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비워야 하는 노목(老木)인가 하노라.
강원도 오두막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산이 있고 바다가 가까운 양양군 현남면에 마련한 작은 집은 쉬기에 좋다. 아침 일찍 잠을 깼다. 동네도 익힐 겸 해서, 죽정자리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 쪽으로 걸었다.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마을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고려 적부터 대나무가 많아서 죽리(竹里), 정자가 있어 정자리(亭子里)였으나 행정구역을 통합하여 죽정자리(竹亭子里)가 되었다고 하였다. 봄과 가을에 서낭제를 지내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책을 읽다가 아름다운 문장이나 가슴에 남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보고 밑줄을 긋기도 하듯이, 길을 걷다 예쁘거나 못 보던 꽃이 보이면 멈추어 서서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곤 한다. 어느 집 문 앞을 지나다가 고목이 된 감나무 한 그루가 꽃처럼 눈에 들어왔다. 이 감나무는 나의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달관하여 세상사에 무심한 도인처럼 보이는 감나무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 문 앞에서 불편한 몸으로 목탁을 두드리는 탁발 노승의 모습이었다. 두상은 어느 동네로 말씀을 전하러 가셨는지 잘려 나가고, 가슴부터 아랫배까지는 미약한 벌레에게 공양했는지 헛헛한 구멍만이 샛바람을 맞고 있었다. 왼발과 오른팔도 호랑이에게 식신공양을 하셨는지 없다. 남은 왼팔도 깁스를 한 듯 몸뚱이에 묶여 겨우 손가락 같은 잔가지 하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 닭 한 마리 없었다.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집이나 황토를 잘 반죽하여 한 켜를 놓고, 그 위에 자그마한 돌을 한 켜씩 올려 쌓은 흙담이 예스러워 정감 가는 집이었다. 담 위에는 멋을 부리느라 수키와를 어긋어긋 놓았고, 지붕 머리에도 수키와를 올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기와 기술자가 쌓은 담은 아니었다. 막새로 마감도 하지 않은 투박한 흙 담벼락이었다.
흙담 앞에는 진달래꽃 한 무더기 화사하게 피었고, 커다란 화강석이 댓돌처럼 길게 누워있다. 돌 위에는 신발 대신 어제저녁 씻어 놓은 듯한 도자기 화분 세 개가 심심한 듯 서 있었다. 소담한 난초 잎 하나를 대담한 솜씨로 그린 백자 화분은 몸체가 높아 훤칠했다. 밖에다 내놓은 것을 보면 고가(高價)의 도자기는 아닌 것 같지만, 소박해도 초라하지 않은 백자의 멋이 살아있었다. 흰색의 옹기와 코발트 빛 화분도 흙만 담긴 채 정갈하게 흙담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마당 한쪽 한 그루 배롱나무는 온 세상이 초록인 오월이 됐는데도 잎도 피우지 않은 채, ‘나는 내 뜻대로 살겠노라’는 듯이 굳건하다. 뒤편으로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안온하게 에워싼 남향집이었다. 배롱나무 위를 지나는 전깃줄 위에는 참새 한 마리 대문 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저녁 죽정자리로 놀러 간 철부지 아들이 아직 안 돌아왔나 보다.
푸른색 금속기와로 지붕 개량사업을 한 이 집은, 옛날에는 잘 지은 초가집이었을 것 같다. 벽은 흰 회를 바르고, 문은 멋스러운 격자문에 창호지를 깨끗하게 발랐다. 지붕 아래 왼편에는 판자로 지어진 빨간색과 파란색의 주인 없는 개 집이 있고, 그 옆에는 빨간색 소화기 하나 놓여 있다. 아침 일찍부터 모두 출타했는지 댓돌 위에는 신발이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이른 새벽부터 밭이나 논으로 일 나간 것일까?
마당은 시멘트를 바르지 않았고, 잔디도 심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한쪽으로는 두엄자리가 있을 것 같은 흙마당이었다. 고추가 널려 있고, 닭이 기웃거릴 것 같은 정이 가는 마당. 옛날 같으면 아이들 웃음소리 넘쳐나고, 새하얗게 널어놓은 옥양목 기저귀가 마당 하나 가득했을, 요즈음은 보기 어려워 반가운 흙마당이었다. 대문 앞에는 어제저녁에 집주인 아들이라도 왔는지 자동차 한 대 서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나니, 초가에 살던 감회가 일며 옛날이 그리웠다. 신구 문물은 병존하는 것일까? 투박하나 고졸한 담벼락을 따라서 신문물의 전깃줄이 지나가고, 볏짚 이엉을 올렸던 초가는 최신의 금속 기와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흙 마당 앞에는 신문명인 자동차가 서 있고, 개 집 옆에도 빨간색 신식 소화기가 놓여있다. 이 집주인은 신구문물이 교체되는 소용돌이에 어지럽지는 않았을까?
처음부터 속이 모두 비어 있는 감나무에 눈이 끌렸다. 머리가 잘리고 팔다리가 없어도, 저 아래의 뿌리에서 작은 가지 하나를 어렵사리 길러내어 잎을 피우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새도 앉지 않는다는 고목(枯木)인 줄 알았는데, 때를 기다리며 칼바람을 이겨내는 나목(裸木)이었다.
사리 분별을 따지는 머리도 없으며, 희로애락을 겪는 속도 없다. 머리 없이 몸통만으로 파란 하늘을 이고 있으니 번뇌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을 것이요, 오욕칠정의 오장육부를 다 비워냈으니 화낼 일도 시기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저 감나무는 늙고 불구이지만, 영혼은 맑고 자유로우리라. 버리고 비워야 자유로워진다고 하지 않던가. 고목(古木)에 싹이 트는 것을 보고 있는 나 또한 비워야 하는 노목(老木)인가 하노라.
* 식신공양: 부처님이 깊은 산속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 토끼 한 마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부처님! 저 좀 살려주세요.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해요” 하였다. 뒤의 바랑에 숨겨 주었다. 조금 있으니 호랑이가 와서 “부처님 여기 토끼 한 마리 오지 않았어요?” 한다. 부처님은 바랑 속에 토끼를 숨겨놓은 지라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야. 그렇게 살생하면 나쁜 일이다.” 호랑이는 부처님이 감추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지금 부처님이야 말로 살생하고 계시는 겁니다. 저는 토끼를 잡아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 죽습니다. 그러니 살생을 그만두시고 토끼를 내놓으십시오.” 하였다. 부처님은 왼쪽 허벅지 살을 칼로 뚝 떼어 호랑이에게 던져 주었다. “이거면 되겠느냐?” 날름 받아먹고 “아닙니다. 아직 모자랍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 살을 떼어 주고 “됐느냐?” “아직 모자랍니다” “됐느냐?””아직 모자랍니다”, 결국 부처님은 호랑이에게 심장까지 내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