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학교에서만 통용되는 협박의 언어
진상 학부모의 상징, ‘애 아빠’
진상 학부모들의 단골 대사가 있다.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애 아빠가 오겠다는 걸 말렸어요.”
그런데 ‘애 아빠’는 대체 누구인가? 그는 왜 이렇게 화가 많고 감정적인가?
여기서 ‘애 아빠’는 도무지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어른이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온당한가? 관공서에 가서 “우리 남편이 화가 많이 났어요”라고 하겠는가? 은행이나 마트, 편의점에서 “애 아빠가 화가 나서 말렸어요”라고 말할 것인가? 학교에서만큼은 왜 이 문장이 자연스러운 듯 통용될까?
교사를 겨냥한 협박, 그리고 책임 전가
첫째, 이것은 명백한 협박이다.
‘애 아빠’라는 인물을 내세워 교사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사안에 대해 즉각 대응하길 바라며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애 아빠'는 왜 직접 오지 않는 걸까? 실체도 모호한 존재를 앞세워 상대방을 겁주는 것, 이는 다름 아닌 협박이다.
둘째, 이것은 책임 전가이다.
부모라면 아이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본인은 ‘애 아빠’라는 감정적인 인물을 앞세우며 마치 문제에서 한 발 물러나려는 태도를 취한다. 협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여력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는 것, 이는 책임 회피의 한 모습이다.
압박과 가소로움, 그리고 측은함
이런 대사를 접하는 교사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실체도 모르는 ‘애 아빠’를 상상하며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 협박의 빈약한 실체를 보며 가소롭게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교사가 ‘애 아빠와 직접 대화해 보겠다’고 하면 슬그머니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측은함마저 든다. 정말로 '애 아빠'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감정적이고 위협적인 사람과 한평생 함께 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지만 묻고 싶다. 교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가?
대부분의 학교 문제는 교사와는 무관한 원인으로 발생하며, 교사는 그저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교사는 학부모와 함께 아이를 위해 협력하는 동반자다. 진정 학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이의 행복한 성장이라면, 협박의 언어 대신 교사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관공서나 어느 사적 공간에서도 하지 않을 협박을 교사들에게만 과감하게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사를 대체 얼마나 낮추어 보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존중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다른 직업군만큼만 대접해 주길.
아이의 문제를 놓고 '애 아빠'를 앞세우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애 아빠여, 언제든 찾아오라. 아니면 직접 통화하자. 정말이지, ‘애 아빠의 감정’ 맞춰주느라 교사도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