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3. 부서진 꿈, "참 대단한 꿈 납셨다."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지금의 전공과 새로운 전공을 합쳐 제3의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포부를 갖춘 목표는 취업을 미뤘다는 안도를 기저에 깔고 있었다. 조금 더 학생으로 지낼 수 있는 데다가 잘 배워두면 내 뜻과 같은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며 같은 학교 의학 계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원은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많이 달랐다. '지도교수의 가르침 아래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실험하며 논문을 쓰는 곳'이라 생각했건만,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논문을 토대로 실험하고 결과를 옮겨 적는 것'이 전부였다. 교수는 "A라는 답이 나오는 실험일 텐데 왜 결과는 B로 나왔느냐"며 장장 3시간 동안 성을 냈다. 연이은 밤샘 실험으로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의 면전에 대고 토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교수가 지시한 실험은 정말로 잔인했다. 과 특성상 동물 실험이 많았는데, 학부생들이 실험실에 지원하지 않아 생긴 인력난으로 내가 키운 토끼와 쥐를 내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살아있는 근육과 간 샘플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마취 없이 잔인하게 죽였다. 일을 할 적엔 "해야 한다"라고 치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우면 찝찝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비명을 지르던 쥐의 목소리가, 나를 쳐다보던 새빨간 눈동자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잠을 설치다 서너 시간 자고 나면 다시 출근했다. 문득 군대에서의 아침은 욕으로 시작한다던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머잖아 정말로 눈을 뜨자마자 욕이 나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고 몸은 극도로 피곤해졌다. 급한 프로젝트를 마친 후 같은 실험실에서 일하는 포스트 닥터(이하 포닥)에게 주말 실험을 부탁하고 병원에 간 나는 “위장에 피가 고여있다”는 의사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교수는 포닥에게 내 이름으로 장학금을 받아 월급을 채워주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와야 하는 돈이 아니던가?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겪고도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석사는 딸 생각이었으니 참은 거지, 지금의 나였다면 학위는 때려치우고 뒤집어엎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포닥이 준비한 실험과 논문은 교수의 아내와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달고 세간에 발표됐다. 정작 내 이름이 붙은 논문은 내가 참여하지 않은 실험들이었다. 이게 내 커리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력은 이쪽에서 하고 저쪽 공은 가로채고 있다는 현실에 불만은 점점 배를 불리고 있었다. 대학원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내 의지와 다르게 뺏고 빼앗겼고 정신과 건강을 동시에 축내기만 했다.
"참 대단한 꿈 납셨다."
어차피 의사도 아니고 약사도 아니니까 네가 연구실을 돌릴 일은 없는데. 정곡을 찌르는 우리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그땐 정말 대단하고 획기적인 계획인 줄 알았다. 훌륭한 도전정신으로 꿈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달리고 있다며 '꿈꾸는 자신'에게 도취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복했다. 하지만 직접 걸어본 길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석사는 따야지."
이제 겨우 반년 지났어. 1년 반만 버티면 바로 떠날 거야. 박사는 죽어도 안 해. 내가 으름장 놓듯 말하자 우리는 낄낄대며 웃었다.
"근데 그 사람은 어디 갔어?"
"누구?"
"너 오기 전에 실험실에 있던 언니. 그 언니는 그만둔 거야, 졸업한 거야?"
"아, 취직했다고 하더라."
"취직!"
기껏 대학원 다니다가 갑자기 취직! 파트타임도 아니고 그냥 휴학계 냈다고 했지? 우리는 뭔가 아는 눈치였다.
"너, 실험실 잘못 골랐어."
“지금 하고 있는 실험은 어떠니.”
교수가 소개한 모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을 마친 후, 그의 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도중의 일이었다.
“이번 달 안으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네 졸업 논문으로 작성하고.”
이쯤에서 교수는 잠시 입을 다물고 한참을 우물거렸다. 설마 졸업 논문 주저자를 다른 사람으로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졸업 논문이라는 게 꼭 주저자가 네 이름일 필요가 없거든.”
