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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개껍데기 SeaShelly Mar 20. 2022

어찌 망가진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번아웃, 불안, 폭식증, 그리고 극복 이야기 #1

2020년 12월 31일에 바디프로필을 찍고 1년이 넘은 시간이 흘렀다.

바디프로필은 한참 전에 끝났는데, 준비기간은  달도  됐는데,

후폭풍은 여덟 달 이상 지속되었다.


바디프로필을 찍은 것을 후회하는가?

'이후 힘든 만큼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영원할 뻔했던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치면 마냥 괜히 했다고  수는 없다. 그리고 , 언젠가 자랑할만한 결과물을 남겼다고 치 인생에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 치고 나에게 돌아온 상처는 너무 컸지만 말이다.


이제부터는 극복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호르몬의 문제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동안 생리가 멈췄다. 여성 호르몬 생성을 위해 필요한 지방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로, 짧은 시간 안에 다이어트를 과도하게 하는 여성들에게 흔히 발생한다고 한다. 다이어트에 의한 생리불순 이야기를 너무 익숙하게 들은 나머지, 내 생리불순도 딱히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이어트가 끝나고 지방을 다시 섭취하면 생리가 돌아오겠지. 생리 안 하니까 걱정도 덜하고 편하네.'


지방을 다시 섭취하고 한 달이 지나도 생리가 돌아오지 않자, 나는 산부인과를 향했다. 혈액검사로 본 여성호르몬의 불균형은 심각했고, 초음파 상으로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보였다. 당분간 생리를 안 할 것으로 보인다는 말과 함께 경구 피임약을 처방받았고, 굉장한 생리통과 함께 다시 다섯 달만에 생리를 하게 되었다.


의미와 목표 상실의 문제


바디프로필과 연말의 연휴가 끝나고 오랜만에 대학원 연구실로 돌아왔다. 리뷰하기로 한 논문을 읽는데,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바디프로필이 나에게 안겨준 결과물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과 주변의 일시적인 찬사뿐이었다. 다이어트는 당연히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다이어트가 끝나자, 나의 불편한 현실을 은폐해주던 커다란 목표(= 바디프로필 촬영)가 사라졌고, 내가 회피하던 문제들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이 척박한 대학원 랩실에 앉아있고, 도저히 흥미가 붙지 않는 경영과학 이론을 해석하고 있으며, 현실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논문을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가치관으로는 이런 생활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인 감각에 의해, 갑자기 의대 일반편입 전형을 알아봤다. 즉흥적으로 원서를 작성하고, 생화학 공부를 2주 동안 미미하게나마 시도해본 뒤,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김해로 날아가 입학시험을 봤다. 물론 보기 좋게 시험을 망치고 가차 없이 탈락했다.


바디프로필과 다이어트로 얻으려 했던 만족감은 나의 근본적인 불안을 덮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불안감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나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요요와 집착의 문제


이 일련의 과정 동안, 몸무게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촬영 때 51kg였던 몸무게가 어느새 한 달만에 56kg가 되어 있었고, 납작했던 배는 볼록하게 부어 있었다.


요요는 나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다이어트는 감량보다 유지가 훨씬 어려웠다. 칼로리를 세 달 째 갈취당하고 몇 년째 제한당한 내 몸은, 꾸준히 보상심리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동안 많이 못 먹었으니까 먹고 싶은 대로 먹자', '요요는 당연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 첫 두 달 동안은 대체로 이런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돌아올 기미가 없었던 생리와, 지나치게 야위어버린 볼품없는 엉덩이는 나의 보상 식사의 주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러다가 너무 빠르게 늘어버린 몸무게를 간혹 인지할 때거나, 많이 먹은 뒤 거울 속 남산만 해진 배와 부은 얼굴을 확인할 때에는, 반대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곤 했다. 어떻게 뺀 살인데, 유지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계속 음식을 갈망했고, 구매했고, 섭취했다. 그리고 불안에 휩싸인 보상적 음식 섭취는 회개를 위한 운동 강박을 잉태했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최종적으로 섭취하던 칼로리는 일일 800kcal였다. 하루 800kcal라는 것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가 모두 300kcal도 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매일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도 해야 했다. 반면, 성인 여성의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는 2,000kcal라고 알려져 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식단을 하다가 '정상적인' 식사로 돌아오려고 하니,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이어트 식단과 샐러드에 익숙해진 나는 일반식이 무엇인지 몰랐고(참고 : 인스타그램의 다이어트 세계), 습관대로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하기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대사량은 너무나도 낮아져 있어 하루에 1,200kcal를 먹으며 운동을 해도 살이 계속 늘어갔다. 그렇다고 평생 1,000kcal를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도 저도 못하고 먹는 것과 운동하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나는 내 망가진 몸이 두렵고 싫었다.


불안과 공황의 문제


2021년 1월 25일, 처음으로 공황을 겪었다.


다음  랩미팅에서 발표할 논문 리뷰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밤에 연구실에 앉아서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내용 파악은 적당히 완료되어 PPT 완성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졌는지. 일이 손에  잡히고 가슴과 속이 답답해서 계속해서 해결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달달한 것도 먹어보고, 딴짓을 하면서 리프레쉬도 해보고, 그럼에도 PPT 돌아오면 머리가 아프고 눈앞이 흐려졌다. 미룰 수도 없었고 다음날 랩미팅 전에 끝내야 한다는 부담에,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졸지에 배도 아파왔다. 손에 땀이 났고, 집중력이 흐려져 무엇도   없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되지도 않는 일을 붙잡으며 이렇게 스트레스받기를 2시간, 새벽이 되자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났다. 증상이 고도되어 발작하듯이 우는데 숨이 막혀서 죽을  같은 기분이었고, 하얀 연구실 벽이 어지럽고 무섭게 느껴졌다. 새벽 1, 혼자 남겨진 적막한 연구실에서 두려움에 심장을 부여잡고 웅크려 앉아, 소리 지르듯이 엉엉엉 울었다.


처음에는 이 증상을 번아웃이라고 정의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준을 하고 바로 진학한 대학원에서 12학점의 수업을 들으며 강도 높은 다이어트를 했으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날 새벽 나는 PPT를 완성하지 못했고, 다음 날 교수님께 미리 찾아가 양해를 구했다. 전 날의 나의 증상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고, 교수님은 2월까지 휴식의 시간을 허락해주셨다. 당분간은 랩미팅과 연구 과제의 일부에 참여하되, 랩미팅에서 연구 발표를 할 의무를 덜어주신 것이었다.


다음 날, 랩실원들과 연구 및 스터디 분장 관련해서 논의하다 한 번 더 공황 증세를 겪었다. 나의 발표 휴식과 스터디 휴식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어나는 업무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저히 책임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결국 내 증세를 랩실원들 모두와 공유하게 되었고, 나는 업무의 부담에 대한 면제권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망가진 나를 돌려놓기 위한 방황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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