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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25. 2021

왜 있는지 모르겠는 캐나다의 총독과 상원

선진적이면서 후진적인 캐나다의 정치 (2/2)

대통령제에 익숙한 나로서는 캐나다의 의원내각제가 약간 낯설었다.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나라의 대표를 국민들이 직접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연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당이 내각을 구성하고 그 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데 당연히 당의 대표는 그 당의 당원들이 선출한다. 따라서 캐나다의 연방 선거는 자기 동네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 동시에 나라의 대표를 뽑는 선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후보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오직 당만 보고 선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묻지 마 투표'로 지탄을 받는 행위지만 여기서는 그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의원내각제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한 당에서 총리도 차지하고, 정부도 조직하기 때문에 조금 더 손쉽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을 해야 하는 것이 때로는 쉽지 않지만 의원내각제에서는 항상 다수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언제나 장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정부가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이를 소수 정부, Minority Government라 함) 정부의 국정 운영이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이스라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개의 당이 의석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를 조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서는 최근 2년 사이 4번이나 선거가 치러져야 했는데 그에 따른 비용과 정치적 혼란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이스라엘의 가장 최근 선거 결과. 합종연횡 끝에 놀랍게도 120석 중 7석을 확보한 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고 있다.


그래도 의원내각제는 영연방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니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장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제에도 여러 가지 단점이 존재할 테니 이것만 가지고는 캐나다의 정치가 비효율적이라고는 말을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래에서 이야기할 두 가지는 누가 보아도 비효율적인 제도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1. 총독(Governor General)

캐나다의 국가 원수(Head of State)는 영국 여왕(또는 왕)이기 때문에 캐나다에는 그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말로는 어감이 좋지 않지만 어쨌든 그가 바로 총독이다. 영국의 여왕이 캐나다의 총독을 임명 하지만 총독을 추천하는 사람은 캐나다의 총리이다. 어쨌든 이 총독의 역할은 은근히 중요한데 의회 조직과 해산 그리고 의회에서 제정된 법의 최종적인 승인(Royal Assent)을 한다. 


그 때문에 앞 글에서 언급한 캐나다의 연방 선거를 위해서 저스틴 트루도 총리가 밑 작업으로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총독을 선임(물론 실제 임명은 여왕이)하는 것이었다. 전 총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사퇴하는 바람에 그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총독 대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하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아 총독을 선임하였다(가 언론의 분석인데 맞는 소리인 듯하다). 


2021년 1월 당시 총독이었던 줄리 파예트(좌)의 사임을 다룬 기사


그 외에도 총독은 의회 개원연설(Speech from the throne)을 하고 대법관, 상원 의원, 주 총독 임명 등의 일들도 한다. 하지만 영국 여왕이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듯 총독도 매우 형식적인 자리에 불과하다. 그저 총리가 의회 해산을 요청하면 승인을 하고, 빈자리에 누구를 임명해 달라고 하면 임명해 주는 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무리 형식적인 자리라도 총독에게는 세 가지의 매우 강력한 재량권(Reserve Power)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가 총리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 두 번째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세 번째가 상/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거부 또는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이다. 물론 총독이 이러한 힘을 사용한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총독이 총리를 해임하거나 상/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거부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1926년 총독이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을 거부한 사례가 있는데 이 사건으로 총리가 사퇴하고 야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었다고 한다(이를 King-Byng Affair라고 부름). 당시 총독은 영국 총리가 추천을 하는 사람이 임명되었기 때문에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을 거부한 것은 내정 간섭으로 인식되어 반발이 엄청 컸다. 결국 이 사건은 후에 영연방 국가들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웨스트민스터 헌장(Statute of Westminster 1931)이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26년 발생한 King-Byng Affair의 주인공들. (좌) 당시 총리였던 맥켄지 킹, (우) 당시 총독이었던 줄리안 빙 경


한편 유사한 정치 체계를 가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75년 총독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총리였던 노동당(Austrailia Labour Party) 대표 고 휘틀램(Gough Whitlam)이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총독이었던 존 커(John Kerr)를 찾아가 재선거를 위해서 의회 해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존 커는 그 자리에서 고 휘틀램을 해임하고 야당 지도자를 총리 대행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이미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 분명하다. 


