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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헤니 Heny Kim Jul 25. 2020

10화. 굵직한 파스타 면 만들기

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BE BOLD!’. 당신에게는 더 대담해져야 한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당신이 주변 사람들을 늘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그 말은 당신의 마음을 굵직하게 긁고 지나간다. 당신이 헤맸던 이유가 어쩌면 당신 주변의 요구들을 살피고 들어주라는 주문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리저리 헤맨 이후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는 법을 어렵게, 어렵게 배웠다. 당신에게 선명함과 확신을 더해주던 중요한 기준들, 마음을 기대온 기둥들의 기원을 끈질기게 추적해보니 옛날옛적에 주워 삼킨 주변 사람의 말 한마디라거나, 당신의 성별에 맞추어 요구된 사회적 기준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은 불확실함 속에서만 변화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불확실함과 더 가까이, 잘 지내기로 한다.

당신은 당신 안에서 반복되어온 말들을 몰아내고 이 일을 정말로 원하는지 따져 묻기 시작한다. 당신은 희생(sacrifice)에 대해서도 질문해본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덮어놓고 질식시키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당신은 끊임없이 이 세계 저 세계로 밀고 당겨지는 와중에도 당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지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당신은 자기에게 맞추어 알아서 움직여 달라는 주변의 요구에 더는 반응하지 않는다.

당신은 일, 주거, 놀이, 생활, 성취, 아이를 가지는 일, 결혼, 동거, 노후 즉 삶에 대하여 주변의 친구들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나? 나는? 나는 어떻게 하고 싶지?’ 질문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는 당신을 지켜보면서 주변이 당신에 대해 가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절감한다. 그럼에도 당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보다는 경험으로 안 사실들, 대의보다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말과 당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당신은 일요일 오후에 별로 내키지 않는 약속을 취소하고 밀가루와 계란을 꺼내 파스타를 만들기로 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파스타 면으로는 당신이 원하는 모양과 식감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 마음에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뭐, 어때. 바로 그다음 순간, 당신은 뭐 어떠냐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오해를 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오늘 집 밖을 나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은 아주 확실하다.

시행착오를 할 때마다 당신의 마음은 조금씩 두꺼워진다. 거울로는 비출 수 없는 두터워진 마음을 꺼내보고 싶을 때, 당신은 파스타를 만든다. 밀가루에 계란을 더해 포크로 휘휘 저으면, 가루는 노랗게 점점 뭉쳐지다 둥그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더 대담해지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파스타 반죽을 치댄다. 당신은 완성된 파스타 면을 납작하게 밀어 원하는 대로 굵직하게 잘라본다. 본인 마음의 두께를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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