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Oct 09. 2021

메이저리그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1년 차 풀타임 메이저리그 팬의 환희와 고뇌

모든 것의 시작은 2019년 토론토 랩터스의 NBA 우승에서부터였다. 랩터스는 우승을 하기 2~3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더니 급기야 2019년에는 우승까지 차지한 것이다. 비록 농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당시 랩터스의 플레이오프 경기들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북미 4대 스포츠(NFL, NBA, MLB, NHL)에 속한 팀들 중 빅마켓 팀들을 제외하고는 30~40년 정도 우승을 못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카고 컵스가 2016년 메이저리그를 다시 우승하기까지는 무려 10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캐나다에 살면서 평생 토론토가 NBA에서 우승하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시청을 했다.


2019.6.17 토론토 랩터스 우승 축하 퍼레이드 (CBC 뉴스 화면)



그리고 몇 개월 후, 이번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류현진과 4년 8000만 불에 계약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앞으로 류현진 급의 한국 선수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뛸 확률과 블루제이스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할 확률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류현진이 계약 기간 동안 잘하면 좋겠지만 중간에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마지막 해에는 트레이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0년에는 본격적으로 블루제이스를 응원하기로 결심하였다.



2019.12.27 류현진 입단 당시 마침 토론토에 있었다. 사진은 당시 TV 화면과 신문 기사



하지만 이게 웬걸. 처음에는 블루제이스의 시즌권을 사볼까 찾아보기도 할 정도였지만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고 말았다. 그래도 모두들 상황이 이렇게 갑자기 안 좋아 질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 류현진이 2020년 3월 26일에 벌어질 홈 개막전 선발 투수로 뛸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인들을 상대로 입장권을 판매한다는 광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WHO에서 2020년 3월 11일 팬데믹을 선언하였고 곧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도 닫히고, 메이저리그 개막도 끝없이 연기되었다. 결국 2020년 7월 말이 되어서야 162경기에서 60경기로 단축되어 리그가 재개되었지만 그마저도 국경이 닫혀있는 바람에 캐나다에서는 단 한 경기도 치러지지 못하였다.



2020년 시즌과 2021년 6~7월 블루제이스의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된 뉴욕 버팔로시의 세일런 필드



그나마 2021년에는 조금 상황이 나아져서 메이저리그도 정상적으로 개막되어 총 162경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은 닫혀있어서 이번에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캐나다에 돌아오지 못하고 전지훈련장이 있는 플로리다의 더니든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비록 토론토에서 경기를 치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류현진이 블루제이스에서 풀타임으로 뛰는 첫 시즌을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계약이 겨우 삼 년밖에 남지 않았던가!


캐나다에서 블루제이스 경기를 보려면 케이블 TV나 IPTV에 채널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무지 비싸다. 기본적으로 케이블 TV 비용도 비싼데 거기다 유료 채널까지 신청해야 하니 아무리 못 해도 한 달에 70~80불은 족히 든다. 그래서 작년에는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불법 스트리밍 서비스로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를 봤지만 워낙 자주 끊겨서 할 것이 못 되었다. 결국 올 시즌에는 큰 마음을 먹고 정식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을 하였다. 마침 메이저리그 개막에 맞추어 50불을 할인하길래 160불에 연간 패스를 구입하였다.


참고로 캐나다에서는 스트리밍으로 대부분의 경기를 볼 수 있는 mlb.tv를 이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블루제이스의 구단주 때문이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구단과 달리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구단주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라고 한다. 특히 토론토의 구단주는 로저스(Rogers)라는 캐나다의 통신 기업인데 이 회사가 SportsNet이라는 케이블 방송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구단의 요청으로 몇 년 전부터 캐나다 내에서 블루제이스 경기를 보려면 SportsNet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160불이라는 거금을 주고 가입한 스트리밍 서비스


