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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Nov 04. 2024

드디어 직장인의 시계는 멈췄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의 변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허둥지둥 아침을 준비하고 뛰어나가던 워킹맘의 일상도 멈췄다. 이제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그 존재가 변화했다. 사실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구분하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어떠한 상황이건 '엄마'라는 역할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바쁘게 널뛰기하던 삶을 내려놓고, 이제 가정에 집중하기로 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 결과, 내게도 드디어 늦잠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오전 7시 30분.

한창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하던 모습 대신 여유롭게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늘 바쁜 아침은 매번 주먹밥으로 대체되곤 했던 아이들의 아침식사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매일 밤 미리 요청하는 메뉴로 준비된다. 특별할 것 없이 밥과 빵, 시리얼처럼 건강식과는 거리가 있는 메뉴들로만 구성되지만, 아이 각자의 입맛대로 준비된다는 점이 큰 변화다. 엄마의 아침시간은 등교 준비와 함께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SNS에서나 보던 우아한 엄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제는 잔소리로 채워진 분주한 아침은 아니다.      




늘 짜증과 울음이 가득했던 아이들의 아침은 거짓말처럼 평안해졌다. 모든 집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분명히 변했다.      

학교 준비물과 물통을 챙기며 서로 학교에서 있던 에피소드를 나눈다. 셋이 둘러앉아 조용하고 편안한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한다. 오늘도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수 있는 일상이 감사하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집안 정리를 한다.

아무리 치워도 티 안나는 게 집안일이지만, 매일 어수선해진 물건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라고 투덜거리다가도, 여유롭게 집안일을 한 기회가 언제였던가. 문득 생각해 본다. 결혼 12년 차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초보엄마가 된 듯 어색하고 서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집안일을 아예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되어 보이는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와 정돈 안 된 짐들이 눈에 매우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럴 땐 딱 눈감고 출근해 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침 누수공사를 마친 터라, 가구를 옮기며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대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던 거지? 아이들이 기침하고 비염에 걸릴만했네.' 그동안 애써왔던 집안일이 마치 다 엉망이었단 것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물건들을 꺼내 닦고, 버리고, 구분하고, 정리했다. 한 공간씩 정리는 되는 걸 보며 내 마음속에 막혀있던 곰팡이들도 함께 걷히는 기분이었다.   


       



마쓰다 미쓰히로의 <청소력> 이란 책에서  '당신이 사는 방이, 당신 자신이다. 즉, 당신의 마음의 상태, 그리고 인생까지도 당신의 방이 나타내고 있다.'는 글을 읽고 충격받은 적 있다.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내 마음속도 썩어가고 있었음을 이제야 실감했다. 하나씩 싹싹 닦아내고 정리하니 그제야 안도의 미소가 터져 나왔다.      






숨 쉬기조차 답답했던 직장생활. 오랜 시간 익숙했던 일인데 왜 그렇게 갑자기 숨이 막혔던 건지 당황했지만, 집안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와 엉킨 짐처럼 내 마음도 그리 숨통이 막혔던 것이다.      






직업란에 늘 써왔던 '회사원'이란 단어 대신, 이젠 '주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각종 4대 보험들도 내 직장생활이 끝났음을 알려주듯 차례대로 정리되었다. 그 순간, '이제 소속이 없구나'하는 묘한 허전함이 몰려왔다. 후회 없는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16년이란 세월 속에 쌓아온 '과장'이라는 직함이 그냥 종이장처럼 사라지는 느낌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제 엄마가 돈이 없어서 너희들이 원하는 걸 다 못 해줄 수 있어. 이제 엄마는 백수야."

"엄마는 우리를 돌보는 엄마라는 직업이 있잖아. 그러니깐 백수는 아니지. 백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노는 사람이라고 했어. "    


아이의 말 한마디에 애써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라는 역할이 있었지. 돈을 벌거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인정해 주는 엄마다. 그렇게 나는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직업에 집중하기로 선택했다. 이왕 하나만 하기로 한 김에, 열심히 잘해보기로 다짐하고 초보 전업주부로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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