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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헤니 Heny Kim Jul 03. 2020

8화, 브리야 사바랑

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이것은 내가 2년 전 여름 사랑에 빠졌던 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게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라는 말을 남긴 17세기 프랑스 미식 예찬론자의 이름을 딴 치즈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보통 우유로만 만들어지는 치즈에 크림을 더해 진한 풍미와 산뜻한 맛, 크리미한 질감으로 완성한 트리플 크림치즈다.


프랑스에 도착했을 당시 치즈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도슨트의 도움 없이 미술관의 그림을 마주하고 서듯 요리 학교와 레스토랑의 냉장고 앞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통해 또 다른 작품에 당도하듯 자주 가던 식당의 새로운 메뉴를 통해서 다양한 종류의 선별된 치즈들을 조금씩 맛보아 나갔다. 치즈를 맛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부드러운 샐러드 잎이 곁들여진 브리야 사바랭을 맛보게 되었는데, 갑자기 뱃속의 내장이 기쁨의 춤을 추기 시작해서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포크를 든 채로 가만히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그 뒤로는 치즈 가게가 보이면 괜히 들어가 브리야 사바랭을 파는지 안 파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다.


‘살과 피, 근육과 뼈, 뇌와 피부’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운 우리의 몸은 생물학/동물학자인 앨러나 콜렌에 따르면 사실은 10%의 체세포와 90%의 셀 수 없이 다양한 박테리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우리는 하나의 개체가 아닌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진 하나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된장, 낫또, 치즈처럼 균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때와, 첨가물이 없고 가공되지 않은 채소나 과일을 먹을 때, 내가 아닌 나의 몸 자체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감각에 대해서 어쩌면 한참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것 같다.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다른 과학자들은 뱃속의 박테리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숙주인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평소 먹어본 적 없는 채소나 과일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식단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몸에 새로운 균을 더해나가면 우리의 면역체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입속으로 들어가 소화되면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성분들을 새로이 만들어 내고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의 바탕이 되며 그 하루하루가 모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날 그가 냉장고에서 브리야 사바랭을 꺼내 칼로 잘라 입에 넣으면서 “이건 정말정말 맛있는 치즈야.”라고 말했을 때. 바로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그때까지 무어라 쉽게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과 세상과 나를 단절시켰던 눈먼 선택들의 범인이 브리야 사바랭이라는 균집체의 소행이었음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가 나와 같은 치즈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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