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람 Oct 27. 2020

4. 기억 도난, "그런가?"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4. 기억 도난, "그런가?"

 벌어둔 돈을 전부 긁어모아봤지만 웃기는 액수였다. 아무렴, 월에 60 밖에 되지 않는 돈을 모아봤자 얼마나 되겠나. 나는 그 돈에 맞춰 재수 학원을 알아봤다. 이왕 다니는 거 좋은 학원에 가고 싶으니 서울까지 가게 됐고, 거기서 내 나이와 상황을 감안해 학비의 20%를 할인해주겠다는 곳을 찾아 당장 등록하게 됐다.

  

“여자애가 공부 많이 해봤자 나중에 쓸모없는데.”

            

 학원장은 쓸 데 없는 말을 덧붙였다. 썩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또 멍청하게 웃었다. 

              

“하긴, 좋은 곳에 시집가면 여자는 직업이고 나발이고 대부분은 애기 엄마로 끝이잖아.”

               

 우리는 학원장의 말이 맞다며 끄덕였다.


“요즘엔 맞벌이도 많이 한다지만, 그렇다고 당장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일은 오래 못하겠지."


 애까지 있다고 치자, 그럼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진 엄만 꼼짝도 못 할걸. 나는 긍정했다. 학원장이 던진 말은 분명 생각 없이 던진 소리였지, 딱히 날 모욕하려던 것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내리 좋지 않은 기분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세 개나 먹어야만 했다.


 

 전공했던 학과에 맞게 과학 탐구 과목은 생명과학 1,2로 정했다. 고3, 재수, 대학 내내 배운 내용이니 쉬울 거라 예상하고 덤볐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고작 6년 만에 저만치 올라간 현 고등학생들의 공부 수준은 상당한 난이도였다.


"나 고등학교 다녔을 땐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애들이 똑똑해지는 걸까, 어른들이 바보가 되는 걸까."


 무식하게 줄만 세우겠다고 문제만 어렵게 내는 것 아냐? 이러면 뭐가 남는데. 우리는 수능도 공부도 전부 그 사람의 성실함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얼마나 악착같이 해내고 버티느냐의 승부. 그게 그가 정의한 대입의 기초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교육계의 '꼬락서니'를 본 그는 혀를 찼다. 이건 아니야, 너도 진짜 고생한다. 토닥거리는 손짓에 한숨만 나왔다.


"내가 고른 길인데 할 수 없지."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냐"


 교육 강국. 그건 과연 좋은 수식어일까? 과연 입시는 단순히 성실함을 재기 위한 도구일까? 좋은 대학을 졸업한다고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십 대 중반만 되어도 알아차릴 사실이다. 하지만 십 대 땐 그런 착각에 빠져 공부했고 성적에 집착했다. 어른들은 치사하게도 공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다양한 루트의 삶을 숨겼다. 그렇게 등수 매기기에 홀려버린 아이들 중 몇몇은 대학 이름으로 '완장질' 하는 멍청이로 자랐다.

 비틀려먹은 세상의 비틀려버린 애들, 어느 날 본 뮤지컬의 한 가사가 떠올랐다.




 학원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한 시간씩 심리 상담반을 운영했다. 이 또한 비용이 드는 것인지라 등록하지 않았는데, 수능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내 상태가 온전치 못해 듣게 됐다. 수업 내용이 한쪽 귀로 들어와 반대쪽 귀로 빠져나가기 일쑤였고,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스물여섯이란 나이에 모든 것을 접어두고 도전한 이 한 걸음이 인생의 오점이 될까 봐 나는 온갖 것이 무서웠다.

 상담 수업을 등록하기 전에 선생님부터 찾아갔다. 그에게 내가 왜 재수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이며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지 소상히 털어두었다.


“그래서 이번에 실패하면 그냥 석사 따려고요.”

“난 네가 성공해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눈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첫 만남에 이만한 관심을 주다니, 놀라움엔 자각하지 못한 위로가 스며들었다.


“특히 그렇게 동물을 죽였다는 부분에서… 네가 많이 힘들어했으니까 말이다. 대체 어떻게 견딘 거니?"

“할 땐 아무 생각 없었어요, 일이잖아요. 하지만 그러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기분이 영 안 좋았어요. 한동안은 자주 넘어지기도 했고요. 꼭 화가 난 영혼들이 절 괴롭히는 것처럼요.”


 나는 다 나은 무릎을 두드리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선생님은 내 말과 행동이 온통 부정적이라고 했다. 평생의 장점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 믿고 있던 나는 이때서야 나를 돌아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좋게 생각하려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과거에 어떤 괴리감이 생겼다. 선생님은 내가 쓰는 말을 다른 단어로 고쳐주기도 했고 생각의 방향도 돌려주셨다. 그건 분명히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어제 수업한 내용이 꼼꼼히 정리된 책을 열어보고 고개를 기울었다. 분명한 내 글씨체인데 적은 기억이 없었다.


“우리 52p 진도 나갔어?”

“네, 나갔어요.”


 뒤에 앉은 아이에게 묻자 그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했나? 왜 진도 나간 것도 까먹었지? 혹시 이게 나이 먹을수록 공부하기 힘들다는 말의 이유였나? 한 2살만 더 어렸다면 좋았을 텐데. 술을 좀 덜 마시고 다녔으면 나았을까. 자괴감은 나를 아득바득 갉아먹었다.

 하루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바래더니 온몸에서 기운이 훅 빠졌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시야가 흐려졌다. 올라오는 구역감에 얼굴을 감싸고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외출증을 끊어 병원에 갔다.

 혈압은 50에 80, 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란다. 기억력이 떨어진 이유가 아파서였다는 사실에 눈물이 터졌다. 없는 형편에 지갑을 비워 학원에 다니고 그마저도 모자라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있던 내 처지가 우스워서 열이 났다. 노력과 다르게 성적은 제자리였고, 집중한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그대로 잠들기 일쑤였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친구처럼 지냈던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자주 두드려 깨웠다. 내 뒷자리에 있던 남학생은 그걸 보고 키득였다. "나이 먹고 공부 다시 하는 주제에 잠이 오나 봐." 그런 수군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그걸 의식하고 있음에도 잠은 비참할 정도로 쏟아졌다.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 뛰어든 입시인데 이번에도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끝없는 절망에 눈가가 시큰했다. 커다란 비명이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죽여줄까?”


 우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죽을래? 목을 맬까, 손목을 그을까.”


 집에 가는 길이던 나는 지하철 활주로만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뛰어내릴까.”

“스크린 도어가 있어서 안되는데.”

“인천 급행 방면엔 없어.”     

“진짜 뛰어내리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죽고 싶다는 주제에 죽을 용기도 없구나, 나는.”

            

 한심함에 속은 타들어갔다.

 아주 당연하게도 수능은 망쳤다. 지망할 대학도 없고 이미 졸업장도 있으니 거기서 끝냈다. 대학원은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 또 한 번 휴학계를 냈다. 그때부터 나의 히스테리는 시작되었다.

이전 03화 3. 부서진 꿈, "너, 실험실 잘못 골랐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