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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아 Jan 04. 2023

20년 전, 인도 여행기를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제게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간직해둔 보물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마다 꺼내보곤 했던, 언제나 제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소중한 추억, 20년 전의 인도 여행이지요. 책장 깊숙이 간직해온 여행 기념품들은 낡고 먼지 쌓인 골동품으로 변했지만, 기억만큼은 마치 엊그제 일처럼 밝고 선명합니다.


1999년 2월,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쥔 저는 일을 할 직장도, 결혼할 남자친구도 없었습니다. 직장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어요.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더 이상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20대 초반, 저는 다소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주제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취업과 결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때, 저는 그런 일들에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았어요. 전공인 건축 공부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고, 연애도 즐겁지 않았죠. 대신,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커다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것은 ‘오쇼 라즈니쉬’의 책이었어요. 오쇼 라즈니쉬는 1990년에 세상을 떠난 인도의 명상 지도자인데, 살아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인도로 모여들었다고 해요. 오쇼의 책을 통해 수많은 동서양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들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오쇼의 책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죠.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여 명상을 하고 있다는 인도의 오쇼 아쉬람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타올랐습니다. 


오쇼의 책을 제게 처음 소개해준 A에게 그런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A는 마침 지인 중 한 사람이 인도 오쇼 아쉬람에 갈 계획이니, 제가 원한다면 함께 갈 수 있게 주선을 해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추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학 졸업 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약간의 돈이 떠올랐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물가가 저렴한 인도에 2, 3개월 여행 다녀올 정도는 되겠다 싶었죠. 결심이 선 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했고,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일자리를 찾거나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왜 그런 곳에 가느냐고 타박하셨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20대 초반의 젊은 미혼 여성이 인도를 간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었어요. 게다가, 당시에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 자체도 많지 않았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좁은 한국을 벗어나서 넓은 세상을 보고 온 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결정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제 말을 듣고 한참 고민하시더니,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저를 믿어주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0월, 저는 인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인도 뿌나에 위치한 오쇼 아쉬람에서 4개월 동안 명상을 한 뒤, 2개월 동안 홀로 배낭여행을 했죠. 그리고 2000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저는 여전히 백수였고, 남자친구도 없었습니다. 여행을 반대했던 어머니로부터 모진 비난의 말도 들어야 했죠.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의 저와 여행에서 돌아온 저는 완전히 다른 내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이 많아졌고 모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그때 하고자 했던 일들을 모두 이뤄냈어요.


제게 그 당시 인도 여행은 삶의 전환점이자, 인생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를 극복하고 성공을 이뤄낼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힘든 일을 겪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때 배운 교훈과 행복했던 기억들을 원동력 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40대 중반이 된 지금, 그 고마운 기억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졌어요.


사실 20년의 세월이 지났기에 여행 정보로써의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 20대였던 옛날 사람의 이야기라 낡고 촌스럽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이 글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는 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글을 써 내려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20년 전 인도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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