아까 그 회사 사람들 있지? 거기에 OO 박사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예상했던 말이 나오자 나는 또 멍청하게 웃었다. 아, 네, 네. 백미러로 시선이 마주친 교수는 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던 놈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면 다들 담당 교수님한테 뭐 하나씩 하거든? 작년에 졸업한 애는 차를 한 대 뽑아줬고, 골프장 보내준 애도 있었어. 그런데 넌 그렇게 안 해도 돼, 그냥 좋은 곳에서 식사 한 번 사는 걸로 하자.”
대단한 선심이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날 기숙사 앞에 내려놓고 떠났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배에 손을 댔다. 술을 먹기엔 위출혈이 겁이 나서 했던 짓인데 담배는 폐보다 위부터 망가뜨린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나는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연거푸 거친 숨을 내뱉으며 빠르게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대학원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걸 토대로 연구소에 가서 남들이 개척하지 못한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학교도 학과도 다 잘못 고른 걸까? 눈앞이 캄캄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한 나는 담배를 태운 후 소주를 두 병 마시고 피를 토했다.
얼마 후, 내 장학금으로 월급을 지급받은 포닥은 키득거리며 내게 귀띔했다.
“그 교수 들켰대.”
“뭘?”
“네 장학금으로 내 월급 준 거.”
그럼 그렇지, 그게 어떻게 안 들키겠나. 속이 개운했다. 원래 우리 실험실을 관리하던 교수님은 따로 있었는데 그는 학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대학원 실험실 업무를 지금의 교수에게 넘겼다고 했다. 잘 돌아가고 있나 확인차 들렀던 그는 현 교수의 만행을 알게 되었고, 그는 문맥 그대로 실컷 깨졌단다.
“교수님, 저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바로 그런 상황 즈음에 나는 교수님 방에 방문했다. 조금 성급하게 문을 두드리고 곧장 열어버린 것은 내 결례가 맞았지만,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내 이름 석자와 지급되었어야 했던 금액이 버젓이 적혀있었다. 석사 시절 내가 받은 돈은 월 60만 원이었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3개였다. 그래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바쁜 만큼 모든 실험 결과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달고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니 나는 저렴한 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들은 석사 내내 프로젝트 하나만 한다는데 세 개나 뛰는 내 월급이 고작 60일 리가.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는 허둥지둥하며 컴퓨터 모니터를 껐다.
“어어, 그래. 무슨 일이니?”
용건을 말하기까지 잠시간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본 숫자들을 월 단위로 계산하면 자그마치 300만 원 정도였다. 매달 그렇게 야금야금 돈을 떼어갔구나.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되겠네. 마음은 삽시간에 멀어졌다.
나는 원래의 내 꿈을 떠올렸다. 특정 분야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을 해소하지 못해 연구실을 찾았던 것인데, 이쯤 되니 다시 의사를 목표로 해볼까 하는 오기가 샘솟았다. 곧장 휴학하겠다고 전했다. 교수는 또다시 사과하며 “논문만 쓰고 가면 졸업한 것으로 쳐줄 테니 휴학계는 내지 말고 가렴.”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봤던 연구 윤리에 위반되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에 나는 코웃음 쳤지만, 그만한 돈을 지불하고 학위를 샀다고 쳐야겠단 보상 심리가 그걸 따질 때냐고 반박했다.
짐을 전부 싸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날, 교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선 내 등 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러붙었다.
“어어, 저번에 말했던 그거. 못 해줄 것 같으니 그냥 휴학계 내고 가.”
“네.”
나는 내가 졸업 논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춘 채 그렇게 휴학계를 냈다. 어차피 지금 내봤자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날 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쓰지 않았다. 약속이 깨졌다는 것과 이번 논문은 당하지 않았다는 소심한 승리만이 품에 남았다. 입안은 잔뜩 씁쓸했다.
"이제 뭘 할 거야?"
"재수."
"재수?"
너 미쳤구나? 우리는 뜨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무리도 아니었다. 고3, 재수, 대학 4년, 편입, 대학원 그 후에 또 재수라고? 누가 보면 공부에 미쳤거나 실패를 즐기는 도피자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실험실을 돌릴 전문적인 권한"이 갖고 싶었다. 저런 교수보다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의사가 될 거야, 나 아직 어린 나이도 아닌걸."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