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질다글 Oct 06. 2022

내가 학교와 회사를 뛰쳐나온 이유(3)

갓 태어난 사회 햇병아리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처음 발 딛는 날이었다.


한 시간 반을 꼬박 달려 도착한 성수동 에이전시.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넓은 사무실에 홀로 나를 반기는 부장님이 계셨다.

코로나가 심해서 번갈아서 재택근무를 했고

그날은 직원들이 재택을 하는 날이었다.


인턴인 나는 2주내내 출근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나 혼자 출근할 수 없기에

부장님과 이사님이 출근하셨다.






업무는 어렵지 않았다.

회사 경험 자체가 처음인 나는 재밌었다.


출근하고 얼마 뒤에 사장님이 오셔서

2주간의 업무 내용과 아이맥 툴을 알려주셨다.


첫날은 회사 환경 적응과 업무 숙지에 힘썼다.






다음날은 직원들이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업무를 정신없이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직원 세 분이 차례대로

명함을 건네면서 인사하셨다.


나는 디자이너 부서였고

그분들은 영업 부서였다.


일부러 인사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이런 순간은 처음이라 어색하고 떨렸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어제는 첫날이라서 부장님과 이사님이랑

인사 차원으로 같이 점심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별 기대 없이 혼자 어디서 뭐 먹을지 고민했다.


점심시간이 되니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밥 먹으러 가고 있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나에게 인사했던 분들 중 여자분께서

같이 밥 먹자고 말을 건넸다.


챙겨주실 줄 몰라서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너무 감사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알고 보니 영업부서 세 분과 부장님, 이사님

이렇게 같이 밥 먹는 사이였다.


그 안에 내가 추가된 것이었다.






내가 짧은 기간의 인턴이어도 다들 잘 대해주셨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기술을 많이 배웠다.

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가볍게 출근하는 마음에서

무거운 책임감도 생겼다.


어느 날, 한 사이트의 리디자인 업무가 있었다.

수정사항을 정리해서 부장님께 전달해드렸다.


그런데 부장님께서 아무런 수정 없이

그 회사와 컨택하는 채팅방에 보내셨다.


채팅방에 나도 초대되어 있었는데

너무 깜짝 놀랐다.


지금 보면 당연한 상황이지만

당시에 내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알았다.






나는 이 에이전시가 마음에 들었다.

인턴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에 사장님과 상담했다.


정직원이 되고 싶다고

돌직구로 말했다.


사장님은 많이 당황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디자이너를 구했다는 대답을 받았다.


아쉽지만 수긍했다.

첫날에 얼마나 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 말에 원래 인턴기간이었던 2주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어서

정직원이 되고 싶다고 제멋대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 날이 왔다.


언제 또 이 공간, 이 사무실에서 일할까

생각하면서 눈에 많이 담아두었다.


평소대로 업무를 보고

어느덧 퇴근까지 1시간 남짓.


부장님께 업무 컨펌을 받고

잠시 이야기하자며 회의실로 불렀다.


이때 심장이 쿵쾅댔다.

그동안 실수해서, 업무를 못해서 뭐라 하실지

마구마구 걱정됐다.


예상과는 다르게 부장님의 일대기,

대학생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을 쭉 알려주셨다.


아직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전공이 경영학과인데 디자이너 일에

뛰어들었는지 걱정이 되신 듯했다.


그리고 어제 정직원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알고 계셨다.

그거에 대해서도 이유도 물으셨다.


부장님이랑 했던 대화에서 딱히 불쾌하지 않았다.

이야기 시작할 때도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느껴졌고

짧은 기간이지만 착한 분이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렇게 이야기한 지 1시간 정도 지나갈 때쯤

영업부서 분들이 회의실 문을 열고 퇴근 인사를 했다.

나는 서운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서운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이유가 있다.

마지막 날이니 영업부서 분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회의실에서 오랫동안 대화하니

퇴근이 늦어질까 봐 그래서인지 먼저 퇴근하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신 부장님이 놀라며

황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회의실을 나와서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봤다.

‘2층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부장님과 이사님께 마지막 퇴근인사를 했다.


문을 나오자마자 서둘러 발을 옮겼다.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의 날씨, 분위기, 느낌이

각인이 된 날


잊지 못할 날이 하나 더 생겼다.






그날 같이 밥 먹으러 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부장님이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는 1시간의 대부분을

부장님의 말로 채웠다.


그때 조곤조곤 말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서 기다리던 직원들은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계속 말을 하셔서 놀랐다고 한다.

본인들에게도 그러지 않는다고.


"부장님이 다글씨가 맘에 드셨나 봐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아주 잘하진 않아도

괜찮게, 나쁘지 않게 해냈다고

인증해준 것 같았다.


적은 기간이어도 나에게 이곳이 첫 사회였다.

온갖 매체에서 회사의 겁을 줘서 많이 긴장했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는 것도 알았다.


내 근무 마지막 날에!

빨리 말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2주만 같이 근무하기 때문에

나한테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


그 회사에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테니.


그런데 그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별로 안 친해지고 싶어 할 줄 알았다고.


'사회에서도 마음을 좀 더

터놓아도 되는구나.'

하고 하나를 알아갔다.


그렇게 번호도 주고받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니 재밌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니

나한텐 배낭여행과도 같았다.






지금도 그날이 가끔씩 생각난다.


그분들이랑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한다.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학교와 회사를 뛰쳐나온 이유(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