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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동자님 저 합격하나요?

신점후기

by 미쓰한

지난달 모르는 동네에 찾아가 신점을 본일이 있다. 친언니와 동행했는데 점쟁이는 두꺼운 아이라인을 치켜뜨며 언니에게 사람바람이 들었다고 혀를 찼다. 언니가 회사사람들에게 치이고 힘들어서 점을 보러 온 것이라서 꽤나 용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어 우리 부모님 성격도 은근히 맞추는 듯했고 그래서 이어질 인생상담에 꽤 기대가 됐다.


곧 마흔 고시생으로서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은 ‘합격, 결혼, 출산 그리고 우리 개의 죽음’ 순이었다. 시험날짜와 합격발표 사이의 기간이 어찌나 긴지, 샤머니즘을 통해서라도 답답함을 해소하고픈 마음이 절절했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나의 결혼, 출산은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의 염원이었다. 그리고 요 며칠 멘탈도 안 좋은데 우리 집 개가 아파서 수일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있자니 우리 집 개의 미래도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점쟁이의 대답은... 불합격, 이별수, 출산 어려움, 올해 우리 개의 죽음...!? 그러더니 ‘혼자 살아 돼! 사회적으로는 성공할 운이야!’라며 선심 쓰듯이 물어보지도 않은 점괘를 알려줬다. 나는 복채로 10만 원을 계좌이체하며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서 십만 원을 쓴 사람이야...’


생각해 보면 잘 맞춘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예를 들면 우리 언니가 시어머니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무척 진지하게 했는데, 시어머니가 살아계셔야 무슨 문제가 생길 거 아닌가? 뿐만 아니라 초반에 잘 맞춘 듯 보이는 내용들도 생각해 보면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아주 뻔한 얘기였다. 회사 힘들다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사람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 세대 부모 중에 자식 때문에 산다는 부모가 한둘이냔 말이다.


흥, 아닌데? 나 합격할 건데? 하는 속마음이 보였는지 점쟁이는 나에게 ‘옆에서 누군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생각에 고집 있는 사람’이라고 묻지도 않은 평가를 해댔다. 대체 누가 저 다섯 가지 악담을 듣고 믿고 싶어 한 단말인가. 그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귀가했다. 그런데 그 악담이란 것은 자꾸 생각나면 불쾌해지고 곱씹을수록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점쟁이에게 욕설이 나가고 그런 미신은 믿을게 못된다고 소금이나 잔뜩 뿌리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소금 뿌리는 것도 미신인가?)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은 느슨하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의 매듭을 달고 사는 것과 같다. 최악의 상황이 와서 가까운 미래에 내 목을 조일 것 같은 압박감. 특히나 합격은 간절했다. 결혼이나 출산, 우리 개의 죽음은 내가 계획한 대로 될 수 없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시험은 아니었다. 시험은 내가 유일하게 내 계획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버텨왔던 도전이었다. 나는 합격이 너무 간절했다.


오늘은 또 한 번 그 점쟁이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우리 집 개와 엄마방 바닥에 누워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엄마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를 내 합격유무에 대해 수백 번째로 질문하니 엄마가 대답했다.

“그 점괘 믿지 마. 그리고 진짜 떨어져도 큰일 날 것 하나도 없어. 점쟁이 말대로 다 돼도 하나도 큰일 날 것 없어. 그러니까 뭐든 너무 간절하지 마.”


맞다. 중요한 것은 점쟁이말이 다 거짓일 거라는 게 아니다. 모든 게 다 점괘대로 이루어져도 진짜 최악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몸도 건강하고 다른 밥벌이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실패쯤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았던 시간과 도전을 훈장처럼 자부심의 근원으로 삼으며 또 열심히 살아가면 되니까.


그래도 불안감의 매듭은 언제든 뱀처럼 스멀스멀 나타난다. 소리도 없이. 그럼 또 에너지를 모아 ‘하나도 큰일 날 것이 없어’ 주문을 외워야 한다. 다행히도 이 주문만은 미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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