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지금까지 바이든 인생에 결정적 순간(김종인 할배의 표현을 빌자면 '별의 순간')이 왔지 싶다. 트럼프를 꺾어야 하는 민주당의 득표를 극대화할 수 있는 후보는 어쨌든 백인 할배 바이든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례없는 위기에 전임자의 꼬장으로 인수인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Day 1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도 솔직히 바이든 외에는 없었다. 취임 후 단기간에 정부기능(governance)이 회복되는 것을 보면 '경륜의 정치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를 포함한 중년 이상 아재들은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며 자기 인생이나 세대에 대해 흐뭇한 기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꿈을 깨시라.
2004년 상원에 입성한 오바마는 초선, 4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선배 상원의원들로부터 대선 출마 권유를 받았다. 회고록에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사람만 해도 정치명문 케네디가의 막내 테드 케네디, 지금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된 척 슈머, 오바마와 함께 상원에서 일리노이 주를 대표한 딕 더반. 다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조언했다. 클린턴과의 관계 때문에 대놓고 그러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나가라는 얘기였다.
그들이 옳았다. 오바마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힐러리 대세론에 주눅들어 출마를 포기했다면 대통령이 될 기회는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다들 오바마보다 연배도 한참 위고 의회 경력이 수십년 이상인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별의 순간'이 이미 지나갔거나 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했고, 지금 '별의 순간'이 왔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회의하는 신참 상원의원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 쯤은 기회가 온다. 하지만 '별의 순간'은 나이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입문시기 혹은 경력에 따르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에게는 47세에 들이닥친 그 순간이 바이든에게는 78세에 찾아오는 것이다. 세대 순서대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현실에 맞지도 않고 치졸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생각하는 x86, 수구꼰대의 과잉 자의식을 국민들은 다들 비웃고 있지 않나.
그리고 바이든에게 '별의 순간'이 온 것은 6선 상원의원 백인 할배가 20살 어린 흑인 초선 상원의원의 2인자가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면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일조차 없이 7선이나 8선 상원의원 정도로 정치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누가 아나. 젊은 사람들 밀어주며 착하게 살다 보면 바이든처럼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회가 다시 찾아올지. 혹시 그러면 그때 경륜을 발휘하면 되는 거다.