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4명의 존경하는 여성 롤모델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이라면 4명의 여성분들의 공통점을 서둘러 파악할 겁니다. 이 들의 [공통점]은 1. 여성이다. 2. 주체적 철학이 있다 3. 자신의 명언. 글. 어록이 있다. 3. 불우한 성장과정을 딛고 일어섰다. 4. 당당하고 내면이 아름답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 (1883~1971)
나는 샤넬의 네임 브랜드를 사랑하고 동경한다. 그녀처럼 주체적인 철학을 담은 비즈니스 워먼이나 그 누구에게도 실력으로 뒤지지 않는 내면의 당당함 그리고 우아함을 지닌 여성이 되고 싶다. '코코샤넬이 나의 롤모델이다'라고 하면 샤넬의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 때문에 명품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여자라고 오해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그녀의 네임 브랜드가 미치는 에너지와 럭셔리한 이미지 덕에 나도 덩달아 고급져지는 기분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샤넬의 본질을 글을 통해 알리고 싶다. 이미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투영되어 잘 알려져 있다. 1883년 프랑스 남서부의 소뮈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에 맡기게 된 샤넬은 보육원에서 배운 바느질 기술로 패션업을 시작하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보육원을 나와 변두리 술집에서 노래를 하며 만난 재력가의 후원으로 모자가게와 스포츠웨어 상점을 열게 되고 이때부터 보잘것없는 소재로 취급되던 저지(jersey)라는 가볍고 신축성 있는 두꺼운 메리야스 직물을 이용하여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여성의 복식 스타일을 편리하면서 세련된 의상으로 제작하는 신선한 시대적 변화를 시도한다.
여성의 몸을 압박하고 허리를 조여 그 위에 여러 개의 옷을 겹겹이 입는 코르셋 문화가 있었던 프랑스는 여성에게 가혹하던 시대였다. 그녀의 도발적인 시도는 코르셋에서 해방된 여성들에게 자유의 몸을 주었고, 패션업의 큰 시대적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샤넬은 20세기 패션의 선구자이자 역사에 남을 위대한 진보적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샤넬은 불우한 성장과정을 발판 삼아 철학을 담은 패션업을 이끌며 살아생전 잊을 수 없는 어록을 남겼다.
여자는 두 가지 즉 '세련됨'과
'굉장한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은 내면이
외면만큼 아름다울 때이다.
나는 내 삶을 창조했다.
이전의 내 삶이 싫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란 당신이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때부터 시작된다.
샤넬의 패션은 여성을 아름답게 돋보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품격 있는 내면을 갖춘 진정한 럭셔리한 작업이고, '높은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 비로소 당당한 여성이다'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샤넬은 자신을 향한 확신이 있는 여성이었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향한 확신을 가진 당당한 여성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여성이 나이 들어감에 자신감을 잃을 때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질 것을 권고한 샤넬의 어록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그녀의 우아함과 당당함을 지닌 품격 있는 여성상은 나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오드리 헵번 (1929~1993)
오드리 헵번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다. 그녀의 미소는 태양보다 빛난다. 인간의 마지막 소명을 눈부시게 이루어낸 오드리 헵번은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다운 여성이다. 벨기에 출신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코코 샤넬의 옷을 가장 잘 소화한 유일한 여배우이며 시대를 초월한 '햅번룩을 대유행시켰다. 흠잡을 부분 없이 완벽한 외모만큼 그녀의 아름다운 선행으로 존재 자체가 보석인 인물로 칭송된다.
19458년 데뷔이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작품을 내놓고 1989년 불현듯 공식 은퇴로 명성을 버린 후 선택한 길은 기아와 난민들을 위한 유니세프 구호활동(救護活動)이었다. 인권운동과 해외봉사활동 그리고 아프리카 제3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동 인권보호 위해 헌신하는 인류애를 실천했다. 1992년 대장암으로 투병 중에도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헵번의 마지막 모습은 비록 병쇠와 주름으로 가득할지라도 신아래 인간으로서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모습을 지닌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임종을 앞두고 아들에게 전하는 유언장에는 그녀의 위대한 인류애적 사랑과 철학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드리 헵번은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두 번째 롤모델이다.
네가 나이가 들면 네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네 스스로를 돕는 손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돕는 손이다.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돼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며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앤젤리나 졸리 (1975~ 현존 )
불우한 가정사의 아픔을 딛고 성공한 앤젤리나 졸리는 입양가족의 형태를 올바르게 인식시켰다. 고차원적 인류애를 실천하려는 인권. 사회운동가인 앤젤리나 졸리는 국제적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UN 국제 시민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고 유엔 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했다. 편협적인 혈육관계를 넘어 입양을 통한 새로운 가족단위의 개념을 인식시켜 준 그녀는 세상의 아이들을 한 명씩 가슴으로 품는다.
아들 3, 딸 3의 대가족을 이룬 졸리 피트 가족은 내가 꿈꾸던 완전한 가족의 형태였다. 사랑하는 남편과 혈을 나눈 아이들 그리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큰아들 메독스의 이름을 딴 '매덕스 졸리 피트 재단'을 통해 캄보디아, 케냐, 아프가니스탄 드의 15개 이상의 어린이 학교를 세웠으며, 딸의 자하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 '자라하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여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를 치료하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국제적 봉사활동의 업적과, 혈육관계를 넘어 입양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단위의 형성, 그리고 아름다운 어머니상을 대표하는 모습은 나의 가치관과 상당히 닮아있다. 나의 3번째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찾아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결점이 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봄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살찌우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아가야,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너에겐 도움이 필요한 거야!
오애란 대표님
나의 롤모델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 최초 현존 인물인 오애란 대표님은 '생각 연필 브랜드' 창시자이며 23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 연필 초. 중 글쓰기 프로그램>을 개발하신 분이시다. 저서로는 에세이 <책을 읽고, 나는 살았다>와 교육도서 <책과 우리 아이 절친 맺기>가 있다. 오애란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인스타그램 지인 '백 도서관'님 덕분이었다.
독서지도사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오애란 작가님의 <독서지도사 강사과정 수업설명회>에 참여하였고, 생각 연필 프로그램에 깊은 신뢰를 갖게 되어 현재까지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오애란 대표님과 평생을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상업적인 타 교육업체와 비교하여 차원이 다른 교육현장과 프로그램 그리고 오애란 대표님의 교육철학이 담긴 훌륭한 말씀 때문이었다.
경제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 일을 하려면 우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생각 연필 브랜드의 홍보도 중요하지만 무분별한 프랜차이즈 사업 확장은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생각 연필 글쓰기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강사 양성과정을 통해 알리는 것이 우선이며, 강사들로부터 어떠한 커미션도 받고 싶지 않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 다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 비교하기! - 도서 발췌문
꿈 100번 쓰기와 매일 감사일기 쓰기로 자신의 비전을 다짐한다 - 3p바인더 참고문
<생각연필>로 하나 된 교사분들에게 늘 격려와 용기를 아끼지 않으시고, 인격을 존중해 주시는 오애란 대표님은 '내강외유' 즉 내면이 단단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신 여성으로서 <생각 연필> 교육사업의 확장뿐 아니라 강사 양성에도 온 힘을 다하시고 계신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의 가능성을 의심하며 소중한 시간을 더욱 소비했을 것이다. 23년 교육철학의 진정성을 담은 엄청난 내공의 힘에 존경심을 표하며, 나의 인격을 존중해 주신 오애란 대표님께 무궁한 감사함을 전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