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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교 Nov 24. 2020

리더의 자리, 헛되고 헛되다

팀원을 부하가 아닌 인격으로 파악하라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은 일상을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특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특별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을 잃고 일상으로 편입되어 익숙해져버린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렇다. 시간은 모든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경험이 없었는가? 간절히 바라던 직장에 들어갔을 때, 죽어라 노력해서 높은 지위를 얻었을 때. 그 특별함과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던 경험 말이다. 성취가 데려올 친구가 영원한 만족과 기쁨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고통과 권태가 성공의 단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나 쉬지 않고 달렸는가'하며 허탈해한다. 이 세상 부귀영화라고 다르겠는가?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는 답한다. 비슷하다고. 


그렇다면 누군가 어떤 조직에서 일하는 주된 목적을 성공과 자리에 두고 있다면, 그가 느낄 최후의 허망함은 예견된 미래 인지 모르겠다. 


절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승진을 목표로 일을 한다. 왜냐하면, 일이라는 것도 처음에나 흥미롭고 자아실현에 기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 실상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나의 노동력을 파는 행위라는 것을 금세 깨달아버리기 때문이다. 애초에 직장에서 하는 일이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조직이 정해둔 목표에 맞게 월급으로 계약한 사람에게 일감을 던지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일이 즐거울 리 없다. 끊임없는 압박을 받다 보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보다는, 뒤탈이 없이 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생계를 위해 돈은 벌어야겠고, 일에서 보람은 못 느끼니 끝내 더 많은 봉급과 부하를 통솔할 수 있는 권력을 주는 감투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대가는 자기 착취를 전제로 하기에 혹독하며, 감투의 실체는 허망하다. 


우리는 왜 조직에서 일을 하는가? 왜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리더가 되면 도대체 뭐가 좋길래? 솔로몬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임금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앞서 다스리던 왕이 이미하던 일 뿐이다."
(전도서 2장 14절)

솔로몬의 말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놓고 보았을 때 가장 강대한 국가를 이룩한 자요, 최고의 지혜자며, 최고의 책략가며, 최고의 부와 명예를 지닌 자였다. 그러나 그는 왕위를 놓고 허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리더의 자리, 왕위를 선망하는 것과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직장과 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요즘 많은 드라마가 회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드라마에서처럼 가슴 벅찬 노래가 나오며, 주인공이 역경을 해쳐나가며 쑥쑥 성장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픽션이다. 학생이 학교를 가 듯, 직장인은 직장을 간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성장 드라마가 학생의 삶과 연결되지 않듯, 직장인이 나오는 드라마도 비슷하다. 현실은 그냥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듯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퇴근하는 것이다. 판타지는 말 그대로 판타지이다. 


직장인도 사람이다. 현실은 뻔하다. 그들은 퇴근 후에 집에 머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혹은 홀로 저녁을 맞는다. 길거리에서 분식을 먹고, 야식을 주문하며, 맥주를 마신다.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며, 책을 읽고 싶어 한다. 부모님이나 연인과 싸우기도 한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설레기도 하고,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일상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저 그렇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원해서 뛰어든 직업 세계도 막상 해보면 일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취미는 취미로 남을 때가 즐거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일이 되어버리면 내가 너무 즐겁게 하던 일도 그 빛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가끔 먹는 산해진미가 더 맛있는 법이다. 


그래서 당신이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당신의 팀원과 동료를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즉 인격으로 대했으면 싶다는 것이다. 즉, 상사와 부하라는 그 위치 의식을 지워버리고 직원들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상사님 제 인생에 관심 좀 꺼주세요'라는 말은 상사가 경직된 권위를 갖고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흥밋거리로 부하의 일상에 기웃거리니 나오는 말일 것이다. 진심으로 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갖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조직은 성과를 내야 하며, 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강한 푸시가 종종 요구된다. 업무량이 많다고 해서 사람을 더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일 때가 많다. 일에 치이다 보면 누군가 말 거는 것도 짜증 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상사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감사할 수 있다. 아무리 일이 바쁠 때라도 직장에서 어떤 일로 갈등하거나 큰 불만을 느끼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 생각만 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직원을 표정과 분위기를 빠르게 읽어내서 그것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일적으로도 더 능률적일 수 있다.)


