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배우는 삶의 균형
어느 날, 아이가 불쑥 물었다.
"엄마, 우리 학교 빠지고 여행 가면 안 돼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요즘은 꼭 개근을 고집하는 분위기가 아니기에 아이의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온 나에게 개근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었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이 성실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고,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라고 가르치며 일상의 습관을 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여러 이유로 자주 빠지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런 나의 생각은 일명 ‘꼰대’스러운 태도로 되어가고 있었다.
내 생각과 생활 방식이 아이들에게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워킹맘으로서의 어려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한 반에 모든 아이들이 출석하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교실의 현실을 보니 아이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의 불만을 하나하나 들어보니,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다녀오거나,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제주도에 한 달에 한 번씩 가기도 하며, 시골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느라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많이 빠진다니. 삶의 중요한 것이 경험이어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자주 빠져도 학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학원에서 미리 배우기 때문일까 혼란스러웠다.
답답한 아이는 결국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개근거지가 싫어요"
얼마 전 뉴스에서 ‘개근거지’라는 말을 들었을 땐, 우리 사회의 비교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도 나타난 현실의 사회적인 이슈로만 여겼다. 그러나 내 아이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가슴이 아팠다.
연간 20일이 넘는 휴가가 있었지만, 나는 주로 학교의 재량휴업일에 맞춰 사용했거나, 갑자기 아픈 아이들을 대비해 남겨두었다. 학교 상담, 공개수업, 체육대회 같은 학교에서 부모 참여 행사에도 참석하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방학 기간 동안에도 여행을 길게 다녀오더라도 아이들을 친정에 며칠씩 보내는 등 알뜰하게 휴가를 썼다. 부족한 휴가에도 열나거나 다치면 그날의 모든 계획이 멈출 수밖에 없고, 긴급 사용해야 하니 항상 긴장했다. 주말마다 체험 학습을 다니며 아이들의 경험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서운한 마음을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
엄마로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이들이 불만을 표현할 때면 서운함과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를 빠지고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부러웠을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여행이나 체험을 못 가서가 아니라, 단지 학교 수업을 빠지는 자유로움이 부러웠을 테니깐.
퇴사 후, 이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가장 먼저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평일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해외여행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직접 계획을 세우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행을 간다는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막상 다녀오고 나니 시간의 효율성만 따지다가 시간이 주는 가치를 놓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과거에 워킹맘으로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마음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다녀온 후, 빠진 수업을 따라잡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체험학습 보고서도 작성해 제출하고, 배우지 못한 것을 보완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 부담스러웠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겪고 나서야 배울 수 있었다.
퇴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조율하며 짧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 불평의 요소들이 사라지니 만족감이 찾아왔다. 아이들도 개근의 중요성을 이해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덕에 나 역시 용기 내어 시간을 조정하고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불평 대신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통해 삶의 만족을 찾게 되었다. ‘개근거지’라는 말로 서로를 비교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성실함 뿐만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며 삶을 즐기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나와 아이들 모두, 그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