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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y 27. 2022

절망... 관계...

<인간실존>의 상념 조각들


그녀는 아이를 잃었다.

그녀는 작품을 잃었다.

그녀는 직업을 잃었다.

그녀는 꿈을 잃었다.

그녀는 자신을 잃었다.


그녀의 온 몸에 돋아나 있는 뾰족한 바늘들이 그녀가 알고, 그녀를 아는 이들을 아프게 찔러댄다. 그녀가 알고, 그녀를 아는 이들은 그녀가 허용하는 임계거리를 넘어서지 못 한다. 걱정스런 표정으로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도, 애닯은 표정으로도, 속절없이 그녀가 밀어내는 공간밖에 서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공간 속에 타인을 들인다. ‘그’라고 칭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녀가 꼭꼭 밟고 온 과거의 시간들 속에 없는 존재. 손을 놔 버리면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리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그’에게 가슴이 뛴다.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벼리게 잠가두었던 마음의 잠금쇠가 느슨해 진다.


그녀의 남편은 순한 눈을 가진 공감력이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보다 아내의 상처를 먼저 보듬는다. 슬픔과 좌절의 바늘 속에 꽁꽁 숨어버린 아내를 늘 애잔하게 지켜본다. 묵묵한 바라기, 알고 있는 이유도, 알지 못하는 이유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는 그의 표정에, 지켜보는 나는 그만 마음이 먹먹해 진다.


“작가가 글을 참으로 잘 썼어요.” 드라마 <인간실격>에 대한 나의 평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남편에게는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요? 참 좋은 사람인데 안타까웠어요.” 듣는 이의 의구심이다. “아, 그러네요.”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다.


낯선 이 의구심 조각을 들고, 경험 속 범주의 방들을 이리저리 둘러 본다. 그 과정에서 조우하는기억의 파편들, 하나씩 대조해 본다. 이것도… 저것도… 마침 ‘절망’이라는 감정에 이르렀을 때, 나름의 개연성 있는 추측이 해석의 내러티브를 내놓는다.


절망은 필멸자에게 순간적 삶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희망의 부재다. 인간의 마음 속,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에 서식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인간을 내 몬다. 절망은 지극히 원초적이고 개인적이며 고유하다. 절망에 빠진 인간은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그녀는 절망 속에 자신을 묻어 버렸다. 그래서 여기, 그녀는 남편이 아닌 그와 한 공간에서 존재의 위로를 받는다.


한 침대 속에서 등을 돌리고 누운 그녀. 자신의 절망과 맞닿아 있던 그 이야기를, 꼭꼭 숨긴 채 드러내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턱선이 슬픈 그는 묵묵히 그 얘기를 듣는다.


그 얘기는 그녀만의 얘기다. 표출하고 있는 감정 속에는 다른 이의 감정이 끼어들 수 없다. 다른 이의 감정과 교류하기에 절망이라는 감정은 너무도 옹졸하고 이기적이다.


듣는 이가 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감정의 교류 없이 그녀만의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도 아이를 잃었는데, 제가 직장을 잃으면 그의 어깨에 내려앉는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 질 텐데, 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제 얘기만 편하게 주저리 주저리 할 수 있었을까? 오롯이 제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절망의 창고에 갇힌 그녀에게는 자신의 등을 지키는 존재로서 함께한 시간의 역사가 없는 그가 적합했을 것이다. 한 공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그 가는 인연의 끈 하나였으면 족했을 것이다.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흐릿한 한 줄기 빛만으로도 삶의 의지를 발화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해. 난 당신이 눈을 달라면 눈을 줄 수 있고, 심장이 필요하면 심장을 줄 수 있어.” 눈물을 머금은 남편의 말에, “나도 당신에게 눈도 심장도 다 줄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희생이지 사랑은 아니잖아.” 라고 그녀는 답한다. 그녀의 대답 속에서 나는 ‘현실 관계’의 쓴 속성을 포착한다. 저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없고, 저의 한 면을 베어내야 하는 불완전한 저로서만 지켜낼 수 있는 현실의 관계, 부부 관계, 이율배반적이게도 이것이 저의 남은 인생 시간을 차지할 관계의 속성이다.


그녀는 설렘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사랑을 떠나 보낸다. 이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현실의 관계와 공존할 수 없으니 조용하고 현실성 있는 이별을 한다. 그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모순 덩어리인 현실의 보잘것 없는 안정성이 자신에게 마법과 같이 찾아 온 설렘을 희생할 가치가 있었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짊어진 사랑은 단지 언젠가는 깨어나야 할 환상일 뿐일까? 선택에 대한 반사실적 대안, 일어나지 않았음에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것은 그 속성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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