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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Oct 31. 2022

주간 씀 모음 19

먼 곳을 향해


밤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밤바다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밤에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낮에 보았던 바다가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버린 것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밤바다는 아니었다.

  언젠가, 술을 마시다가 그런 말이 나왔다. 밤바다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다음날, 늦은 오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밤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저녁 무렵 동안 차를 달려 밤바다에 도착하고, 새벽녘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세상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작은 모임에 속한 동료들과 미지의 어둠 속을 달려가는 느낌은. 이윽고 도달한 새까만 칠흑 앞에서 희미한 파도 소리와 약간이 짠내음을 맡는 경험은. 피로에 지친 몸과 설레는 추억을 동시에 안고 새벽을 지새우는 감정은.

  아마도 나는 그 밤바다에 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초콜릿


  “자.”

  불쑥 내민 손 위에 초콜릿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단 거 안 좋아해.”

  거절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지만, ‘내가 준 걸 무시하려는 거야?’ 하는 듯한 네 눈빛에 못 이겨 결국 입에 넣었다. 달콤 씁쓸한 맛이 금세 입 안에 퍼졌다.

  “피곤할 때는 역시 당분 보충이야. 그치?”

  어째 뿌듯해 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목을 타고 넘어간 달콤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녹아내린 초콜릿이 마음을 감싸듯 어루만졌다.

  나쁘진 않네.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능력


  “가끔은 이 모든 능력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때는 내가 그저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존재인 것 같아. 모두들 날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잘한다, 네 덕분이다, 하면서 날 필요한 존재라고 선뜻 인정해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회에 기여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지. 멋지고 훌륭한 일이야. 그렇게 숭고한 일 앞에서, 세상이 내게 부여한 이 뛰어난 능력 앞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어. 그래, 맞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거야.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욕구와 하찮은 욕망을 이 빛나야만 할 인생 속 어느 구석에 놓아야 할지를 말이야.”

  그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끝이야, 하는 의사표현일까. 더 이상 생기가 담겨 있지 않는 그녀의 눈은 세상에 대한 작별인사를 모두 마친 것 같았다. 



밤공기


  어째선지 단어 앞에 ‘밤’을 붙이면 더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고, 하늘은 생각했다. 밤하늘, 밤공기, 밤산책. 그저 한 글자 더 붙였을 뿐인데 평소와는 다른 특별함이 단어 자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좋다, 밤공기.”

  그래서일까.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내비치는 것을 늘 어려워했던 하늘이었지만, 지금은 무슨 말이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러내 줘서 고마워. 그래, 그렇게 말하자. 밤의 마력에 한껏 몸을 맡기며 하늘은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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