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부장적인 우리 집의 분위기였어요.
우리 집은 유난히 가부장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아빠의 말이 곧 우리 집의 법이었으니까요.
아빠는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이 오래된 법칙은 다른 집에서도 존재하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엄마도 직장인으로 생활하면서도 집안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어요.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새벽같이 출근하던 아빠에게 언제나 따뜻한 아침밥을 챙겨주고, 우리를 깨워 아침을 챙겨주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요. 퇴근을 한 뒤에도 여전히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모습도 함께 말이에요.
회사를 다녀보니 엄마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대부분이라 간단히 때우는 식의 식사를 할 때가 많은데, 엄마는 항상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까지 만드셨어요. 그럴 때면 고맙다, 고생했다 말 한마디 없이 음식 양이 많다며 잔소리만 늘어놓던 아빠가 야속했어요.
엄마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분위기가 얼어붙기 시작하던 우리 집의 분위기도요. 일이 많아 조금 늦을 수도 있고 회식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날이면 언제나 집안엔 큰소리가 오고 갔어요. 저녁을 챙겨드리고 밥을 먹고 치우는 동안 눈치를 보지 않는 순간들이 없었어요. 오늘도 화를 내시겠구나. 오늘은 짧게 끝나면 좋겠는데. 엄마는 언제 오시려나. 너무 늦으시는 건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면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어요.
아빠는 엄마에게 왜 화가 났던 거예요?
혹시 걱정이 되셨던 걸까요? 아니면 집에서 반겨주는 이가 없어 서운하셨던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고생시킨다는 미안한 마음이 화로 분출돼서 나온 걸까요?
아마도 그 화는 사실 아빠의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과 열등감이었겠죠.
가정에서 아빠의 입지가 좁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변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합쳐져서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었어요.
내가 우스워 보일 거라는 착각, 그로 인해 비롯된 삐딱한 시선들이 아빠 자신을 괴롭혔을 것 같아요. 아빠의 행동에서 말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지만 가족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엔 화를 내는 아빠의 모습이 더 나쁘게만 보여서 거리를 뒀을 뿐이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아빠의 모습이 나에게도 나타날 때가 있어요. 주변사람들이 나보다 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좋은 성과를 낼 때, 반면 나는 실수투성이인 모습만 보일 때는 질투가 나면서도 나는 왜 이모양일까 하는 자책을 했어요. 그러다 보면 괜히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 주변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거든요. 그럴 때면 아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래서 그러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때 조금만 감정에 솔직했더라면, 조금만 대화를 더 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