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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Dec 30. 2023

25년 산 양주를 사줄걸

저녁에 닭개장(육개장과 레시피는 같다. 소고기 대신 닭고기)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등원시켜놓고 당면 20인 분 뜯어서 잡채 만들었다. 파래도 무쳤고 다시마 잘라뒀다. 25년 산 우정이라면서 생일을 못 챙겨준 게 내내 미안했다. 사실은 친구가 건강검진에 이상이 떴다고 했다. 생일인데 밥이라도 먹자며 연락했더니 지금은 만나지 못한다며 다 정리되면 보자고 했다. 두렵고 무섭고 후회했다. 25년 산 우정이라면서 친구가 농담으로 2천만 원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울었다. 그때 빌려준다고 할 걸 싶었다. 아프다니 그게 제일 미안했다. 빈 말이라도, 안 빌려주더라도 모질게 그러지 말 걸 싶었다.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사는 친구니까 괜찮을 거라고, 양성일 거라고 결말은 해피엔딩을 기대했다. 밥 먹으러 오겠다는 걸 보니 큰 일은 아닌 듯했다. 다 정리된 건 아니지만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아프다니 마음이 안 좋았다. 더 먹어라, 싸가라 했다. 닭개장이랑 잡채만 싸줄랬더니 파래무침도, 젓갈도, 다시마도 싸달라는 친구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서 살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니까. 지란지교를 꿈에서 아니라 현실에서 보게 해 준 친구니까.


45년을 살면서 자신의 똘끼를 몰랐다는 해맑음.

시아버지 장례식장에 남편 손을 잡고 와서 결혼기념일 저녁으로 여기가 딱이라고 말해주는 배려심.

여자는 역시 돈이랑 친구만 있으면 된다기에 딸도 필요하다는 내게 너만 있는 건 말도 꺼내지 말라는 질투심.

다음 생일은 호텔 뷔페 사달라는 허영심.

그 모든 걸 다 가진 친구를 내가 가졌다.

그대는 가졌는가?

그런 25년 산 우정을 그대는 가졌는가 말이다.

돈 주고도 못 사고 돈 있어도 못 가지는 그런 친구.

그런 친구를 나는 가졌다.



  - feat.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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