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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찌 Jul 04. 2020

잠든 아이의 옆에서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감사합니다!!


엄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신생아 때부터 지켜야 하는 낮잠의 법칙이 있다.

낮잠과 밤잠을 구분해야 한다.

아기가 낮잠을 잘 때는 너무 어둡지 않게 하며 TV 소리, 설거지 소리 같은 생활소음을 들려주어 밤잠과 구분하여

지금이 낮이라는 걸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




첫째 아이가 신생아 때는 호기롭게 시도했었다.

겁 없이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었고,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동안에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먹고 자고 순탄하게 흘러갔다.


엄마와 약속한 시간은 끝이 났고 남편이 출근한 낮시간에는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게 무서웠지만 할 수 있겠지 싶었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거실에서 자는 아이의 옆에서 TV도 보고, 라디오도 틀어놓고, 젖병 닦기 등 밀려있는 집안일도 했다.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그 순간의 잔상

생후 20일쯤 되었을까.

하루에도 수십 개씩 써버리는 손수건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널고 있었다. 손수건을 터는 그 '탁탁' 소리에 잠이 깨서 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번 깬 아이는 금방 다시 잠들지 않았고 안아서 겨우 재워 눕히면 등 센서 발동

겨우겨우 재워놓고 잠든 순간에도 안고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남편과 새벽까지 번갈아 안아가며 우는 아이를 달래보고 재워보고 애원해가며 버티다가 너무나 허무하게도 공갈젖꼭지를 물리는 순간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공갈젖꼭지를 물리던 51일부터 8시간 통잠을 자주었다.



하지만 이미 겁이 났던 나는 그때부터 아이의 '수면연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다.

아이가 방에서 자고 있어도

집은 어둡게, 낮에도 불은 켜지 않고

밥은 간단히, 달그락 그릇 소리도 용납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TV는 조용히, 음량은 2를 넘지 않게

집안일은 아이가 깼을 때로 최대한 미루기


아무리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어도 첫째는 30분 이상을 혼자 자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같이 누워있으면 잘 잔다는 것

아이가 잠든 지 30분이 되기 전 간단히 배만 채우고 방으로 들어와 자는 아가의 옆에 누워있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잠이 들어도 도착해 내리면 귀신같이 깨는 아이

어쩌다 가끔 유모차에 탄 채 잠든 타이밍에 이때다 싶어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으면 음식 나올 때쯤 유모차가 들썩들썩

그렇게 쪽잠 자며 버티는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졸리면 자라~~"


19개월 후에 태어난 둘째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잠을 유지시켜야겠다는 시도조차, 욕심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다.


언니는 말했다.

"너네 애들은 왜 그러니"

'졸리면 자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끄럽게 재울 걸 하는 후회도 해보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자책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세돌을 앞둔 첫째가 거실에서 대충 재워도 깊게 자기 시작했다.

옆에서 둘째가 울어도 꿈쩍도 안 하고 자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한 번 잠이 들면 잘만큼 자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밤잠을 자다가 한 번도 칭얼대지 않고 울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아직은 낯설지만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셋째를 임신하며 넷이 다 같이 자는 게 힘들어지고, 무조건 남편과 같이 자야 한다는 내 의지도 약해지면서

나는 첫째와, 남편은 둘째와 다른 방에서 잤다.

남편과 따로 자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생각지도 못한 자유시간이 생겼다.

잠자는 첫째 아이 옆에서 조명을 살짝 켜봐도 깨지 않아 책 읽을 시간이 생겼고,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에도 깨지 않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디오까지 켜놔도 미동도 없는 아이 덕분에 완벽한 새벽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잔잔한 라디오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문득,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을 포기해야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다 크면 낮에도 내 시간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잘 자 주는 큰아이에게 감사했고, 아직은 새벽에 자주 깨는 작은아이를 데리고 자는 남편에게 감사했고, 아빠와 잘 자는 작은아이에게 감사했다.


자는 아이 옆에서 라디오 하나 듣고 있을 뿐인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당연했던 내 일상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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