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머니 Aug 26. 2023

당신, 고기파야?

75세 엄마는 5세 손자를 보러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내 아들이자 엄마의 손자는 책을 읽어달라며 물고기 도감을 할머니한테 들고 갔다. 엄마는 돋보기까지 써가며 물고기 이름을 말했다. 광어, 돌돔, 민어, 가오리를 읽고 나서 엄마는 그랬다.

"아이고, 고기 좋네. 마시겠다 그자?"

나는 엄마에게 교양없음을 나무랐다. 손자 책을 읽어주며 어쩜 그럴 수 있냐고 했다. 엄마는 맛있어 보여서 맛있다 했다며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한 어린 장금이처럼 의아해했다.


그런 엄마와 34년을 살았다. 아빠는 엄마보다 더 생선과 해산물과 비린 것들을 즐겨드셨다. 내 입에는 비릿한 향이 육향보다 좋고 귀하고 고급스럽다. 그런 내 뱃속에 자라고 태어나서인지 두 아이들도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미역국을 즐겨 먹고 미역줄기볶음을 좋아한다. 생선 잘 먹고 어묵은 앉은자리에서 두 개씩 먹는 11살과 5살이다.


남의 나라에서 핵오염수가 바다로 방출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백번을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 남의 나라일에 굳이 손뼉 치고 환호할 필요가 있을까? 유감이다,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하겠다. 정도만 해줘도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 75세 엄마에게도 이제 회는 적당히 먹으라고 했다.

엄마는 이제 다 살았으니 먹어도 된다고 했다. 너나 애들 어묵 먹이지 말라며 미역이랑 소금  많이 사놨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친구년들은 그래도 그 사람이 멋지다, 잘한다, 풍채 좋아서 좋다 하면서도 미역이랑 소금은 당신보다 많이 사더라며 욕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생각보다 바다는 착해서 오염수가 흘러들어도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해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백고둥이 고질라로 변할지도 모른다. 낙지가 고래만큼 커질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을 하며 해산물 코너를 돌다 고둥과 낙지를 샀다. 해산물 좋아하는 딸과 오염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 그 사람은 분명히 고기파야. 그러니까 해산물을 안 좋아하는 거야. 그러니까 바다가 어찌 되든 상관없는 거지 뭐. 자기는 안 먹음 그만이니까."

부르르 떨며 딸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와, 나 그 생각은 못했다. 그래. 그는 고기파인 거야. 그러니 바다에 크게 관심이 없는 거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대한민국에는 고기파, 해산물파, 채소파, 과일파, 칠성파 등등이 있다. 그리고 그 취향을 드러내고 말고는 본인의 자유다. 경찰은 도둑을 보고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중국집 주방장은 짜장면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조폭은 싸움을 잘해야 하고,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경찰은 도둑을 잡으며 고기파라고 말하지 않고 중국집 주방장은 짜장면을 만들며 과일파니 딸기를 넣겠다고 하지 않는다. 조폭은 싸움을 하며 해산물이 좋다는 고백을 하지 않고 의사는 치료 중에 칠성파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나 고기파요'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는 고기 파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당신 고기파야?"

매거진의 이전글 비포 애프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