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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Aug 29. 2021

우유를 마시는 불편한 방법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우유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인터넷에서 캐나다와 미국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보면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캐나다에서는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비슷하게 우유가 주로 플라스틱 용기(Milk Jug)이나 종이팩에 담겨서 팔리기 때문에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는 캐나다만의 독특한 문화로 언급되고는 한다.


이렇게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를 영어로는 'Milk Bag'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서부에서도 이 비닐봉지 우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캐나다 사람들조차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를 와서 이 우유를 보고는 큰 문화적 충격을 느끼기도 한다.


코스트코에서 진열 중인 우유들. 온타리오에서는 4L 비닐백에 담긴 우유가 가장 흔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5년 전 알버타와 사스카추완에서만 살다가 처음 온타리오에 와서 슈퍼에 갔을 때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를 보고는 꽤나 황당했다. 우유를 사야 했는데 와이프가 나를 부르더니 우유가 모두 비닐봉지에 담겨있고 종이팩에 들어있는 우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어디선가 온타리오에서는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와이프에게 '그러고 보니 온타리오에서는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고 들었어'라고 말을 했다.


와이프 입장에서는 당연히 니가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마시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답까지는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가게 점원에게 물어보는 편이 빠르겠다는 것을 깨달은 와이프는 점원을 찾아 이것을 어떻게 마시냐고 물어보았다. 점원은 친절하게도 비닐봉지를 담는 컨테이너가 있다며 그것을 팔고 있는 칸을 안내해 주었다.


모든 집에 한 두 개씩은 있는 컨테이너. 슈퍼에서 3~5불에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캐나다 동부, 즉 온타리오부터 그 동쪽으로는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는 4L 단위로 판매되는데 상표가 적혀있는 비닐봉지를 벗기면 우유가 담겨있는 세 개의 비닐봉지가 나온다. 이것을 마시기 위해서는 이 중의 하나를 컨테이너에 담고 모서리를 가위로 잘라야 한다.


비닐봉지에 담겨있는 4L 우유. 껍데기를 벗기면 세 개의 비닐봉지가 들어있다



사실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는 은근히 마시기 불편하다. 비닐봉지를 바꿔야 할 때마다 가위가 있어야 하고, 구멍이 이상하게 잘리거나 컨테이너에 들어있는 우유 봉지가 기울어져 있으면 우유를 따르다가 종종 옆으로 새기도 한다. 또한 비닐봉지가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살 때도 주의를 해야 하는데 가끔씩 속에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터져있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진열대에서 우유가 터져 난리가 나 있는 것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온타리오에서도 종이팩에 들어있는 우유도 팔기는 한다. 하지만 종이팩은 1L, 2L 단위로만 팔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비닐봉지 우유가 훨씬 흔하기 때문에 우리 같이 딸린 자식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결국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만 사게 된다.



비닐봉지에 들은 우유를 마시기 위해서는 컨테이너와 가위(전용 커터를 팔기도 함)가 필수이다



그런데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만 마시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왜, 도대체 왜, 유독 여기에서만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파는지 궁금해졌다. 같은 캐나다라고는 해도 브리티시 컬럼비아부터 매니토바까지는 전혀 비닐봉지 우유를 찾아볼 수 없는데 왜 여기서만 비닐봉지에 우유를 파는 것일까?