업무가 저 직원에게만 과도하게 배정된 게 아닐까? 오늘따라 표정이 안 좋은데 어제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A직원이 B 직원에게 자꾸 일을 떠넘기는 것 같은데 B 직원에게 좀 물어볼까? 회식 자리에서 말수가 없던데, 원하는 회식 문화나 분위기가 있는 걸까? 회의 때 이후로 기운이 빠져 보이네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전날에 아이가 아팠다던데 회사에서 일하는 게 손에 잡히기는 할까? 휴가 때 여행 다녀왔다는데 표정이 좋아 보이네, 유독 어떤 게 재미있었을까? 지금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A 직원과 B 직원이 회의 이후로 말을 안 하네, 무슨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팀원들이 자신의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리더의 역할이다. 직장에서 직원이 스트레스를 느낄 만한 것들을 예의 주시하고 제거해주는 일. 각 직원들의 업무 스타일과 성격을 조금이라도 고려해서 업무를 지시하는 일. 대화를 하고 배려하고 공감할 때라야 진정한 미덕으로서의 권위가 생겨날 수 있음을 알고 진심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일. 일을 떠넘기고 명령만 일삼으면 그것을 받아내는 부하직원은 살맛이 안 날 것이라는 마음에 공감하며 윗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결하는 것. 


물론, 위 내용은 흔히 책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리더라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경청하고, 책임감을 갖고, 배려하고 등등.


내가 위의 사안을 요청하는 근거는 조직의 이익이나 성공 따위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삶이란 특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 순간 왔다가는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게 목숨을 걸만큼 대단한 일도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 업무와 승진에 전력투구하던 사람도 퇴사하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나 허망함을 토로한다. 정년퇴직 후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도 참 많다. 그들은 회사를 일상의 시선에서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무지개를 쫓았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은 일상이 되고 익숙해져서, 나름의 기쁨과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너무 목숨 걸지 말자. 내가 맡은 일과 감투에 너무 심취하지는 말자. 선망과 동경의 빛을 잃으면 다 평범하고 그저 그런 것들이 될 뿐이다. 


진짜 소중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관계에 얽매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사람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라. 나의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미쳐서 했지만, 뒤를 돌아보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는 그 일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남아있다. 일이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울고 웃었던 사람이 떠오르고, 마음이 맞고 너무도 즐겁게 교류했던 사람이 그리워진다. 일보다는 사람이 그리워진다.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일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 좋은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능력은 기본으로 있어야 했기에, 그들은 나의 능력을 기꺼이 인정해주고 박수를 보냈기에 신이 났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고, 부하를 두는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면 주어진 일은 일로 고정되어 있겠지만, 나라면 가능한 사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정비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말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하나의 일상으로서 느낄 수 있도록.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최소한 그 공간이 지옥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일은 힘들고 지겨울지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다면 어려운 일은 모험이 될 수 있으며, 유쾌한 정글 탐험가가 될 수 있다. 해야 할 업무가 고정되어 있다면, 유일하게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조직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힘이 리더에게 있다면, 가능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사려 깊은 태도를 요청하고 싶다. 


진정한 리더란 권력을 부여받고 부하들을 통솔하는 자가 아니라, 그는 의도치 않았으나 그의 인품과 실력에 매료되어 그를 추종하는 자가 너무도 많아서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리더는 사람들에 의해 올려지는 것이지, 왕좌에 스스로 앉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팔로워를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라면, 인간적 매력과 미덕을 갖추는 일은 리더의 근본 조건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가능한 최대로 인간답게 구성해내는 일. 그것이 리더십이다. 맡겨진 일을 잘 끝마치는 것은 단연 기본이겠지만 말이다.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만약 상인이 그에게 딸려 있는 노동자를 자신의 자본을 가공하기 위해 자기 손안에 있는 단순한 수단으로 보고 법률에 대해 한 번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상인은 '동물적 상태'에 따라 행동한다.

법의 강요 때문에 노동자를 자신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의 본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보상을 요구하는 자발적 인간으로 보는 상인, 그러나 그것을 단지 법 때문에 행하는 상인은 '사회적 상태'에 있는 인간으로서 행한다. 

그러나 그가 법적 규정을 개의치 않고 법의 강요 없이 그들을 그렇게 본다면, 따라서 인격적-도덕적인 관계로 그들에게 나타난다면, 상인은 자신의 행위로 '도덕적 상태'에 있게 된다.


상인과 그에게 딸려있는 노동자. 이 둘의 관계는 업무로 연결되어 있다.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계약에 의한 것이니 주어진 일은 주어진 일로서 남아있는 것이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책임감 있게 성실히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페스탈로치는 말한다. 그 둘 사이의 관계, 리더와 직원의 관계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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