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기 위해 서점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토록 많은 책 속에 내 이름이 담긴 책은 하나도 없구나.' 아쉬운 마음에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열어보았지만,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 같았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작가라는 꿈을 꾸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장은 부족해도, 언젠가는 내 인생을 담은 책 한 권쯤 남길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심긴 것 같다.
출판된 책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을 기록한 글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블로그에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해 보며 후기를 적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일상의 기록들이 쌓이니, 어느새 일기처럼 글을 적는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읽히는 책을 쓴다는 것은 다른 문제처럼 느껴졌다. 작가라는 것은 나와는 여전히 먼 이야기였다.
한 번은, <슬기로운 초등생활> 네이버 카페에서 매거진을 만드는 데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독서 모임에 대한 글을 써서 매거진에 발행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오랜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너 글 잘 쓴다. 예전부터 그리 편지 쓰기를 좋아하더니, 글 쓰는 거 너랑 너무 잘 어울려. 앞으로도 쭉 계속 글을 써봐."
친구의 말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순한 칭찬이었지만, 초등 때부터 모든 학창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 말은 가슴에 깊이 와닿았고, 아마도 나를 작가의 길로 한 발짝 내딛게 한 작은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나도 글을 써보자. 지금은 쓰레기같이 부족하고 어설플지라도,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아도 계속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도 하나씩 써보자.’
그때부터 글쓰기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책 읽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먼 미래의 꿈을 위해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장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꼭 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보단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우연히 <슬초 브런치 3기 모집> 공고를 보며, 나의 쓰는 삶에 뭔가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감 날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마지막 순간에 결제를 해버렸다. 강의 시작 전날 밤까지도 환불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끝없이 고민했지만, 그 순간 드디어 시작되었다.
사실 글쓰기의 기본을 배우리라 예상했지만, 강의 첫날부터 '주제 키워드를 정하라'는 과제에 멍해졌다. 정확하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꿈'을 위한 주제 키워드를 잡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막연히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도, 정작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밤은 전체 강의 중 나에게 제일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동기들의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숙제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초조함이 나를 지배했다. 모두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처럼 빠르게 작가 합격 소식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주제 잡는 것만으로도 나의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이왕 시작한 만큼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기에 애썼다. 그래도그 시간 덕분에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작가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 글을 쓰고 작가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이 기다림은 내가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도 좋을지 판가름해 줄 첫 번째 관문처럼 느껴졌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브런치 스토리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누군가가 나를 '작가'로 불러주었다. 동기방에서의 축하 인사와 함께 '작가님'이라 불린다. 작가로서의 첫 발을 드디어 내디딘 합격소식에 기뻤지만, 여전히 주변에 자랑하기엔 아직 부끄럽다. 그럼에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주는 분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란 생각에 긴장과 설렘이 공존했다.
어릴 때부터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시절, 펜팔 오빠와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고, 군대에 면회까지 갔던 일도 있었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썼고, 대학시절엔 동기들의 군대 위문편지도 모두 답장을 써줬을 만큼,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책 사는 취미가 있나 싶을 만큼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 덕분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제는 글을 쓴다. 다음 달엔 학부모 교육에서 함께 쓴 글이 책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우리 엄마 이제 작가냐며 함께 글감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농담처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에 참 감사하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나의 '쓰는 하루'가 시작된다.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마음을 담는 일을 한다. 누군가가 읽기에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을진 몰라도, 나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쓰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어느 날, 조회수가 갑자기 1,000회를 넘어 금세 10,000회를 돌파했다. 또 다른 글도 조회수가 10,000회로 급증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사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무슨 이유에서 이리 조회가 되는가 싶어서 지인들에게 급히 물어봤던 초보 브런치 작가의 모습이었다. 알아보니 내 글이 다음 포털 메인에 떴기에 조회수가 급증했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다소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젠 5만회를 넘어간다. 별로 대단한 글도 아닌데 신기하다. 언젠가 나의 책이 나온다면, 아마도 이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고 쓸 것이다. ‘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지금, 브런치 작가로의 합격 소식이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주었다.
글만 썼는데, 조회수가 올라가고, 라이킷을 해주는 이들이 있어 또 한 발씩 내딛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고 함께 가자고 손잡아 줄 때, 못 이기는 척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꿈꾸던 모습에 가까워진다.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무언가를 잘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나 자신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자존감은 남의 칭찬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하는 순간에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 순간, 내 자존감 탱크가 천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쓰는 하루’를 맞이했다.
내일도 ‘쓰는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매일을 ‘쓰는 하루’로 살아간다.
어느새 ‘쓰는 하루’가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되리라.
그날을 꿈꾸며, 나는 여전히 ‘쓰는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
매일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매일 소소한 그 글감들을 담아 글로 표현하다 보니,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나를 만나는 기쁨이 참 좋다.
그리 ‘쓰는 하루’가 행복의 단상으로 남겨지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앞으로도 쭉 ‘쓰는 하루’로 채워질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