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을 애정하는 방법.
#1
난
섬섬옥수다.
딱히 손에 하는 것도 없다.
핸드크림도 안 바른다.
사람들이 그랬다.
남자가 손이 왜 이리 곱냐고.
특히나 왼손이 더 곱다.
가끔 하늘빛에 손을 비추어 본다.
빛과 함께 반짝이는 손이
몹시 흡족했다.
#2
하는 일이 이야기를 담는 일이라,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산다.
그리고 만날 때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눈다.
예전엔 그저 인사에 지나지 않던 악수에서
손에 깃든 그이의 생이 느껴진다.
나이가 이렇게 무서운 건가.
그렇게 악수를 해오며,
손에 담긴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생각한 게 있는데,
요약하면 네 가지 정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온도.
손에서 유난히 다른 온도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일단 손이 따뜻하면 느낌이 좋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때론 손이 시원한 사람도 있고, 뜨거운 사람도 있다.
매번 내게 필요한 온도가 다르듯,
적절한 손의 온도를 가진 사람은 꽤 두고두고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두께다.
아니, 두께보단 두터움이 맞겠다.
작아도 유난히 손이 두터운 사람이 있고,
커도 느낌이 갸녀린 사람이 있다.
손의 그립감에서 느껴지는 삶의 선이 있다.
세 번째는 힘이다.
상대를 향한 의도적 악력이 아닌,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하며 만나왔는지,
손에서 어떤, 심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은 질감!
부드러움과 거칠은 살결에서
마주 하는 이의 삶의 결을 느낀다.
손 하나에도
생의 레이어가 담겨 있다.
#3
최근 알게 된 친구가 하나 있다.
(필자는 본인 또래 이하의 사람을 애정을 담아 "친구"로 총칭하여 표현하고 있음)
남자이나 얼굴이 곱고
옷하나를 입어도, 무척이나 정갈하여
나랑 다른 세상을 살아왔구나 싶었다.
매주 보게 되는 사이라, 늘 스치듯 인사만 하다가
몇 마디를 몇 분 간 나누고 악수를 하는데...
손이 이상했다.
그렇게 두텁고,
그렇게 거칠고,
그렇게나 따뜻한 손을 참 오랜만에 잡아 본다.
그 친구랑 헤어지고,
그 손이 자꾸 생각났다.
뭘까 저 손에 담긴 건.
함부로 빚어지지 않은 것 같은,
저 낯선 손의 질감.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난 무지 자만추라
사석에서 만날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참고로 난 여자 좋아한다.)
#4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할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손이 낡아가는 게 좋았다.
(많이 안 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ㅋ)
이따금씩 일을 하다가,
손이 다칠 때가 있다.
한참 그 상처를 들여다본다.
"넌 남을 거니? 떠날 거니?"
"........."
"남아도 돼."
이젠 손에 주름이 꽤 보인다.
손금도 깊어진다.
사디스트 같기도 한데,
나이를 먹어가는 손이 애잔하게 좋다.
핸드크림은 발라야겠다.
핸드크림은 록시땅이 좋다던데...
#5
자전거를 탄다.
2년쯤 되어가는 것 같다.
왕복 30여 킬로의 출퇴근길과,
촬영이 없는 가벼운 미팅은
웬만하면 자전거로 다닌다.
이젠 마라톤 키로수쯤은
매일타도 괜찮을 만큼,
몸이 편안하다.
자전거 위, 시간의 흔적이
고스런히 남겨지는 데가 있다.
장갑!
내 자전거 라이프,
나이테다.
헤어져가는 장갑이
참 반갑다.
땅의 결을 온전히 받아내기에
완충재가 두툼히 덧대진 장갑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얇아졌고,
1년이 넘어가는 시간으로
손바닥이 희끔 보일만큼 닳았다.
오랫동안 장갑 낀 손바닥을
지그시 보았다.
시간이 쌓인다는 건,
귀해지기도 하고,
낡아지기도 하지.
이 장갑도
그 경계 어디쯤 있구나.
그러면서 생각한다.
기인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이 낡아진 장갑에 마지막 서사를 주고
편히 쉬게 해 주어야겠다.
아내님 용안이
가장 평안하실 때를 엿보아,
공손하고 겸손히
상고를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