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엄마의 사랑을 다시 만나다
우리 집에는 늘 앞장서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친정엄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게 대단한 존재였다. 그래서 늘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성장하는 동안 엄마의 따뜻한 위로는 언제나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따끔한 꾸중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엄마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를 돌보는 일을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특히 집안에 큰 어려움이 닥쳤던 시절,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야지.'
엄마와 함께 손을 맞잡고 그 시절을 이겨냈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엄마는 변함없이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깨달았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잔소리 없이 우리를 키워낸 엄마를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쏟아붓는 내 모습을 부끄러워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깔끔하게 집안을 유지했던 엄마와, 퇴근 후 어질러진 내 집을 바라보며 또다시 엄마를 떠올렸다.
조심스럽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도 우리 키울 때 힘들지 않았어?"
엄마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셨다.
"너희들은 힘들게 한 적이 없었어. 스스로 잘하던 아이들이었지."
하지만 나는 어떤 아이도 저절로 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견디며, 또 얼마나 많은 순간을 헌신했을까 싶다. 엄마는 역시 정말 대단하다.
오늘, 엄마가 지방에서 인천으로 올라오셨다.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머물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시는 길에 엄마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커다란 택배였다.
엄마의 택배는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했다.
자취할 때는 생필품으로, 결혼 후에는 생활용품으로, 아이를 낳은 후에는 반찬과 간식들로, 그리고 지금은 제철 나물과 김치들로 채워져 있었다.
박스를 열자,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 사위가 좋아하는 오이김치, 그리고 손수 준비한 여러 가지 나물들이 가득했다. 그저 박스를 열었을 뿐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다.
비가 내리는 터미널로 엄마를 마중하러 달려 나갔다.
한때는 손주들을 돌보러 오시느라 바쁜 틈을 쪼개 휴가까지 내셨던 엄마였다. 이제는 퇴사한 딸이 직접 엄마를 마중 나가니, 엄마는 더욱 환하게 웃으셨다.
"터미널에서 우리 딸을 오랜만에 직접 만나니 좋네."
별것 아닌 듯한 그 한마디가 가슴 깊이 울렸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다시 어린 딸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가 직접 따온 나물들을 함께 정리했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오신 엄마가, 65세를 넘기니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재철나물들을 챙기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다.
딸 걱정에 온갖 건강에 좋은 것들을 챙겨 보낸 엄마의 모습 속에서 나는 또다시 느꼈다. 엄마는 참 따뜻하고,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껴 울컥했다.
"엄마, 이번에 나랑 뭐 하고 싶어?"
내 질문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이렇게 얼굴 보며 딸이랑 그냥 도란도란 얘기하는 게 좋지."
하교한 아이들도 외할머니를 반기며 환하게 웃으며 안겼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저녁, 따뜻한 시간 속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저녁 내내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을 충전했다.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신 엄마를 위해 새로 빨아둔 이불을 깔아드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엄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웃음을 함께 나누며 더 행복을 채우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하는 하루. 나는 다시 어린 딸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엄마의 사랑은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