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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워드 Nov 20. 2023

Tribute to 조경곤 명인

센트럴서울안과 12주년 <음악으로 그리는 눈부신 시선> 공연에 감사드리며


2023년 11월 18일 오후 3시 용산청소년수련관 소극장 이룸에서는 센트럴서울안과 개원12주년 기념 공연 <음악으로 그리는 눈부신 시선>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판소리 고법 고수인 조경곤 명인 (인천시 무형문화재)과 국악인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조경곤 명인은 양안 모두 실명한 시각장애인이지만 국악인으로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의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열정적인 삶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센트럴서울안과 최재완 원장과는 15년 이상 의사-환자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교류를 맺어 오고 있습니다. 2016년 개원 5주년 공연에 이어 이번 개원 12주년 공연 역시 조경곤 명인이 이끄는 국악팀이 맡아 주셨습니다. 


이 글은 조경곤 명인에게 최재완 원장이 바치는 헌사입니다.   



김명남 명창과 조경곤 명인이 판소리 심청가의 인당수 물에 빠지는 대목을 공연하고 있다.


#1 15년 전, 나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한 쪽 눈은 이미 볼 수 없었다. 반대편 눈도 녹내장으로 위태로웠다. 수술을 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나머지 빛도 잃었다. 실망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다. 환자도, 의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화가 났고,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곧 진정되었다. 이후 그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원초적인 생명력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래도, 그때는 그냥 그뿐이었다.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몰랐다. 



#2 그를 탐구했다. 그는 의지가 탁월했다. 그는 실천력이 탁월했다. 그는 배려가 탁월했다. 그는 사랑으로 충만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나를 돌아봤다. 나는 열등감이 있었다. 나는 욕망이 가득했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조종하려 했다. 나는 사랑하는 척 했다. 그는 잿빛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환한 빛 속에서도 어두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보지 못해도 누구보다 잘 보고 있었고, 나는 보고 있어도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3 그와의 만남은 늘 설레었다. 기껏해야 6개월에 한 번, 어쩌면 1년에 한 번이었지만. 그는 나에게 잊고 지내던 근원적 질문들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4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물질을 준비한다. 잘 살기 위해서 시스템을 만든다. 잘 살기 위해서 사람들을 조직한다. 그리고, 다른 세계와 경쟁한다. 싸움에서 이긴다. 조직은 커져가고, 물질은 쌓여간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 그런데, 뭔가 텅 비어가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묻는다. 우리는, 진짜 잘 살게 된 건가.   



#5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의 통속적인 사랑은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쁜 얼굴, 듣기 좋은 목소리, 달콤한 매너. 감각의 매혹들로 들떠버린 신경회로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공지능처럼 혼자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각들이 사라지면 사랑도 약해지는 건가. 사랑은 구체적인가, 추상적인가. 사랑은 세속적인 건가, 아니면 신비로운 건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인가.  



#6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르다.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나는 절망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편안함이 찾아와도 나는 타락하지 않을 것인가. 변한다면, 그건 그냥 사람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피식 웃어버리고 넘어갈 것인가. 그게 그럴 일인가.  


모보경 명창과 조경곤 명인이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공연하고 있다. 


최재완 원장이 조경곤 명인에게 바치는 헌사를 낭독하고 있다. 


최재완 원장이 조경곤 명인과 부인 최정란 여사와 함께 삶의 궤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7 며칠 전 그를 위해 특별한 음악회를 준비했다. 두 번째다. 7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또 한 번. 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그는 북을 두드렸다. 그럼에도 판소리는 여전히 낯설다. 판소리이건, 오케스트라이건 나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3시간만 눈을 뜬다면 딸과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울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를 낭송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못다한 여운을 담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8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힘든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고, 가슴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어떤 것인지 몰랐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나는 사실 내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 그의 생각을 들으며, 그의 음악을 느끼며, 그와 지내온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많은 것을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9 하지만, 여전히 답은 모른다.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육신의 눈을 넘어 영혼의 세계와 우주의 질서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된다면, 유한한 감각의 세계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현실과 미래를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불안한 미래의 잿빛 안개를 조금씩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기도드린다. 


그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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