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국과 캐나다를 거치며 펼쳐지는 나의 로또 10년 차 이야기
2002년 말, 로또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왜 돈 주고 그런 것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당첨 확률도 낮은데 한 줄에 2,000원이나 하는 로또를 사기에는 너무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대학교 친구들 무리 중 벌써부터 로또를 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삼수형님'이라고 부르던 같은 학번의 형이었다.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삼수를 한 형이었다. 그 형님이 삼 세 번을 좋아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을 테지만 대학 입시에서 삼수를 한 것도 그렇고, 세 학기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맞아 제적의 위기에 처한 것도 그렇고 아무튼 젊은 나이에 우여곡절이 많은 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그 형님네 집에 놀러 갔는데 책상을 보니 로또가 있는 것이었다. 내 주변에서 로또를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아니 형님은 이런 것도 해요?'라고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형이 무엇이라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20년 가까이 지나고 보니 그 형이 무슨 말을 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지방으로 취직을 했기 때문에 3년 정도 회사 기숙사에서 살았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기숙사에서 살면서 회사 밥을 먹었기 때문에 평일에는 돈을 쓸 일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부양할 가족도 없었으니 돈이 쉽게 잘 모였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나 혼자 벌어도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와이프는 결혼 후 서울에서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에 내려와서 같이 살았다.
혼자 벌긴 하여도 아이가 없을 때는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서울에 비하면 물가도 싼 편이었고 돈 쓸 곳도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첫째가 생겼고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어느 순간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생활하기조차 힘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급으로 한 달에 30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월세, 관리비, 식비, 교통비, 유치원비 등을 내고 나면 저축하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그나마 성과급이라도 나오면 주로 대출을 갚는 데 사용하여야 했다.
혼자 살 때와 결혼을 했을 때 그리고 가족이 생겼을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나 혼자였으면 어떻게든 아끼면서 살았겠지만 가족이 생기고 보니 남들 하는 만큼은 못해도 궁상맞게 살지는 말아야 했다. 이렇게 월급쟁이로 살아서는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10년 전 매주 로또를 사던 삼수형님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 형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난생처음 로또라는 것을 사보았다. 로또를 어디서 처음 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당첨된 로또를 들고 갔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곳은 처갓집이 있던 성신여대역 근처 조그마한 구둣방이었다. 그 구둣방에 들어가서 아저씨에게 지난주 로또를 내밀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당첨 여부를 확인해 보더니 당첨이 안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여기 번호 두 개가 맞지 않았냐고 말을 했다. 아저씨는 로또 처음 해보냐며 세 개부터가 당첨이라며 어처구니없어했다. 무척이나 부끄러워서 어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면서 연필로 당첨 번호를 동그라미 쳐 가면서 번호가 두 개 맞았다고 좋아한 나 자신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로또가 도입된 지 얼마 안 지났을 때 당첨 금액이 연거푸 이월되어 사상 최대 금액으로 커졌을 때의 일이다. 그때 처음으로 전국에서 로또 광풍이 불었을 것이다. 누구는 당연히 당첨될 것으로 생각해서 몇 천만 어치의 복권을 샀다느니 누가 당첨되어 당장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이민을 갔다는 등의 기사와 소문이 무성했다.
당시 내가 읽었던 기사 중에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사상 최대 금액의 로또 당첨 번호가 발표된 다음날 국민은행 본점으로 한 노신사가 찾아왔다고 한다. 자신이 일등에 당첨된 것 같다며 로또 종이를 내밀었는데 담당자가 보니 한 줄에 6개의 번호가 맞은 것이 아니라 한 장의 종이(다섯 줄)에 당첨 번호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담당자는 그분에게 죄송하지만 당첨된 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분은 헛웃음을 짓고는 은행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그냥 웃어넘기던 일이 정작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한 번 로또를 사 보니 두 번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 많이 산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일주일에 한 장(오천 원)이나 두 장(만 원)의 로또를 샀다. 처음에는 자동으로만 로또를 샀는데 어느 순간 과거 당첨 번호를 분석해서 다음 당첨 번호를 예측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무슨 헛소리인가 싶다). 그래서 엑셀에 과거 당첨 번호를 일일이 입력한 뒤 1부터 45까지 번호별로 당첨된 번호로 선정된 빈도를 확인해 보았다.
