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공모전은 88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나는 879명 중 하나였다. 두 번이나 투고해서 출간했기에 공모전 내면서 약간 기대했다. '대한민국에서 투고로 책내기는 1%의 가능성이라니까 나는 1%의 작가야. 내가 되겠지'
똑~~~ 소리는 안 났지만 떨어졌다. 내 기대나 투고하고 출간이란 1% 가능성 같은 소리 말라는 듯이 근처도 못 간 것 같다. 반찬은 재미있다고, 이건 꼭 책이 되겠다고, 투고 안 해도 출판사가 먼저 계약하자 할 것 같다고들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말은 다 지인들이 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내 책을 읽고 내가 좋아졌다는 사람들의 아주 주관적인 칭찬에 우쭐하며 기대했다.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을 하든 백투백출(백 번 투고해서 백 번 출간)할 것 아닌가. 양희경 님의 밥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다. 주제도 내용도 나랑 비슷했지만 글쓴이가 달랐다. 많이 베풀고 자주 나누며 산다는 양희경 님의 책은 따뜻했다. 다 읽고 나니 밥 한 그릇 얻어먹은 듯이 배가 불렀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내가 쓴 반찬들을 돌아봤다. '나쁘지 않은데, 뭐가 빠졌나. 왜 책이 안 되는 걸까?'고민했다. 오래 들여다봐도 답을 못 찾고 있을 때 톡이 왔다. 같은 성당에 다니는 유난히 착하고 선한 언니는 위가 자주 아팠다. 위병이 나면 몇 달을 고생했다. 잘 먹지도 못해서 마른 언니가 볼 때마다 야위여갔다. 위가 또 탈이 났다며 뭘 먹어야 좋은지 내게 물어왔다. 명의도 소문이 나지만 반찬 잘하는 아줌마도 동네에서는 소문이 금방 난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지만 해먹을 지 의문이었다. 쌍둥이를 14년 동안 키우며 왕복 2시간 거리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언니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반찬을, 오로지 자신을 위한 반찬을 하기는 어렵겠지 싶었다. 시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 자주 하던 소고기 무나물을 했다. 브런치 댓글에 이 반찬은 위궤양 환자에게도 좋다는 게 기억났다. 무를 오래 볶아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다. 쌈장에 참치를 넣고 견과류를 부셔 넣어서 심심하게 만들었다. 양배추를 삶아서 김처럼 깔아놓고 밥 올리고 쌈장 올린 후 돌돌 말았다. 양배추는 누구나 알 듯이 위에 좋은 음식이니까 많이 깔았다. 두고두고 반찬으로 먹으라고 삶은 양배추 반통이랑 쌈장, 소고기 무나물을 가득 담았다.
언니네 문 앞에 걸어두고 왔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언니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언니는 내 큰 그림을 모른다. 반찬을 많이 해서 필요한 곳에 나누면 그걸 먹은 사람들은 고마워서라도 반찬이 책이 되라는 바람이나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런 마음들이 십시일반 모여서 언젠가 반찬도 책이 되게 하려는 나의 계획. 양희경 님의 반찬 만드는 법이나 글쓰기를 따라 할 수는 없으니 삶의 태도라도 표절하려는 나의 큰 그림.
차곡차곡 계획을 세우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탈락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글이 어디가 별로인지 자책하거나 문제점을 찾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는 입에 맞는 반찬이 내 입에는 별로이듯 글도 그렇겠지 한다.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비슷한 취향끼리 모여서 맛있는 밥 한 그릇 먹겠다는 마음으로 밥을 짓듯 글을 짓고 사는 것. 탈락자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