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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다윤 Jul 07. 2020

게임으로 배우는 인생 : 프롤로그

게임=죄악?

 2011년에 한 방송기자가 PC방 누전차단기를 내린 적이 있다. 그 기자는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꺼지자 욕설을 내뱉는 PC방 이용자들을 뉴스에 내보냈다. 해당 뉴스는 게임에 폭력성을 곁들여 자극적인 소재를 만들어냈다. 지금이야 게임 광고가 심심치 않게 TV광고에 나오고, 게임 전문 유튜버도 등장하며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지만, 2000년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임요환, 홍진호 같은 프로게이머들이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으나, 게임산업 종사자에 대한 아니꼬운 시각마저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성가족부도 이름이 바뀌기 전이었던 여성부 시절부터 쭉 ‘게임=사회악’이라는 프레임으로 게임 탄압에 힘을 보태던 시절이었다.     

 나의 부모님 역시 게임에 대해 달갑지 않게 여기셨다. 방과 후 친구들하고 축구를 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PC방에 들렀다가 오는 날에는 잔소리를 꽤나 들어야 했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게임은 죄악이었던 것 같다. 뿅뿅거리는 전자오락기 앞에 옹기종기 모인 초등학생들은 미래의 게임중독자들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PC방은 공부와 인생을 포기한 한량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모임 장소였다. 공부는 하루에 몇 시간씩 해도 문제가 없지만, 게임은 1시간만 넘어가도 폭력적인 게임중독자가 될지도 모른다. 나의 10대 시절 당시 사회가 게임에 대해 가졌던 시각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교육적인 목적 때문에 집에 컴퓨터는 있었지만, 플레이 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같은 게임 전문기기는 금지사항이었다. 플레이 스테이션을 사는 꿈을 꾼 적도 있을 정도로 가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산다고 했던가. 초등학교 때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가지고 있는 친구 집에 들락거렸던 기억도 있다. 끝끝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게임기는 버킷리스트에는 올랐으나, 내 손안에 들여올 수는 없었다. 자그마치 20년이 조금 안 되는 기다림 끝에, 나는 4개월 할부로 닌텐도 스위치를 구매했다.     


 내가 처음으로 플레이 한 게임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었다. 1986년 첫 발매 이후로 수많은 팬들을 양성한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공주를 구하면 끝나는 게임 특성상, 게임을 클리어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2~3시간 이내 클리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려는 목적을 가진 게이머에게는 게임 속 가상세계는 넓었고, 모험할 거리는 많았다. 전설 속 야생마를 길들이거나, 눈 덮인 설산에 숨겨진 사당을 찾아내기도 하고, 글라이더를 타고 절벽 사이를 활강하는 등 무궁무진한 모험의 세계가 펼쳐졌다. 몇 만 원짜리 게임 하나로 몇 달 동안 즐거웠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였다. 재미도 재미였지만, 앞만 보며 달리는 인생보다는 넓은 시야로 인생을 탐험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젤다의 전설이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의 게임이었다면, 이후에 플레이한 동물의 숲 시리즈는 인싸들의 게임이다. 발매와 동시에 20, 30대의 인기를 휩쓸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핫한 콘텐츠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동물의 숲 한정판 에디션 대란은 동물의 숲의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가늠케 해준다. 본래 동물의 숲은 자연 속에서 이웃들과 낭만적인 생활을 영유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동물의 숲이 출시되고 나서 유튜브와 인터넷에는 ‘효율적으로 돈을 모으는 법, 이웃 동물들의 계급도’ 같은 공략 글이 넘쳐났다. 무엇을 위한 공략인지는 모르겠지만 효율적인 플레이에 낭만은 없어 보였다. 나는 동물의 숲을 통해 가끔은 비효율 적인 선택이 주는 기쁨을 깨닫게 되었다.     


 ‘게이머=너드(nerd)나 오타쿠’라는 부정적 인식은 아직까지도 널리 퍼져 있다. 그것보다 심한 것이 ‘게임=중독’이라는 프레임이다. 포르노가 강간범을 양산하지 않듯이, 게임은 사회 부적응자나 게임중독자를 양산하지 않는다. ‘게이머’ 하면 어두운 골방에서 홀로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사회 부적응자를 떠올리기보다는 누군가의 친구, 가족, 연인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공부나 자기 계발 뒤에 중독을 붙이기 쉽지 않듯, 게임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란 딱지가 떼질 날을 기대한다. 게임 포비아들의 게임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앞으로 내가 경험한 게임 속 삶의 진리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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