사실 처음에는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쨌든 돈을 냈으니 안 보는 것은 손해라는 기분이 들어서(이것이야 말로 Sunk Cost라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한 경기, 한 경기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일같이 경기를 보고 있자니 그전까지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선수가 잘 치고 잘 던지는지 보이기 시작했고, 누가 슬럼프에 빠졌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방출되고 누가 마이너에서 올라오게 되었는지, 누가 트레이드되었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기를 보고 있다 보면 저렇게 잘하는데 얼마를 받을까, 저렇게 못하는데 얼마를 받을까 궁금해지기도 해서 급기야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모아 혼자서 블루제이스의 2021년 연봉 테이블도 만들어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월에 만든 2021년 블루제이스 연봉 테이블. 게레로 주니어, 보 비쉣은 연봉조정 대상이 아니라 실력에 비해 정말 조금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월까지만 하더라도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올해는 캐나다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캐나다의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2021년) 4월에는 확진자 수가 하루에 만 명(캐나다의 인구는 겨우 3800만 명!) 가까이 발생했으며 점점 그 수가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3000~4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신 접종 속도도 느려서(물론 한국보다는 빨랐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6월부터는 백신 접종 속도도 빨라지고 확진자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캐나다 정부에서 NHL 플레이오프 때 미국 팀의 캐나다 방문을 허용해서 팬데믹이 시작된 지 1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미국 팀이 캐나다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결국 지난 2021년 7월 30일, 홈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지 670일 만에 드디어 블루제이스도 캐나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입장객 수는 경기장 정원의 약 30%인 15,000명으로 제한). 정작 블루제이스는 돌아왔지만 야구장에 찾아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꺼려졌던 데다가 무엇보다 야구의 룰을 전혀 모르는 꾸러기 3명을 데리고 야구장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구에 관심이 없다면 어른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 힘든 것이 야구인데 그 어린것들이 9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9월이 되었고 블루제이스는 그사이 플레이오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그럭저럭 순위를 유지하였으나 그 이후 강팀들이나 비슷한 순위 팀들을 상대로는 힘을 잘 쓰지 못해서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9~10 경기 차로 뒤지고 있었다. 맨날 지는 것이 일이라 경기를 보는 재미가 떨어지고 있을 때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바로 9월 3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6점 차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었던 것이다. 8회 말까지 8-2로 뒤지고 있었는데 8회에 만루홈런 등으로 8-8까지 따라갔고, 9회 초 다시 2점 홈런을 내주었으나 9회 말 끝내기 3점 홈런으로 경기를 다시 뒤집었다. 당시 캐스터도 '제이스가 혹시, 어떻게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이 경기가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경기였다. 그 이후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양키스와의 원정 4경기까지 싹 쓸어 담아서 본격적으로 와일드카드 경쟁에 뛰어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나도 올해가 가기 전에 그래도 경기장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방송 중간에 계속 '스위트룸'을 광고하는데 가격은 비쌌지만 방으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도 어떨지 물어보니 예상외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바로 추진하게 되었다. 총 4번의 홈경기 시리즈가 남아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 시리즈였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두 번째 경기를 예매했다.


경기를 예매하고 나니 얼마 후에 이메일이 하나 왔는데 바로 음식을 주문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음식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어 그냥 시키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일반석과 달리 오히려 스위트룸에는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주문 기한 몇 분을 남겨두고 음식도 주문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음식을 안 주문했으면 정말 곤란할 뻔했다.


스위트룸 메뉴. 기본 가격도 비싸지만 저기에 세금(13%), 서비스료(15%), 그리고 팁(보통 20%)까지 추가로 내야 한다.



다행히 마지막까지도 블루제이스는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고 있었다. 2위까지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게임 뒤진 3위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시리즈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최저 승률을 자랑하는 볼티모어와의 경기였기 때문에 포스트진출 가능성이 꽤나 높아 보였다. 결국 이렇게 흥미진진한 상황에서 드디어 경기장에 찾아갔다.


이번에 구입한 류현진 티셔츠와 5년 전 구입한 박병호 티셔츠. 저 티를 사자마자 박병호는 마이너로 내려가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이다.



블루제이스의 홈구장인 로저스 센터는 1989년에 개장한 개폐식 돔 구장이다. 총좌석은 거의 5만 석에 육박하고 경기장에 호텔도 붙어있어 호텔방에서 야구를 볼 수 있는 방들도 있다(아래 사진 오른쪽 위의 창문들이 호텔방들). 지금까지 여러 번 로저스 센터에 가봤지만 안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 처음 들어가 보니 메이저리그 구장답게 시설이 아주 좋았다.



우리의 좌석인 TD 스위트룸은 최소 6명에서 최대 10명이 들어갈 수 있으며 뒤쪽에 음식이나 음료가 제공되는 공간이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음식은 기한 내에 미리 주문하여야 하고, 음료수나 주류는 현장에서 주문이 가능하다. 그리고 방마다 화장실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좋았다. 다만 스위트룸들은 3층, 4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경기를 보기에는 약간 멀었다.




결국 이날의 경기는 첫 회부터 홈런이 터지더니 블루제이스가 10-1로 대승을 거두고 말았다. 상대는 의욕을 잃었는지 중간에 심판의 부상으로 경기가 약간 지연되었는데도 3시간이 안돼서 경기가 끝났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는데 7회 정도가 되니 이미 아이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 달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3시간이 안되어서 경기가 끝나는 바람에 모두 다 끝까지 경기를 볼 수(혹은 경기장에 있을 수) 있었다.


류현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별로 없는데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한편 블루제이스는 마지막 경기까지 이겼으나 결국 양키스와 레드삭스에 한 게임차로 뒤져 와일드카드 진출에 실패하였다.





아마도 야구의 장점은 매일같이 경기를 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매일같이 경기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같이 야구를 하고 있으니 날마다 뭔가 볼 것이 있어서 좋다. 하지만 매일같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평균적으로 2번 이기고 1번 지는데, 지는 경기를 보고 있자면 내 기분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에서 약팀을 응원하는 것은 다른 스포츠에서 약팀을 응원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눈 씻고 찾아봐도 일 년에 100패를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3 말부터 10 초까지 매일 야구만 보다가 시즌이 끝나버리니 뭔가 허무했다.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면 조금  허무했을까 싶지만 블루제이스가 우승을 하기는 힘들었을 테니  언젠가는 느낄 허무함이었다. 이제 NBA NHL 봐야 하나 싶지만 그것들은 매일 경기를 하지 않아서 아쉽다. 아무래도 이래서 야구 팬들이 시즌이 끝나면 스프링캠프가 열리기만 기다리나 보다.


언젠가 애들이 모두 크면 나도 매년 3월마다 플로리다에 가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전 09화 쥐가 싫은지 박쥐가 싫은지 묻는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