이렇게 과거 로또 당첨 번호들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은 특이하게도 어느 번호들은 많이 나오고 어느 번호들은 매우 드물게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까지 40번이 당첨 번호로 선정된 적은 총 92번이나 되지만 9는 겨우 59번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번은 그때까지 가장 많이 나온 번호 7개만 골랐어도 4개의 당첨 번호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6개의 번호를 모두 찾기보다 3개의 번호를 찾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특정 번호 3개가 함께 나온 빈도를 분석해 보았다(예를 들어 1, 7, 17). 그 결과 열대여섯 개의 번호 조합이 총 5~6회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나올 것 같은 번호 조합(나름 대로 선정 기준이 있었지만, 뭐 결국 다 헛소리다)을 골라 3개만 번호를 선택하고 나머지 번호는 자동으로 구입을 했다.
과거 통계를 분석해서 미래의 당첨 번호를 예측한다는 생각 자체가 지금 보면 정신 나간 소리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나 보다. 와이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나는 주말에 가까워지면 항상 식탁에 앉아서 심각하게 번호를 고르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내가 고른 번호 3개가 당첨 번호로 나온 적은 물론 단 한 번도 없었다.
2014년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고 정동에 있는 캐나다 정착 지원 단체에서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다. 캐나다의 경제생활에 대한 세미나였는데 그곳에서 캐나다는 복권이나 카지노 상금에 대한 세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 참 반가운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가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막상 캐나다로 넘어온 이후에는 한동안 로또를 사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지에 정착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여러 종류의 로또가 있어서 솔직히 어떤 것을 어떻게 사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보니 슈퍼나 주유소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로또나 복권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겼겠다 나도 다시 로또를 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가 있어 보이는 Lotto Max와 Lotto 6/49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보장된 기본 상금이 가장 높은 Lotto Max는 한 게임에 $5이며 세 줄의 번호를 준다. 49개의 숫자 중에서 7개가 맞으면 1등이며, 1등 상금은 천만 불(약 90억 원)에서 시작해서 육천만 불(약 450억 원)까지 누적된다(2019년 룰이 바뀌어서 이제는 50개 중 7개가 맞아야 하며 상금은 칠천만 불까지 누적된다). 그리고 Lotto 6/49는 이름 그대로 49개 숫자 중에서 6개가 맞아야 한다. 이것의 기본 가격은 $3이며 단 한 줄의 번호를 준다.
여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OMR 카드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번호를 살 수 있지만 그렇게 구입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동으로 주세요'라는 말을 어떻게 하나 보았더니 그냥 금액을 맞추어서 주면 으레 자동으로 번호로 주는 것 같았다. 즉, Lotto Max를 살 경우 $11을 내밀면서 '로또 맥스 11불어치 주세요' 하면 총 여섯 줄의 번호와 Extra(*)라는 게임의 번호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Lotto 6/49를 산다면 $10을 내고 총 세 줄의 번호와 Extra 게임 번호를 받는 식이다. 하지만 Lotto Max의 경우 당첨 확률이 별로 높지 않고(룰이 바뀐 이후 1등 당첨 확률은 1:3,330만 에 불과하다) Lotto 6/49의 경우에는 너무 비싸서 둘 중 하나의 당첨금이 어느 정도 이월되었을 때만 10불 정도 구입했다.