1975 Australian Constitutional Crisis의 주인공들. (좌) 당시 총리였던 고 휘틀램, (우) 당시 총독이었던 존 커 경


이렇게 총독이 형식적인 존재라고는 하여도, 또 비록 캐나다에서는 근 백 년이 다되도록 그러한 사례가 발생한 적이 없었음에도 정치 상황이 불안하거나 소수 정부 상황에서는 총독이 통과된 법안이나 총리의 의견을 거부하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를 하고는 한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하면서도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걱정을 할 것이면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총독이라는 자리를 없애지 않았을까 싶다.



2. 상원(Senator)

캐나다의 연방 의회는 미국과 유사하게 상원(Senate 또는 Upper House)과 하원(House of Commons 또는 Lower House)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의 하원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총 338석을 선출하고 상원은 지역을 고려하여 105석을 임명한다. 이때 온타리오, 퀘벡, 대서양 연안주, 캐나다 서부에 각각 24석을 배정하고 뉴펀들랜드에 6석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준주(Territories)에 각각 1석을 배정하여 총 105석이 된다. 


명칭만 보면 '상'원, '하'원이기 때문에 상하 관계로 오해하기 쉬우나 상원에서는 예산 관련된 법안을 발의할 수 없다는 것과 상원에서 거부한 헌법 개정안을 하원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것만을 빼고는 두 의회의 힘은 동등하다. 그래서 하나의 법안이 법으로 승인이 되기 위해서는 순서에 상관없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이때 일 년에 몇 차례씩 하원에서 통과된 법이 상원에서 통과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상원에서 법안의 일부를 수정해서 다시 하원으로 보내고 최종적으로 수정안이 통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원에서 수정안이 통과가 되지 않거나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곳이 미국이라면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오가며 수정되기도 하고 중간에 멈추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여기는 캐나다라는 것이다. 


위에서 눈치 채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캐나다의 상원은 지역을 고려하여 105석을 '임명'한다. 그렇다. 캐나다의 상원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다!! 빈자리가 생길 경우 총리가 추천을 하여 총독이 임명을 하는데 한 번 임명되고 나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만 75세까지는 자리도 잃지 않는다. 평균 연봉은 한화로 약 1.5억 원(2019년)이고 각종 비용도 공제가 되겠고, 사무실에 비용에 의전 비용 등을 고려하면 아무리 못해도 상원 한 명에게 일 년에 4~5억 원은 족히 들 것이다. 정년도 없고 돈도 많이 벌고 일도 별로 힘들지 않을 테니 이 얼마나 땡보직이란 말인가!!


캐나다 상원.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는 그저 팔자 좋은 사람들로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선출직인 하원에서 통과한 법안을 임명직인 상원이 거부하는 것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상원 의원들 나름대로 소신이 있겠지만 최근 10년 사이 섹스 스캔들로 사퇴한 상원 의원도 있었고, 과도한 비용 처리로 문제가 된 의원들도 있었고,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의원도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믿고 저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지 심지어 지난 보수당 정권에서는 상원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년이 되어 생긴 빈자리를 한동안 채우지 않았다. 그래서 2015년 자유당 정권으로 바뀌기 전까지 상원의 22석이 빈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완전히 말려 죽이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2015년 저스틴 트루도가 총리가 된 이후부터는 다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하여 2018년 말에는 모든 자리가 채워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팬데믹과 또 다른 선거 등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줄었고 결국 다시 그 수가 줄어 현재 11석이 공석이다.



가끔 신문 기사나 의견란에서 총독과 상원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는 한다. 하지만 총독과 상원을 없애기 위해서는 헌법(Constitution)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엄청 큰 의지가 있거나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지 않는 이상 헌법을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것을 개정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을 테니 누가 총대를 짊어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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