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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21. 2020

Robertson vs Phillips

캐나다에서 사각 스크루를 사용하는 이유

한국에 살다 보면 일 년에 스크루 드라이버를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학생 때나 결혼하기 전에는 분명히 별로 쓸 일이 없었다. 그나마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나서 장난감을 조립해야 할 일이 생기면서 드라이버를 쓸 일이 조금 생겼다. 한국에서는 그만큼 쓸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스크루 드라이버에는 '일자'와 '십자' 드라이버만 있는 줄 알았다. 


캐나다에서 와서는 처음부터 아이키아(IKEA) 가구를 조립하느라 스크루 드라이버를 쓸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초기에는 전동 드라이버도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조립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결국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전동 드라이버를 샀다. 그런데 그것을 사서 보니 전동 드라이버만 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하려면 앞에 끼우는 Bit(이 글 제목의 배경 그림 참조)라는 것이 있어야 했다(물론 흔하게 쓰이는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 Bit는 들어있어서 간단한 일을 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래서 홈디포에 가서 가장 저렴한 Bit Set를 샀다. 다양한 사이즈의 Bit이 들어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십자와 일자 말고도 네모난 드라이버가 크기별로 많이도 들어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이런 것도 쓰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캐나다 생활이 2년 차 정도가 되었을 때 일이다. 리자이나에서 알고 지내던 가족이 집을 사서 모두 뜯어서 고치는데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워낙 손재주가 좋은 핸디맨이라 모든 것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이것이 기회다 싶어서 일을 도와주러 갔다.  


이 사람은 나보다도 젊은데 어려서부터 온갖 일을 해보았는지 참 손재주가 좋았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모두 스스로 리노베이션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구 또한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그래서 어깨너머로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하루는 이 친구가 나에게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생긴 스크루 드라이버를 많이 쓴다면서 네모 모양의 스크루 드라이버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뭐라고 뭐라고 이름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십자 형태의 드라이버보다 훨씬 좋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당시에는 이름도 낯설고 뭐가 좋은 지도 잘 몰라서 그냥 그런가 싶었다. 그래도 이 사각 형태의 스크루 드라이버는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고 캐나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나 보구나 생각했다.  


또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경험이 생기면서 보니 정말 이 사각 형태의 스크루 드라이버는 캐나다에서만 많이 쓰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캐나다에서 홈디포나 로우스(Lowe's) 같은 곳을 가보면 이 사각 스크루와 드라이버는 정말 흔한데 미국에서는 이것을 취급은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찾을 수 있지는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야겠다. 


캐나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각 스크루. 특히 목공(Woodworking)에 많이 사용된다.



캐나다 홈디포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사각 스크루들. 캐나다에서는 이러한 사각 스크루를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Deck에는 이것들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우리가 '일자 드라이버'라고 부르는 'Slot (또는 Flat)' Head 스크루가 주로 사용되었다. 일자 드라이버를 사용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것은 정말 지랄 맞다. 돌리다 보면 스크루 드라이버가 반드시 옆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두 손으로 스크루 드라이버를 돌리게 되는데 그러다가 잘못하면 손을 다치기 십상이다. 당시 사람들도 이러한 불편함에 이런저런 모양의 스크루를 개발했지만 대량 생산에 실패하여 결국 계속해서 일자 드라이버만 사용하고 있었다. 


한편 1900년대 초반 온타리오 출신의 피터 로버트슨(Peter L. Robertson)이라는 사람이 캐나다 동부를 돌면서 미국 필라델피아 회사의 공구를 팔고 있었다. 그가 팔던 공구 중의 하나가 스프링이 달린 스크루 드라이버였다(Spring-loaded Screw Driver).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프링이 달려있어서 스크루 드라이버가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사진 출처. The History Guy 유튜브 채널



그런데 하루는 그가 거리에서 이 제품을 시연하다가 손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더 안전한 스크루 드라이버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고 사각 모양의 스크루와 드라이버를 만들게 되었다. 사실 사각 모양의 스크루는 1875년에 이미 특허가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사각 스크루는 모서리가 경사져 있고(Chamfered), 옆면이 조금 기울어져 있으며(Tapered), 끝이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Robertson Screw의 특허 그림 (출처: Wiki)


이러한 차이가 어쩌면 사소하게 보이지만 이전의 사각 스크루와는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냉간 성형(Cold Forming)으로 이 스크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사각 스크루를 만들려면 스크루에 열을 가한 후 성형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열을 가하지 않고 스크루에 사각 모양을 찍어내는 것만으로 스크루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로버트슨이 개발한 사각 스크루는 두 가지의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바로 구멍만 맞으면 미끄러지지 않고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Self-Centering). 당시까지 사용되던 일자 드라이버는 홈에 드라이버를 꽂더라도 두 손으로 잡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마련인데 이것은 한 손만으로 스크루를 돌릴 수 있다. 


