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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16. 2021

캐나다의 연방 선거

선진적이면서 후진적인 캐나다의 정치 (1/2)

캐나다는 한국보다 인구수는 훨씬 적지만(약 3,800만 명)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정치 체계가 한국에 비해서 매우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이면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 여왕이 국가의 (상징적인) 원수(Head of State)이다. 하지만 당연히 영국 여왕은 영국에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는 그를 대신할 (상징적인) 총독(Governor General)이 있다. 실질적인 나라의 행정은 총리(Prime Minister)가 주도하는데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며 그/그녀가 정부를 조직한다. 


한편 주(Province)의 정치 체계도 앞서 설명한 연방(Federal) 정치 체계와 유사하게 돌아가는데 주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당의 당수가 주지사(Premier)가 된다. 그리고 주 단위로도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Lieutenant Governor)이 존재하는데 일반 사람들의 경우 이 주 총독의 이름은커녕 이러한 자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현재(2021년 9월) 캐나다의 총리는 저스틴 트루도(*)로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다. 당시 연방 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자유당(Liberal)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70, 80년대 15년 이상 총리를 지냈던 아버지(피에르 트루도) 뒤를 이어 캐나다의 총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19년 벌어진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비록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많은 의석(과반에서 17석이 모자람)을 차지해서 겨우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프랑스 대통령도 마크홍이 아니라 마크롱이라고 표시하면서 도대체 왜?



캐나다의 저스틴 트루도 총리. 한국 언론에도 종종 젊고 잘 생긴 총리로 소개되고는 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의 선거 간격은 매우 유동적이다. 법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지난 선거 이후 4번째 해의 10월 세 번째 월요일에 선거를 실시하여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연방 선거의 경우). 예를 들어 2015년 5월에 선거를 했으면 다음 선거는 아무리 늦어도 2019년 10월 21일에 해야 된다. 


하지만 약 4년의 선거 기한이 되기 전 국회의원의 절반 이상이 정부를 불신임하는 경우 정부는 해산되고 선거에 돌입하게 된다. 반대로 정부가 먼저 스스로를 해산시키고 선거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조기에 선거가 치러지는 경우는 주로 정부가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이를 소수 정부, Minority Government라고 부름) 발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집권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면 당연히 의원의 절반 이상이 정부를 불신임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 정부 상황에서는 국가 예산과 같은 중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불신임으로 이어진다. 또 심각한 정치 스캔들이 발생한 경우 의회에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편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정부 입장에서는 다른 당들에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히기보다는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때를 찾아 재선거에 들어가는 것이 유리한 경우도 있다. 내부로는 대충 언제쯤 선거에 들어간다고 말을 흘렸겠지만 아무래도 상대 당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선거에 돌입할 경우 후원금이나 자원봉사자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동네에 출마한 4명의 후보를 지지하는 푯말들. 캐나다야 말로 사람을 보고 뽑는 것인지 당을 보고 뽑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확히 그러한 이유, 즉 소수 정부 상황에서 지금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때라고 생각한 자유당은 2021년 8월 15일 정부를 해산하고 '드디어' 선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지난 2019년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다음 선거를 언제 할지에 대한 말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약간은 늦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특히 트루도 정부는 그동안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불신임 투표 이야기도 여러 번 나왔다. 심지어 윤리 위원회(Ethics Committee) 조사를 받은 것도 세 차례에 달한다.


참고로 저스틴 트루도 총리가 된 이후 지난 6년 사이 발생한 굵직한 스캔들을 돌이켜 보자면,


1. 2016년 온 가족이 지인의 제트기를 타고 카리브의 한 섬으로 휴가를 다녀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임에도 안전 및 경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개인 제트기를 탑승한 점. 그리고 수 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내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윤리 위원회에 회부됨.


2.  2019년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SNC-Lavalin이라는 건설회사(*)의 수사를 마무리하라고 이야기를 했고, 결국 법무부 장관을 교체함(트루도는 물론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말함). 교체당한 법무부 장관이 대놓고 자신은 큰 압력을 받았다고 증언을 해서 큰 이슈가 되었고 또다시 윤리 위원회에 회부됨.

(*) SNC-Lavalin은 퀘벡에 기반을 둔 회사로 과거 해외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국가에서 뇌물을 준 것이 문제가 되었음. 유죄가 확정될 경우 캐나다 국내에서 정부 입찰에 참여할 수 없어 큰 타격이 예상됨. 이 경우 퀘벡 사람들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퀘벡은 자유당에게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


3. 2020년 여름, 코로나로 인하여 여름 인턴 자리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약 900억 원에 달하는 인턴 프로그램을 추진함. 이를 주관할 단체로 'WE'라는 자선 단체와 경쟁 없이 수의 계약을 함. 그런데 이 단체는 트루도의 가족 및 당시 재무부 장관 가족들과 경제적으로 엮여 있는 단체였음. 이는 명백한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었으며 결국 세 번째로 윤리 위원회에 회부됨.


4. 2021년 1월, 트루도가 추천하여 총독으로 임명된 줄리 파예트(Julie Payette)가 직장 내 가혹행위(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무시하는 등)로 사퇴함. 줄리 파예트는 우주 비행사 출신으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이지만 과거에 그녀가 일했던 기관들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음. 



캐나다의 우편 투표. 놀랍게도 투표용지에 후보들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자기가 알아서 '정확히' 이름을 써내야 한다.


이번 연방 선거는 팬데믹 한가운데 진행되고 있기 기자들이 트루도에게 왜 굳이 '지금' 선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도 없이 물었다.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트루도는 그때마다 팬데믹 이후의 캐나다 미래를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선거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지금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거에 들어갔을 것이다. 백신 접종률도 80%에 육박하고, 확진자 수와 입원자 수도 많이 줄었고, 겨울이 지나고 내년에는 또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지금이 딱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예상이 맞았는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유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새 과반은커녕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두 가지 정도의 악재가 있었는데 하나는 8월 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면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것이다. 캐나다도 미국을 따라 수많은 돈과 병력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도망치듯 쫓겨 나오고, 현지에 있는 캐나다인들을 실어 오는데도 잡음이 많아서 정부에게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트루도가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온갖 욕을 하고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 심지어 돌을 던지는 사람까지 있었고, 온타리오의 한 동네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행사가 취소되기도 하였다.


지난 선거 이후 현재까지 당별 지지율 변화. 빨간색; 자유당, 까만색: 보수당. 지지율 차이가 많이 줄었다.


다음 중 월요일이면 선거가 끝나는데 이번에는 우편 투표의 비율이 높아서 정확한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뭐 나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누가 되든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누가 되든 내 월급이나 오르고 살림살이나 나아졌으면 좋겠다.



사실 원래 이 글은 비효율적인 캐나다의 정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려고 했는데 선거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관계로 우선 여기서 끊고 추가로 글을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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