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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Dec 30. 2021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이번 생은, 오직 널 만나기 위해 태어났어"




전생을 기억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18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며,

지난 17번의 인생에서 있었던 모든 일과 만난 모든 사람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단 한번 뿐인 첫사랑과 같다.

설레임과 놀라움으로 가득하지만, 그 상실에 그만큼 아파해야 하는 것.

그러나 전생을 기억하는 그녀에게 인생이란 이미 닳고 닳아 질려버린, 

그러나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연인일 뿐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매번의 육신, 매번의 정체성, 매번의 인연이

그녀에겐 또다시 갈아입어야 하는 덧없는 드레스에 불과하기에.

윤주원이라는 소녀의 12살답지 않은 허무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 얼어버린 겨울의 호수로 문서하라는 소년이 발을 딛는다.

주원은 알게 된다.

그가 어쩌면 자신의 봄이라는 것을.


이혜 작가의 웹툰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테드 창이나 필립 K. 딕의 테마에는 관심이 없다.

전생의 종교철학적 가치나, 기억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김은숙 작가의 걸작 <도깨비>에서, 주인공인 김신은 그 불멸의 삶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이별에서 항상 '남겨진 자'가 되어야 한다는 슬픔은 얼마나 고된가.

반면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지금껏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왔지만

지금은 윤주원이라 불리는 소녀를 괴롭히는 문제는 약간 다른 것이다.

매번의 삶은 유한하지만 기억은 영원하다는 것.

자연사로, 사고사로, 혹은 자살로 수많은 죽음을 겪어왔을 그녀는

그만큼의 탄생을 경험했을 것이고,

수많은 정체성을 원치 않게 갈아 입어야만 했다.

결국 전생의 자신이 현생에서는 타인이 된다는 것이며,

한때의 부모도, 한때의 누이도, 한때의 사랑도 언제든 타인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반쪽이 타자가 된다는 공포.

주원은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갑작스런 사고에서 서하를 감싸고 자신이 목숨을 잃는다.

서하를 영영 잃는 아픔보다

서하가 '다음 생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픔이 나으니까.

우리는 인연의 종말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랑을 나눴던 연인이 더이상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일부인 가족이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때.

가장 소중했던 친구가 어느새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그리고 주원처럼,

18번 중에서도 어쩌면 처음이라 생각된 사람과 헤어질 때...

결국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끊어진 인연을 이어보려는 인간의 덧없는 의지에 대한 로맨스다.


얄궂게도 본격적인 이야기는 주원이 아닌 반지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지음은 주원의 '이번 생'이고,

그녀는 이번 생을 오롯이 서하와 재회하기 위한 계단을 쌓기 위해 쓴다.

마침내 다시 재회한 서하는 당연하게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음은 당장 자신이 주원임을 밝히고 싶었을 테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고 기다린다.

서하가 자신을 알아보기를, 떠올려 주기를.

봄은 찾아야 하는게 아니라, 추위를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이 사랑이 지난 생들의 무상함과는 다르기를 희망하면서.

그리고 이 사랑도 지난 생들의 허무에 짐을 더하진 않을까를, 남몰래 두려워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반문한다.

인생을 19번이나 살아온 사람이 그 중 한번의 인생에서,

그것도 짧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누군가와의 인연에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이 이야기가 절묘하게 지음의 심리 표현을 제한하고 있기에 간과될 수 있는 사실은,

그녀는 18번의 인생을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인연의 종말이 그녀의 가슴에 수도 없이 상처를 냈으리라는 점이다.

길고 다양한 삶들을 살아온 그녀가 철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일 터.

즉, 지음은 이미 숱한 사랑을 겪었을 것이며,

끊어진 인연을 복구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음은 서하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보려 한다. 대체 왜?

서하가 19번의 인생들 중에서도 기억될 만한 사람이어서?

그 사랑이 그만큼 결정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묻는다면 개연성은 알되 사랑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아팠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그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어가보고 싶은 것.

그것이 결국 사랑의 본질이니까.


이혜 작가는 서사의 무성한 지엽말단을 깔끔하게 제거하면서

이야기를 뚝심있게 전개시켜 나아가고,

그런 서사를 단단히 지탱하는 것은

그 파스텔 톤의 색감과 버드나무 가지처럼 매끄러운 캐릭터의 데포르메다.

매력적인 핵심 아이디어와 얄궂은 서사 전개,

재벌과 커리어 우먼, 흔하지만 변주된 판타지 장치,

눈물보다는 웃음, 삶의 어둠보다는 빛을 따라가는 특징 때문에

이 웹툰이 흔해 빠진 '양산형 로판'과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들과 달리 가슴을 치는 이유는

생각할수록 가혹한 지음의 운명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삶의 굴레에 영원히 갇혀 있다 한들,

인간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그 굳건한 낙관주의.

절규와 비탄이 희망과 웃음을 삼켜가는 지금의 세상이기에,

이 일요 웹툰은 우리가 '이번 월요일'을 살아가야 할 태도를 상기시켜 준다.

지음의 씩씩한 '이번 생'처럼.


나에게 이 웹툰이 언젠가는 잊혀질 수도 있겠지만,

이혜 작가가 그린 지음의 표정들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당당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심한 그 얼굴.

그 예쁜 그림들 속에서,

나는 삶의 끝없는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한 인간의 감춰진 눈물을 본다.

인간이라는 그 씩씩하고 가련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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