(*) Extra: 로또 티켓을 살 때 $1을 추가하면 7개의 번호를 받을 수 있다. 주택복권과 비슷하게 당첨번호와 끝자리부터 같으면 당첨이다. WCLC(알버타, 사스카추완, 매니토바의 복권 관리 단체)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며 온타리오에서는 유사한 게임이 Encor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편 땅덩어리가 넓은 캐나다에서는 로또도 주 별로 달리 운영된다. Lotto Max와 Lotto 6/49와 같은 게임은 전국구 게임이라서 전국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주 별로 진행되는 게임은 그 주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주가 각각의 복권 관리 단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가 적은 주의 경우는 주 별로 통합해서 단체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판 돈을 키우기 위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알버타, 사스카추완, 매니토바 그리고 북쪽의 준주(Territories)들은 WCLC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아틀란틱 캐나다의 4개 주는 ALC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알버타에서 사스카추완으로 이사를 갔을 때 운전면허도 바꾸고, 자동차 번호판도 바꾸고, 의료 보험 카드도 바꾸어야 했지만 Lotto만큼은 차이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스카추완에서 온타리오로 이사를 온 후 처음 Lotto Max를 샀을 때 두 곳의 로또가 완전히 달라서 깜짝 놀랐다. 우선 로또를 주는 종이의 색깔부터 달랐다. 알버타나 사스카추완에서는 로또 종이 색깔이 흰색이었는데 온타리오에서는 노란색 종이에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쪽에서는 Extra라고 부르는 게임을 여기서는 Encore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한 살 수 있는 로또의 종류나 복권의 종류도 무척이나 달랐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혼자서 얼마나 놀랐는지 어디에서 로또를 구입을 했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이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지난 10여 년 간 띄엄띄엄 로또를 샀지만 단 한 번도 크게 당첨이 된 적은 없었다. 운이 좋은 날에는 $1 ~ $10 정도가 당첨되었고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나마 가장 크게 당첨되었던 것이 3년 전(2017년) Lotto Max에서 7개 숫자 중에 5개가 맞은 것이었다.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식탁에 앉아서 Lotto Max를 맞혀 보았다. 당첨 번호를 확인할 때 첫 번호부터 맞아 들어간다면 왠지 느낌이 좋은데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가장 작은 번호부터 맞기 시작하더니 결국 당첨 번호 7개 중 무려 5개나 맞고 말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에서 지켜보던 와이프는 내가 평소와는 달리 계속 동그라미를 치길래 장난하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평생 이렇게 많이 맞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분명 당첨금도 꽤나 크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당첨 금액을 확인해 보니 겨우 104.6불이었다. 상금이 네 자릿수는 될지 알았는데... 그래도 마침 딸아이의 스키 바지가 다 헤어졌기 때문에 당첨금을 받고서 바로 딸아이의 스키 바지를 사주었다(참고로 캐나다에서는 겨울에 등교 시 스키 바지가 필수이다).
이렇게 당첨되고 나니 오히려 허무했다. 몇 년째 로또를 하다가 처음으로 당첨 번호가 5개나 맞은 것인데 당첨금이 이것밖에 되지 않다니!
이번에도 문득 한국에 있을 때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전주에서 편의점을 하던 부부가 있었는데 계산이 너무 맞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판매하고 남은 복권의 재고와 수입의 차이가 컸다. 부부는 서로 돈을 빼돌리는 것으로 의심하고 싸우기도 하였다. 부부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CCTV를 돌려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몇 번 돌려보다 보니 특이한 사람을 한 명 발견할 수 있었다. 매번 계산을 할 때마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의 주위를 분산시키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영상들만 자세히 살펴보니 당시 한참 인기가 있었던 연금복권을 매주 훔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빠르게 훔쳤는지 CCTV를 몇 번 돌려 본 끝에 겨우 잡을 수 있었고, 매주 얼마나 많이 훔쳤는지 훔쳐간 복권이 총 천만 원어치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 뉴스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천만 원어치 복권을 훔쳐도 연금복권에는 당첨이 안되는구나!'였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연금복권 사는 것을 그만두었다.
같은 생각으로 Lotto Max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Lotto Max의 1등 당첨 확률은 1:2860만(현재는 1:3,330만)에 불과하니 캐나다 전체 인구(약 3,800만 명)에서 1명을 고르는 것보다 조금 나은 확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1명에 들어갈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이니 급속도로 흥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아주 판돈이 커지지 않은 이상에야 로또를 잘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Lottario(로타리오)라고 불리는 로또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온타리오에서만 판매되는 로또인데 로또들 중에서 가장 저렴하면서도 당첨 확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 로또는 최소 금액 $1을 내면 무려 2줄의 번호를 준다. 김밥도 한 줄에 2000원은 할 텐데 로또 한 줄이 겨우 500원이라니! 게다가 한국 로또처럼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고르는 것이었다. 그 결과 1등 당첨 확률이 1:407만($1 구매 시, 즉 두 줄 기준)에 달하고 모든 당첨 확률은 1:8.2에 달한다.
