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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교 Nov 17. 2020

이 또한 변하리라

그러나 변하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현실의 모든 것은 변한다. 어제 심은 씨앗이 오늘 싹이 튼다. 잠시 한눈팔면 그 싹은 잎이 되고, 줄기가 단단해지고, 나무가 된다. 그리고 그 나무는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그리고 고목이 된다.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가 노인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일은 역시나 시간문제다. 즉, 감각적, 물리적, 육체적, 시간적, 현실적 세계라는 것은 가변의 세계이며, 끊임없이 생과 멸을 되풀이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일까?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망각하고, 현실에서 영원한 것을 꿈꾼다.


현실에서 왜 영원한 것이 없냐고 묻는다면, 영원하다는 것은 이성, 정신, 관념, 사유의 세계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언어의 세계인 것이다. 냉혹하게 이야기하면 '말' 뿐이다. 우리는 아름답고도 이상적인 말을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그렇기에 언어의 완벽한 현실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상의 성취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성취했다고 보이는가? 그것은 그 순간부터 참을 수 없는 굴레이자 속박이요 쇠사슬로 인간을 예속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말이 말로 남지 않으면, 쇠사슬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이것은 비단 눈에 보이고, 감각할 수 있는 것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즉 '해 아래' 존재하고,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하물며 인간관계까지도 변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말. 오늘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고 친밀함을 느낀 어떤 상대가 내일은 이름 모를 남이 되는 일. 어제은 죽도록 미웠던 사람과 대화해보니 뜻밖의 교감을 하고 정을 붙이게 되는 일. 이는 일상에서 쉽게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다.


해 아래 모든 것은 변하기에,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중간 지대(남남)로 수렴된다는 것. 나를 미워하던 누군가도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무관심해지고 자기 할 일을 해나간다. 반대로 나를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하던 누군가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자기 삶을 사느라 그 관심이 식어버린다.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정직하고 선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변해버린 것에 대해. 관계가 틀어버린 것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눈치 보지 말고, 자기답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휩쓸려 산다는 말은 변덕스러운 세상의 흐름을 추종하고 따라잡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삶을 낭비하는 미련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나라는 존재뿐이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유행을 따라가기에는 불변하는 속성 탓에 결국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돌아가지 않으면, 불만족스러워진다. 불변하는 나. 말로 할 수 없는 그 힘. 인격. 정신. 시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생명력. 신에게서 부여받은 신성. 영혼. 그 무어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하는 와중에 세계를 마주한 나라는 '주체'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고정적인 주체로서 가변적 세계를 대해 온 것이다.


쉽게 말해보자. 흔히 인생은 연극에 비유된다. 왜 그럴까? 자, 떠올려보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를. 연극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릴 때는 어린이에게 맞는 언어, 옷, 생활양식 등을 지정받고 성장하는 배역이었고, 성인이 된 지금에는 또 그에 맞는 말과 옷, 직업, 관계 등을 부여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잘 생각해보면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것이 없다. 다른 삶을 살고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껍데기와 내 머릿속을 채우는 내용이 조금씩 달라질 뿐,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있다. 어릴 적이라고 해서 한없이 행복하지도 않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한없이 우울하지도 않다. 각 시절에는 나름의 기쁨과 고통이 있다. 고뇌의 내용과 형식이 변했을 뿐,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고민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즉, 나는 그대로인데 몸이 성장하고, 환경이 변하니 그에 따라 나도 그 시기에 걸맞은 것들을 나에게 가져오고 다룰 뿐. 연극을 수행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그대로이다.


이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연극을 해오면서 수많은 배역과 대본을 받았다. 그런데, 많은 작품을 해오면서 유독 나에게 꼭 맞는 듯한 내용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바로 그것이 나답다는 것이다. 나의 기질과 천성에 걸맞은 역할.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고정된 것은 없어! 너라는 사람의 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면 원하는 방향대로 스스로를 주조할 수 있다고". 미안하지만, 그 원하는 방향이라는 것은 누가 규정하는가? 사회가 규정하면 나는 인력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그건 싫다. 내가 규정하고 싶다. 그런데 세상에 맨 몸으로 내던져진 내가 나를 규정하는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살아가면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는 식으로 짜깁기하라는 것인가? 그럼 내가 나를 주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마저도 사회가 나를 주조하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어떤 일은 '물 흐르는 듯' 나에게 꼭 맞는 것들이 있음을. 기질과 천성이 나에게 주어져있고, 나에게 꼭 맞는 어떤 삶의 형식과 가치가 있음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은 삶이라는 연극의 무대요 배경이다.
"그러나 지나가지 않으리라" 이것은 주인공에게 부여된 고유한 과업이요 끝내 찾아내야 할 보물상자이다.  


나라는 주체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나라는 존재밖에 있는 환경, 그리고 나의 피부, 얼굴, 건강을 비롯해 머릿속에서 굴리는 고민거리가 변한다. 인생이란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많은 번뇌와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등바등할 것도 없고. 영원한 인간관계란 없기에 눈치 볼 것도 없다. (건강한 대인관계라는 차원에서) 할 말 못 할 말도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고유한 과업을 발견하고, 그것에 숨겨진 보물을 캐내기 위해 도도하게 모험을 나서면 될 일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처세, 예의범절, 배려심, 정의로움 등은 그 보물을 찾아 나서는데 방해가 되는 이들을 지혜롭게 밀어내고, 적절한 도움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기에 조연들의 방해와 조력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안에 소멸한다.

(첨언하자면, 이것은 이기주의나 야비함을 논하거나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나는 나의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나의 삶에서 주인공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실전에 적용을 해보자. '사랑'이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가 좋겠다. 진리 명제: 모든 것은 변한다. 내 앞에 있는 연인의 겉모습, 말투, 고민거리, 직업, 경제력 등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갖는 기대나 애정도도 차갑거나 뜨겁게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주체적 존재로서의 상대의 인격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그에게 고유한 과업으로 남겨져있고, 그가 찾아야 할 보물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연인관계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불변하는 상대의 인격일 것이다. 그의 존재에 가장 걸맞은 것이 무엇 일지를 함께 찾아 나서는 일. 그의 존재에 가장 어울리는 인생의 옷을 입혀주는 일. 그의 존재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당신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불변하는 인격은 가변하는 현실에 태어난 탓에 협력할 수 있는 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짝, 곧 나와 너에게 주어진 과업과 보물상자는 각각 반쪽인 탓에, 서로의 것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것이 연인-사랑의 본질이라고 본다. 사랑은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에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결론은 변할 것에 집착하지 말고,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현실의 모든 것은 변한다. 자연도, 문명도, 관습도, 지식도, 지혜도, 인간관계도, 우정도, 사랑도. 그러나 내가 인격적 주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이 인격적 주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나를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과 어울리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당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혜를 벼르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답게 살 수 없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용기를 갖길. 그리고 그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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