캐나다도 1960년대까지는 미국(US Customary Units)이나 영국(Imperial Units)과 마찬가지로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연방 정부의 주도로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터법(Metric System)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모든 음식물 포장도 1976년부터 미터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우유 용기의 크기도 그동안 사용하던 쿼트(1 Quart = 약 0.946 Liter)에서 리터로 바꿔야 했다. 즉, 제조사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그동안 사용하던 용기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 캐나다에서 우유는 주로 유리병, 플라스틱 용기, 또는 종이팩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용기들의 경우 크기를 변경하고 그에 맞추어 생산라인을 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우유 제조사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우유였다. 비닐봉지의 크기를 1 쿼트에서 1.33 리터로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 큰 비용이 소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캐나다에서는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가 판매되고 있었다. 이 비닐봉지(Plastic Film Pouch)는 듀퐁(DuPont)에서 1967년에 개발한 것으로 위에서 소개한 비닐봉지 우유와 마찬가지로 큰 비닐봉지 속에 1 쿼드짜리 비닐봉지가 세 개 들어있는 형태였다.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우유는 처음 도입된 이후 조금씩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70년 온타리오 6대 도시에서 판매된 비닐봉지 우유의 비율은 11.8%로 일 년 전 2.1%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내가 찾아본 자료들에서는 비닐봉지 우유의 인기가 증가한 것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한 번에 많은 양의 우유를 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유병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우유에 비해서 편리했을 것이다. 같은 3 쿼트짜리 우유(2.84 리터)라도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에 들어있는 우유는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용기도 무겁지만, 비닐봉지는 가볍고 세 개로 나누어져 있으니까 마시고 보관하는데 더 용이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1960년대 후반 처음 소개된 비닐봉지 우유는 1970년대 말 도입된 미터법이라는 날개를 달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캡처 화면] 1969년 CBC 뉴스에 등장한 비닐봉지 우유. 팔려고 놓아둔 컨터이네도 보이고 종이팩, 유리병에 담긴 우유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를 멈추기에는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비닐봉지 우유가 미터법의 도입과 함께 전국으로 퍼져나갔다면 캐나다 서부에서는 더 이상 이 비닐봉지 우유를 볼 수 없는 것일까?






캐나다 서부에서 더 이상 비닐봉지 우유를 볼 수 없는 이유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비닐봉지 우유보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우유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우유는 비닐봉지를 교체할 때마다 매번 가위도 필요하고 가끔씩 새기도 해서 좀 불편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는지 1980년대부터 캐나다 서부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우유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캐나다 서부에서 플라스틱 용기가 도입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플라스틱 제조 비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터법을 도입을 강하게 추진했던 자유당(Liberal) 정권이 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정권으로 바뀌면서 1985년부터 미터법을 유지하되 일부 분야(식품, 가솔린 등)에서는 야드파운드법 사용을 허용하게 되었다(그 결과 아직도 슈퍼에서는 고기, 채소, 과일은 파운드로 가격을 적어놓고 밑에 조그마하게 kg으로 표시를 해 놓았다, 약간 거지 같다).


또한 우유 용기에 대한 크기 및 재질에 대한 규제도 조금씩 풀리면서 캐나다 서부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졌고 결국 90년대 초반 이후 비닐봉지 우유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마지막 질문으로, 왜 온타리오에서는 아직까지 비닐봉지 우유가 남아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유 용기에 대한 규제 때문이었다. 온타리오에서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1 파인트(473mL) 이상의 우유는 비닐봉지나 종이팩에 담아서 팔도록 규제했다. 만약 플라스틱 용기에 우유를 팔 경우 보증금을 받거나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일부 슈퍼 체인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우유를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증금이 필요 없는 비닐봉지 우유를 팔았다.


2018년 온타리오에서도 결국 이러한 규제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제는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가 이곳만의 고유한 문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불편해도 비닐봉지 우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나 한 잔 마시며 글을 마쳐야겠다.


끝으로 온타리오를 제외한 다른 동부 지역(퀘벡, 아틀란틱 캐나다)에서 비닐봉지 우유가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캐나다 인구의 1/3이 살고 있는 온타리오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제조의 용이성, 비용 등의 문제로 비닐봉지 우유가 계속 남아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 지역들에서는 오랫동안 다른 용기들과 비닐봉지가 공존해 왔다고 한다.
참고로 비닐봉지 우유가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인도, 이스라엘, 이란 등에서는 비닐봉지 우유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중서부 지역(위스콘신, 일리노이, 아이오와)의 회사인 Kwik Trip에서는 비닐봉지 우유를 팔고 있다고 한다.


참고한 자료들

https://www.cbc.ca/amp/1.5409420

https://www.npr.org/2021/07/09/1014761601/of-memestocks-and-milk-bags

https://www.eater.com/platform/amp/2019/10/21/20919693/milk-carton-bag-pouch-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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