이 로또의 당첨 방식은 한국의 로또와 매우 비슷하다. 가장 크게 다른 것 하나는 바로 당첨 번호가 하나도 안 맞고 보너스 번호만 맞았을 경우 Free Play($1의 가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근 쏠쏠하다. 물론 가격이 낮고 당첨 확률이 높은만큼 당첨 금액은 Lotto Max나 Lotto 6/49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그래도 이월이 잦아서 기본 상금 25만 불에서 100만 불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Lottario 만 사게 되었다. 싼 가격 덕분에 10불만 내도 총 16줄에 2개의 Encore 번호를 받을 수 있다. 일단 번호가 풍성하니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차피 1등에 당첨될 일은 별로 없으니 맞춰보는 재미라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Lotto Max나 Lotto 6/49와 달리 이것을 주문을 하는 것이 꽤나 까다롭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Lotto Max나 Lotto 6/49는 기본 금액이 높기 때문에 돈을 내밀면서 말을 대충 하여도 점원이 쉽게 알아듣는다. 예를 들어 'May I have Lotto Max for $11(**)?'라고 하면 알아서 한 장에 2번의 게임(총 6줄)과 Encore 1개를 준다. 그런데 Lottario는 기본 금액이 낮아서 그렇게 말해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사기가 어려웠다.
나는 주로 Encore 1개가 포함된 4번의 게임(총 8줄) 2장($5+$5=$10)을 사기 때문에 주문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 고민되었다. 그래서 거의 1년 이상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았지만 점원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것으로 출력을 해주는 경우도 몇 번 경험하였다.
매주 로또를 살 때마다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깨닫게 되는 것도 은근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벗어나고자 무수한 노력 끝에 점원들이 로또 게임 한 줄을 말할 때 'Line'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May I have Lottario with 4 lines and Encore(**)?'라고 주문을 하였는데 점원이 별문제 없이 알아듣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방식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이후에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어서 계속 이렇게 주문하고 있다.
(**) 혹시 이 표현이 잘못된 경우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왠지 사용된 전치사가 이상하기도 하지만 로또 사는 방법을 영어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맞는지 틀린 지를 모르겠다.
사실 확률을 생각한다면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과 같다. 로또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차리라 그 돈을 모아서 다른 것을 하라는 것은 재테크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확률을 뚫고 평생 총 14번이나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루마니아 출신의 스테판 만델(Stefan Mandel)이라는 사람으로 '당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1950년대 후반 루마니아의 광산회사에서 일하던 스테판 만델은 어린 부인 및 어린 자식들과 함께 가난을 피해 루마니아를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한 달 월급은 360 leu(루, 루마니아 화폐 단위)로 현재 약 90 달러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겨우 이 정도 돈을 벌어서는 절대로 루마니아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궁리 끝에 로또에 다다르게 된다(그러고 보면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미니아에도 50년대부터 로또가 있었나 보다).
1등 당첨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번호 조합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모든 번호 조합을 살 수 있을만한 자본금이 없었던 그는 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수학책을 찾아본 끝에 나름대로 당첨이 확실한 번호 조합들을 생각해 내게 된다. 하지만 그 조합의 번호들을 모두 구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돈이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적어도 2등 당첨이 확실한 번호 조합을 사모았다. 적어도 2등에는 당첨될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시도 끝에 1등에 당첨되어 버렸다. 그와 친구들이 당시에 받았던 금액은 72,783 leu로 자신의 17년어치 월급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당첨금을 수령한 그는 곧바로 루마니아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하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그는 계속 로또에 매진한다. 이번에는 루마니아에서처럼 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당첨 금액이 충분히 커질 때를 기다려 살 수 있는 모든 번호 조합을 사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투자자를 모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프린터로 OMR 카드에 모든 번호 조합의 번호를 출력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종이에 문제가 없도록 실제 로또에 사용되는 OMR 카드까지 분석해서 화학 성분과 잉크까지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총 12번이나 로또 1등에 당첨된다. 이쯤 되면 1등에 '당첨'되었다는 표현보다 1등을 '샀다'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무튼 어느 순간 만델이 사용하는 방법을 눈치챈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를 막고자 계속해서 법을 개정하게 된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모든 번호 조합을 살 수 없다고 법을 바꾸었다. 그러자 그는 50명이 나눠서 번호 조합을 사는 것으로 정부의 규제를 피해 갔다. 하지만 계속된 법 개정 끝에 더 이상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모든 조합의 번호를 사서 1등에 당첨되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미국에서 주별로 진행되는 로또였다. 그중에서도 버지니아주의 로또에 주목했다. 당시 버지니아주의 로또는 44개 숫자 중 6개를 맞추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주보다 나올 수 있는 번호의 조합이 적었다. 그리고 프린터로 출력한 OMR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었고 한 장소에서 살 수 있는 로또의 개수에도 제한이 없었다.
