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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22. 2024

숨은 할머니 소원 찾기

옆 동네에는 한 눈에도 몇 백 년을 살았을 걸로 보이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가운데 두고 길은 양쪽으로 나 있다. 옆에는 지하철역과 큰 마트와 대단지 아파트가 있지만 나무는 몇 백 년 전부터 거기 그대로 있다. 운전을 하며 몇 번 본 장면이 있다. 할머니들이 나무 앞에서 끌고 다니던 장바구니도 내려놓고 손을 모아 기도 하는 걸. 아직도 미신을 믿는 할머니들이 있구나 가볍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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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전부이자 인생의 의미이자 삶의 이유인 딸이 롤러 타러 가자고 했다. 옆 동네 마트 안에 있는 롤러장으로 향하다 커피 한 잔 사려고 그 나무 옆 카페로 갔다. 할머니 한 분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커피를 기다리며 지켜보니 할머니는 울고 있다. 추워서 그러려니 했지만 내내 눈물을 닦으며 두 손을 모아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카페에서 나와 자세히 보니 나무 앞에는 막걸리와 과일이 있다. 할머니는 내가 한참을 기다려 커피를 주문하고 사서 나와서 저 사진을 찍을 동안도 내내 울며 기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날씨가 춥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할머니의 전부이자 인생의 의미이자 삶의 이유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저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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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영험하면 좋겠다. 할머니의 기도를 들어주면 좋겠다. 나는 믿는 분께 성호를 그으며 나무에게 영험함을 달라고 했다. 롤러 타는 우리 딸과 유치원에 있을 아들의 안녕과 건강과 행복을 위한 기도도 잊지 말고 들어 달라고 보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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