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 지구인 Apr 10. 2023

낡은 손과 해진 장갑이 서사를 가질 때.

낡음을 애정하는 방법. 

#1


난 

섬섬옥수다.


딱히 손에 하는 것도 없다. 

핸드크림도 안 바른다. 


사람들이 그랬다. 

남자가 손이 왜 이리 곱냐고. 


특히나 왼손이 더 곱다. 

가끔 하늘빛에 손을 비추어 본다. 


빛과 함께 반짝이는 손이 

몹시 흡족했다. 



#2


하는 일이 이야기를 담는 일이라,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산다. 


그리고 만날 때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눈다. 


예전엔 그저 인사에 지나지 않던 악수에서

손에 깃든 그이의 생이 느껴진다. 


나이가 이렇게 무서운 건가. 


그렇게 악수를 해오며, 

손에 담긴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생각한 게 있는데, 

요약하면 네 가지 정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온도. 

손에서 유난히 다른 온도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일단 손이 따뜻하면 느낌이 좋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때론 손이 시원한 사람도 있고, 뜨거운 사람도 있다. 

매번 내게 필요한 온도가 다르듯, 

적절한 손의 온도를 가진 사람은 꽤 두고두고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두께다. 

아니, 두께보단 두터움이 맞겠다. 

작아도 유난히 손이 두터운 사람이 있고, 

커도 느낌이 갸녀린 사람이 있다. 

손의 그립감에서 느껴지는 삶의 선이 있다. 


세 번째는 힘이다. 

상대를 향한 의도적 악력이 아닌,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하며 만나왔는지,

손에서 어떤, 심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은 질감! 

부드러움과 거칠은 살결에서 

마주 하는 이의 삶의 결을 느낀다.


손 하나에도 

생의 레이어가 담겨 있다. 





#3


최근 알게 된 친구가 하나 있다. 

(필자는 본인 또래 이하의 사람을 애정을 담아 "친구"로 총칭하여 표현하고 있음)


남자이나 얼굴이 곱고 

옷하나를 입어도, 무척이나 정갈하여 

나랑 다른 세상을 살아왔구나 싶었다. 


매주 보게 되는 사이라, 늘 스치듯 인사만 하다가

몇 마디를 몇 분 간 나누고 악수를 하는데...


손이 이상했다. 


그렇게 두텁고, 

그렇게 거칠고, 

그렇게나 따뜻한 손을 참 오랜만에 잡아 본다. 


그 친구랑 헤어지고, 

그 손이 자꾸 생각났다. 


뭘까 저 손에 담긴 건. 


함부로 빚어지지 않은 것 같은, 

저 낯선 손의 질감.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난 무지 자만추라 

사석에서 만날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참고로 난 여자 좋아한다.)



#4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할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손이 낡아가는 게 좋았다. 

(많이 안 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ㅋ)


이따금씩 일을 하다가, 

손이 다칠 때가 있다. 


한참 그 상처를 들여다본다. 

"넌 남을 거니? 떠날 거니?" 


"........."

"남아도 돼."


이젠 손에 주름이 꽤 보인다. 

손금도 깊어진다. 


사디스트 같기도 한데, 

나이를 먹어가는 손이 애잔하게 좋다. 


핸드크림은 발라야겠다. 

핸드크림은 록시땅이 좋다던데...



#5 


자전거를 탄다. 

2년쯤 되어가는 것 같다. 


왕복 30여 킬로의 출퇴근길과, 

촬영이 없는 가벼운 미팅은 

웬만하면 자전거로 다닌다. 


이젠 마라톤 키로수쯤은 

매일타도 괜찮을 만큼, 

몸이 편안하다.


자전거 위, 시간의 흔적이

고스런히 남겨지는 데가 있다. 


장갑!



내 자전거 라이프,

나이테다.


헤어져가는 장갑이 

참 반갑다. 


땅의 결을 온전히 받아내기에 

완충재가 두툼히 덧대진 장갑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얇아졌고, 


1년이 넘어가는 시간으로 

손바닥이 희끔 보일만큼 닳았다. 


오랫동안 장갑 낀 손바닥을 

지그시 보았다. 


시간이 쌓인다는 건, 

귀해지기도 하고, 

낡아지기도 하지. 


이 장갑도 

그 경계 어디쯤 있구나.  


그러면서 생각한다. 


기인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이 낡아진 장갑에 마지막 서사를 주고 

편히 쉬게 해 주어야겠다. 


아내님 용안이 

가장 평안하실 때를 엿보아, 


공손하고 겸손히

상고를 올려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