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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Oct 27. 2020

1. 피해망상,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뚱뚱하고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잘해야지. 어릴 적 내 머릿속을 지배한 문장은 날 최상위권에 올려놨다. 선생님의 관심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고 그 때문인지 왕따를 당하진 않았다. "선생님이 예뻐하는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는 타이틀은 내 외모와는 상관없었다. 또래들은 나를 대하길 어려워했고 덕분에 학교나 학원에서는 무시당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나는 돌연 공부와 척을 졌다. '진짜 친구'를 처음으로 사귄 탓이었고 내 삶은 공부 이외의 것으로 가득해져 갔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영위해오던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진지한 관계는 어느덧 공부 이상의 우선순위에 놓였다.

 여전히 내게 돼지라고 욕을 하고 침을 뱉는 사람은 종종 만났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내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한결같았기에 약간의 상처만 받고 말아 버렸다. 친구들은 빈말로라도 내 외모를 칭찬해주었다. 내가 나 자신을 비하하면 도리어 화를 내고 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자존감은 찰나에나마 잠시 올라갔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어른에게 받던 관심이 식어가는 것에 커다란 공백을 느꼈다. 그때서야 다시 연필을 잡아봤지만 끈기가 없어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중위권을 유지하다 지방에 있는 모 대학에 합격했으나 '의미 없는 간판'이란 생각에 결국 재수를 하기로 했다.



 스물, 원래대로라면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고 다닐 시간인데 나는 좁은 학원에 갇힌 채였다. 오직 공부만이 허용된 곳에서 내 나름의 열심을 떨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내 인생은 뒤집힐 것이고 내가 갖게 될 '간판'은 새로운 울타리가 되리라 철썩 같이 믿었다.

 이과반의 특성 때문일까, 여학생은 7명 남짓했고 나머지는 모두 남학생이었다. 여고를 졸업한 나는 남자가 어색해 공간 자체에 불편함을 느꼈다. 담임 선생님은 여학생끼리 붙여두면 떠들 것이라며 양쪽에 남학생들을 앉히는 바람에 생활은 더더욱 고역이었다. 화장실을 다닐 때, 지우개를 떨어뜨렸을 때 "잠시만" 내지는 "미안" 등의 말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이 참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못생긴 년'하고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말았다. 빼빼 마른 몸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학창 시절에 노는 물을 먹었는지 얼굴이 번들거리는 남자아이였다.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고3에서 재수 생활까지 있는 대로 불어난 몸과 여드름이 잔뜩 올라온 내 얼굴은 누가 봐도 '못생긴 년'이었다.

 그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후드가 달린 겉옷을 입고 내내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최대한 얼굴을 가려야만 욕이라도 덜 먹겠거니 싶었다. 주변의 시선이 다 나만 보는 것 같았다. 그 눈짓이 나를 찢고 욕하는 것만 같은데, 공부에 집중이 될 리 만무했다.


“선생님, 남자애들이 절 못생겼다고 욕해요.”


 학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배정된 담임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를 찾아가 내가 겪은 일들을 소상히 털어두었다. 이렇게 말해두면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다. 선생님은 알았다며 나를 위로한 후, 그대로 남학생 몇 명을 불러 추궁했다.




“너 이번에 시험 잘 봤어?”


 모의고사가 끝난 저녁 야간 자율 학습 시간, 얼마 전에 내게 손가락질하던 녀석이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며 물었다. 타격음에 모든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순간 겁을 먹은 나는 무어라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멍청하게 웃기만 했다.


“그냥 그랬어.”

“아, 그래?”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나는 귀까지 빨개져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구석에 몰려있던 다른 남자아이들이 그냥 그랬어~ 하며 꼬부라진 어투로 내 말을 따라 하고 키득거렸다. 나는 선생님에게 상황을 털어둔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 날 저녁,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이제 괜찮지?”

“아니요.”


 거기서 그냥 괜찮았다고 답했다면 좀 나았을까.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이런저런 일을 털어두자 담임 선생님은 이마를 문지르며 오래도록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일종의 피해망상 같은데, 한번 정신과에 가보는 게 어떻겠니?


 두서없는 본론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상처를 받았고 이렇게 눈치를 보고 사느라 위축되어 있는데, 지금 그게 다 내 착각이었다고? 억울함에 입이 다물렸다. "저희는 그런 적 없어요!" 남자 애들은 그렇게 대답했단다.

 그 후, 나는 구석에 찌그러져 조용히 지냈다. 욕하는 소리를 듣거나 손가락질을 받아도 못 들은 척, 안 보이는 척했다. 그러자 비난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그들이 내게 관심을 잃은 걸까, 아니면 담임의 말대로 내 피해망상이 나은 것일까. 의문은 깊어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구구절절한 내 사연에 그렇게 물었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시 한번 재연하는 것으로 본뜻을 강조했다. 나는 우리가 내 의견에 동조하고 있음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서러움은 토하면 토할수록 희석되는 법이기에 반복되는 말을 애써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말을 또 한다고 지겹다거나 귀찮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털어두었다.


"내가 정말 피해망상일까?"


 하지만 나는 그들의 경멸하는 표정을, 그 손짓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내 표정에 우리는 턱을 괸 채 고개를 기울였다.


"네가 보고 들은 것만 믿어."

"그게 맞는 거겠지?"

"생각해 봐."


 넌 고등학교 다닐 때도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경멸받았어. 신발에 침 뱉고 가던 놈 기억 안 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몸이 늘어진다.


"그보다, 아픈 건 좀 어때?”


 우리가 물었다. 위염으로 시작한 병은 위궤양으로 번졌다.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감 자체로 무서운 병이었다. 속이 마구 쓰리고 신물이 올라오는데 아침엔 특히 더 심해 조식을 거른지도 한참 됐다.


“나만 아픈 건 아니겠지.”

“하긴 죄수생인데."

"너무하네."


 우리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찬물을 건넸다. 나는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여 분노로 뭉쳐진 응어리를 그가 내민 찬물로 식혔다. 어쩐지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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