둘째는 'Cam Out'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Cam Out'은 어느 정도 이상의 힘(토크)이 전달되면 드라이버가 미끄러져 버리는 현상이다. 십자 드라이버를 돌려 본 적이 있다면 스크루가 어느 정도 다 들어가면 드라이버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미끄러져 버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사각 스크루(Robertson Screw)는 그러한 현상이 십자 스크루(Phillips Screw)보다 현저하게 적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그는 1909년 사각 스크루와 드라이버에 대한 특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스크루가 발명되었으니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였어야 했다. 그래서 로버트슨은 우선 영국에 스크루 공장을 세워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공장을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계획이 틀어졌다. 전쟁 후에는 별다른 성과 없이 공장을 닫았다고 한다. 


그는 영국 말고도 바로 아래 동네인 미국 시장에도 진출을 모색하였다. 첫 번째는 국경 근처 도시인 뉴욕주 버팔로의 스크루 회사와 협상을 하였지만 특허 사용에 대한 이견으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헨리 포드에게 연락을 받게 된다. 로버트슨이 특허를 받은 이후 캐나다 내에서는 이미 그의 스크루가 점점 퍼지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 중의 하나가 캐나다 윈저(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강을 마주 보고 위치한 도시)에 위치한 포드 자동차 공장이었다. 


헨리 포드는 캐나다의 윈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 T 자동차가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델 T 자동차보다 생산 원가가 약 $ 2.6 낮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당시 모델 T의 가격이 $ 390~500 정도였으니 매우 큰 차이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보니 바로 윈저 공장에서만 사각 스크루가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 포드는 로버트슨을 불러 협상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로버트슨은 특허와 그 사용 권한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협상에 실패하게 된다. 그 이후 윈저 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미국의 포드 공장에서는 계속해서 일자 스크루를 사용하게 된다(두 사람 모두 정말 징하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사각 스크루는 미국에 퍼지지 못하였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1930년 대에 Phillips Screw, 즉 십자 스크루가 개발된다. 이는 사각 스크루보다는 별로이지만 그럭저럭 사용할 만했다. 게다가 이 십자 스크루는 일정한 힘이 가해지면 미끄러지는 'Cam Out'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조업 분야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당시에는 토르크를 조절하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Cam Out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너무 세게 조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십자 스크루는 1936년 GM 공장에 처음 도입된 이후 미국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크루가 되었다. 


오직 캐나다만 제외하고는


약 20년 전의 자료라 얼마나 현재 상황을 반영할지는 모르겠지만 2002년 당시 미국 홈디포에서 판매되는 스크루 중 약 5% 만이 사각 스크루였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약 55%가 사각 스크루였다고 한다. 아마 현재는 미국에서는 그 수치가 조금 올라갔을 것 같고 캐나다에서는 조금 내려갔을 것 같다(아무래도 워낙 미국에서 물건들이 많이 들어오니).


캐나다에서 드라이버 세트를 사면 대부분 위의 3가지 타입이 모두 들어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각 스크루는 Cam Out 현상이 적기 때문에 특히 목공(Woodworking)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Woodworking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이 사각 스크루와 드라이버를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아니면 적어도 캐나다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을까). 그래서 혹시 팬데믹이 끝나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놀러 오실 일이 있으면 홈 센터에 들러 사각 스크루와 드라이버를 사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캐네디언 타이어(Canadian Tire)에서 매일 같이 세일하는 드라이버 세트는 정말 괜찮은 가격이다.  


Family Handyman에 실린 사각 스크루 광고. 이런 선전이 있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는 사각 스크루가 널리 퍼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맨 아래 그림은 약간 뻥이 심하다



참고 자료

https://www.theglobeandmail.com/arts/youve-got-to-use-a-robertson/article1024050/

https://www.youtube.com/watch?v=R-mDqKtivuI&t=156s

https://www.thomasnet.com/articles/hardware/robertson-screwdriver-history/

https://en.wikipedia.org/wiki/P._L._Rober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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