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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같은 선생님

by 주머니


떡 벌어진 어깨와 튼튼한 두 다리, 흰 머리카락 가득한 중년이지만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유치원에만 가면 여기저기서 예쁘다고 아우성이다. 이젠 뭐 하도 들어서 좀 식상할 정도라고 할까. (마주치지 맙시다.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예쁠 나를 상상 만해주세요.) 그러나 여기서 예쁘다는 말은 오로지 외모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잘 웃어주는 사람이라면 어른들의 눈에는,

‘저 사람이?’

싶어도 친구들은 예쁘다고 말해준다. 정확히는 예쁜 부분을 찾아서 말해준다.

“선생님 귀걸이 예뻐요.”

“선생님 오늘 양말 예뻐요.”“선생님 머리핀 진짜 예쁘다 그치?”

억지로 찾아서라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그 예쁜 마음 앞에서는 못난이도 예뻐지는 일이 생긴다. 유치원만 가면 예뻐지는 나도 그 못난이 중 하나였다.


그 날도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하늘하늘 거리는 샤스커트를 찾아 입었다. 레이스 달린 윗옷도 입었으니 이건 뭐 예쁘다 소리 10번은 더 들을만한 착장이었다. 물론 내 또래의 친구들은 나의 이런 의상을 보면 한 소리하거나 좀 떨어져 걷길 원했다.

“마흔 넘어서 그런 옷 입으면 공주병도 아니야. 그냥 병이야.”

“미안한데... 조금 떨어져 걸어줄래?”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분하기도 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너희들한테는 인기 없는 옷이지만 유치원에 입고 가면 난리 난단다.’

난리를 기대하며 첫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 문을 열었다. 여자 친구들이 내가 입고 간 치마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다. 7세의 안목은 유치원에서 가장 성숙하고 세련되었으니 믿을 만 하지.

“와, 선생님 예뻐요.”

“치마 예뻐요.”그때 내 귀를 때리는 한 마디가 있었으니.

“선생님 여신 같아요.”

여신이라니. 이 말은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황홀했다.

‘동네 사람들아, 내가 여신이란다.’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되게 자주 듣는 말인 것처럼 우아하게 답했다.

“그러취이이?”

여신의 품격에 걸 맞는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여신의 품격을 지키며 보따리를 어깨에 두르고 옆 반으로 입장했다. 역시나 예쁨 받을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남자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선생님 진짜 예쁘지? 머신 같지?”

그 말에 답을 하는 또 다른 친구.

“응. 진짜 머신 같아.”

“와. 머신 같아.”

여기저기서 머신 같다며 추켜세웠다. 내 비록 몸무게가 좀 많이 나가고 힘이 좋지만 머신이라니. 머신이라니. 어쩌다 여신이 머신이 된 것인가. 가만 있어보자. 그러니까 여신 같다던 반과 이 반은 화장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내게 머신 같다고 말해준 친구는 화장실 출입구를 통해 내가 여신으로 불리던 교실에 왔었다. 담임선생님 심부름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 친구가 그 때 분명 여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여기로 와서 머신이 되었다. 머신이라니. 머신 같은 선생님이라니. 뒤에 있던 담임선생님은 계속 키득거렸다. 여신에서 머신이 되어버린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교육하기로 했다.

“으흐흐흐. 선생님은 머신이다. 흐흐흐. 그렇다면 머신은 어떤 알파벳으로 시작하게?”

그렇게 머신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튼튼한 수업을 했다. 덕분에 알차게 수업을 마친 나는 여신처럼 사뿐하게 걸어서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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