44개의 숫자 중 6개의 숫자를 고를 경우 총 710만 개 정도의 조합이 나오며 모든 번호를 사는데만 710만 불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소요 경비를 고려하고 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복수의 당첨자를 고려하여 총상금이 2,500만 불이 넘어갈 때 작업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 사이 그는(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International Lotto Fund Syndicate이름의 단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머물면서 모든 번호 조합의 OMR 카드를 출력했다. 이것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때는 1992년 2월. 계속된 당첨금의 이월로 드디어 로또 당첨 금액이 2,700만 불까지 올랐고 그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6만 불을 들여서 OMR 카드를 미국으로 보냈고 한 슈퍼마켓 체인과 협상을 해서 그 체인의 모든 가게에서 710만 장의 로또 티켓을 사기로 하였다. 로또 구입에만 700만 불 이상의 돈이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는 슈퍼마켓 체인에 현금이 아닌 은행 계좌이체로 대금을 지불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합법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정도였다(아래 링크된 동영상을 보면 당시 슈퍼마켓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는 '처음에는 정신 나간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누가 로또에 당첨되려고 700만 장의 로또를 사요'라고 한다).
스테판 만델은 이렇게 해서 자신이 1등 1개, 2등 6개, 3등 132개에 당첨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판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버지니아주의 로또는 일주일에 두 번 추첨을 하기 때문에 사흘 동안 모든 조합의 수를 사야 했다. 그런데 시간적인 문제로 결국 약 600만 개의 번호 조합밖에 살 수 없었다. 그 600만 개의 조합 중에 1등 당첨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는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다.
결국 그가 산 조합에서 1등 당첨이 나왔고 다른 당첨자는 없었다(***). 그는 1등과 다른 등수의 상금까지 합쳐 최종적으로 약 2,750만 불을 수령하였다. 1992년도 기사에 따르면 그의 단체는 최초 2,500명에게 3,000불을 모집하였으며 투자자들에게 400불씩 20년에 걸쳐 상환할 것이라고 한다. 투자자들에게 상환할 돈과 로또를 구매하기 위한 금액 600만 불 및 기타 소요 비용을 고려해 본다면 그가 최종적으로 벌어들인 돈은 로또 당첨금 2,750만 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14번이나 로또 일 등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수 백만 불의 돈을 번 것은 확실해 보인다.
(***) 당시 TV 자료들을 보면 버지니아주에서도 로또 열풍이 불었다. 그런데 복수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버지니아주의 인구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주의 인구는 1992년 기준으로 약 640만 명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도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버지니아주에서도 법을 개정해서 한 곳에서 대량으로 로또를 사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로또 자체가 나올 수 있는 번호 조합과 상금이 커지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모든 조합의 번호를 사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스페판 멘델의 필승 방식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한국의 로또도 모든 번호를 다 사려면 약 800만 개의 번호 조합을 사야 한다. 이를 사는데만 80억 원이 소요되는데 한국의 로또는 이월되는 일도 거의 없는 데다가 일 등 당첨자도 한 주에 몇 명씩이나 나오니 생각을 해 볼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스테판 만델 관련 링크
유튜브 동영상 - 당시 TV 자료
NPR Planet Money 팟캐스트 - '10 11 51 52 62 18'
어쨌든 이제는 또 다른 스테판 만델이 나올 수도 없으니 확률만 생각한다면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포기할 수 없는 작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를 쉽게 포기할 수 없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쉽게 금연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매주 로또 당첨 번호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
'이번 상금은 70만 불인데 당첨되면 우선 대출 갚고, 냉장고 바꾸고, 어디 놀러 가고, 저금해야지'
'이번에는 25만 불밖에 안되니 반만 대출 갚고, 냉장고 바꾸어야지' 등등.
물론 상상은 상상일 뿐이기 때문에 일요일이 되면 당첨 번호와 함께 그 즐거운 상상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먹으면 없어지는 커피, 피우면 없어지는 담배 그리고 일요일이면 없어지는 로또는 사실 큰 차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