향했다. 가서 보니 이번에도 많은 차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잘 진행이 되었다. 도착을 하니 총 4단계를 거쳐야 했다. 첫 번째 사람은 나의 예약을 확인해 주는 사람이었고, 두 번째 사람은 의사 선생님으로 화이저 - 모더나 교차 접종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뭐 기본적으로 똑같은 백신이고, 연구 결과는 부족하지만 일부 연구 결과 교차 접종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교차 접종에 동의를 하면 앞으로 가라고 해서 세 번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세 번째 사람은 코로나 증상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열이나 기침은 없는지, 어디 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지막 관문이 눈 앞에 있다!


마지막 관문은 물론 백신 접종이었다. 접종을 해 주는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퀸즈대학(Queen's University)의 의대생들이었다. 주말에도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니 훌륭한 학생들이 아닐 수 없었다. 1차 때 부작용은 없었는지 묻길래 팔이 조금 아팠던 것 말고는 없다고 답을 했다. 2차 때는 면역 반응 때문에 고열, 근육통, 오한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물론 이때까지는 별생각 없이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접종을 마쳤다. 


그런데 2차 접종을 마치고 나니 특이하게도 팔이 아픈 것조차 없었다. 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서 집에 돌아와서 평소 주말과 아주 똑같이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과 뒷마당에서 수영을 하고, 마침 나무가 너무 커져서 이리저리 넘나들며 가지치기도 했다. 심지어 저녁에는 심심하니 야구를 보며 사이다(Cider, 사과 맛의 술)도 마시고 평소와 똑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알 수 없이 몸이 무척 추웠다. 그래서 우선은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껐다. 그래도 추워서 아들이 깔고 있는 이불을 빼내서 덮었다. 그래도 몸이 덜덜 떨려서 옷장에 가서 긴팔 옷과 바지를 입고는 잠이 들었다. 이때가 새벽 두 시쯤이었는데 네 시 정도에 똑같은 증상으로 또 잠이 깼다. 와이프가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해서 먹고 잤는데 자고 나니 약간 괜찮아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잠시 아이들과 산책을 했는데 그 이후로는 완전히 뻗었다. 열이 38.3도까지 올라갔고, 오한이 계속되었으며, 온몸에 근육통이 있었고, 꽤나 어지러웠다. 그나마 타이레놀을 먹으면 조금 나아져서 그것을 먹고 계속 잤다. 토요일에 접종을 해서 다행이니 평일 날 접종을 했으면 다음 날 일 나가야 해서 아주 골치가 아팠을 것 같다. 다행인 것은 하루가 지나니 거의 괜찮아졌고, 월요일 오전을 지나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프고 나니 몸에서 정말 엄청난 항체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내 몸속에는 이제 코로나 항체 십만 대군이 양성되어 2주가 지나기도 전에 완전 면역이 달성되었다. 따라서 나도 이제 항체보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다). 


2차 접종 후 다음 날. 아픈 와중에도 프로 정신을 발휘하여 유튜브 제작을 위한 동영상도 찍었다.



2차 접종을 하고 나서 내가 엄청나게 아팠던 것이 교차 접종 때문인지, 아니면 백신을 맞고 나서 가만히 있지 않고 깨방정을 떨어서 그런 것인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어쨌든 기회가 있을 때 2차 접종까지 완료한 것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 제한도 조금씩 완화되고 있고, 최근 다시 백신 수입 물량의 일부가 연기되어 2차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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