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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taetae Jul 09. 2023

제주 올레_5

추자도가 추자도였으면 한다

09시 30분, 퀸스타 2호를 타고 제주항에서 출발했다. 선장은 오늘 파고가 높으니 주의하라 말했다. 정말이었다. 세찬 물결과 쾌속선이 부딪혀 나는 날카로운 소리는 마치 대포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숨죽여 바다를 보았다. 평온한 바다를. 그러나 무엇보다 냉혹한 바다를.



1시간여를 달려 추자도에 도착했다. 추자도. 추자는 사람이 사는 4개 섬과 사람이 살지 않은 3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정말 말로만 들어본 섬이기도 하다. 완도와 제주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섬, 추자도. 만약 올레길 코스가 아니었더라면 평생토록 추자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추자도는 크게 상추자와 하추자로 구분된다. 추자대교가 둘을 잇는다. 둘의 공통점을 꼽노라면, '산'이다. 추자에는 산이 많다.  그만큼 식물과 동물도 많다. 제주에서 쾌속선으로 한 시간여 떨어져 있기에, 식물과 동물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정말 많았다.



  추자 올레는 익히 듣던 대로 악명 높았다. 등산, 하산을 반복하는 코스였다. 이 산을 넘으면 끝이겠지, 를 반복했다. 끝이 아니었다. 다시 새로운 산이 나왔다. 너머마다 사람이 살았다. 그들에겐 이곳이 집이겠지.



  점심 먹을 곳을 찾을 때였다. 유독 '밥상'이 눈에 띄었다. 제주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리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었다. 귀에 익숙한 전라도 방언이 들려왔다. 구수한 참기름내가 나는 할머니집을 가면 들을 수 있는.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

  나는 궁금증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전라도 말을 하고 전라도 음식을 먹는지. 여기는 제주시(추자면)가 아닌가. 전라남도 추자군이 아니라. 카페 사장에게 물었다. 카페 사장은 역사를 들어 답했다. 옛날부터 이곳은 전라도적인 제주 지역이었다고.



  전라도적 제주. 나는 이 말에 의문이 들었다. 제주적 전라도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곳은 제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현무암도 없다. 거리도 오히려 전라남도 완도와 가깝다. 생활양식 또한 전라도에 가깝다. 그런데 왜 제주란 말인가!


  나는 이 궁금증을 핑계로 지리학을 전공한 나의 스승에게 전화했다. 스승은 내게 '세상엔 형식적인 구분이 많다'라는 답을 했다. 제주는 원래 사실상 전라남도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행정구역상 제주도로 독립하게 되었고 추자는 그 사이에 낀 것이다.


  왠지 모르게 추자에 마음이 간다. 문화는 전라도지만 행정은 제주도인 추자도. 페르소나. 사회를 살다 보면 가면을 요구당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게 아닌데. 내가 그게 아닌데. 사회는 편의적 기준점을 잡아 나를 분류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내 개성과 특성은 종종 무시되기 마련이다. 페르소나를 통해 훨씬 더 간편하고 편리한 세상을 살 수 있으니깐.


  그러나 페르소나를 장착한 배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원래 자신의 얼굴이다. 자신의 얼굴을 까먹는다면 평생 그 가면 속에 살아야 한다. 남들이 가면을 말해도 나는 얼굴을 떠올려야 한다. 추자도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의 얼굴을 잊지 않았으면. 계속 추자였으면. 이 신비로운 혼합을 유지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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